난 조카의 속내를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어쩔 땐 내가 집에 들어가기만 해도 울고불고 소리를 지르며 기겁을 하는가 하면
어쩔 땐 부르지도 않았는데 내 방에 쪼르르 들어와 온갖 애교를 떨 때도 있다.
이렇게 날 들었다 놨다 하며 가지고 노는 조카를 보면 그래.. 너도 여자라고 날 가지고 노는구나.. 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렇게 귀하신 몸인 조카를 영접하기 전에 항상 먼저 하는 일은 손을 씻고 이빨을 닦아서 최대한 담배냄새를 지우는 일이다.
이런 노력 때문인지 그래도 요즘은 조카가 날 보고 짐승처럼 울부짖거나 산에서 곰을 만난것 처럼 꽁지빠지게 도망치는 일이 전보다는 많이 줄어들었다.
이렇게 조금씩 조카와의 관계가 호전되고 있을 때 였다.
어느 날 퇴근을 하고 집에 가보니 동생과 조카가 바닥에 앉아서 뭔가를 만지작 거리고 있었다.
뭘하나 들여다보니 조카는 그림책을 가지고 놀고 있었다. 책 귀퉁이에 붙은 그림들을 잘라서 풀로 붙이는 그림책이었다.
나도 옆에 털썩 주저 앉아 조카에게 말을 걸었다.
"J야. 재밌어? 삼촌이 이거 잘라줄까?"
조카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안대. 삼촌. 이거 위험한거야. 삼촌 아야해."
고작 세 살인 주제에 나에게 그런 얼토당토 않은 충고를 하다니..
니가 지금까지 한 숫가락질 보다 내가 한 가위질이 훨씬 더 많단다. 라고 생각하며 난 가위를 집어들었다.
"삼촌이 이쁘게 잘라줄게. 잠깐만."
"앙대! 하지마! J가 할거야!"
그렇게 욱신각신하다 결국 조카는 울음을 터트렸고 난 동생에게 욕을 먹고 방으로 쫓겨났다.
잠시 후 밖이 조금 잠잠해지자 난 슬그머니 다시 거실로 나갔다. 이번엔 조카가 블록을 만들고 있었다.
다시 조용히 조카 옆으로 가서 자리에 앉았다.
"J.. 뭐 만드니?"
"삼촌 저리가."
난 못들은 척 조카 옆에서 블록을 만지작만지작 거렸다.
"삼촌이 자동차 만들어 줄까?"
"안대~ 하지마~"
난 블록으로 뚝딱뚝딱 자동차를 만들기 시작했다. 처음엔 앙탈을 부리던 조카도 자동차가 만들어지는 걸 보며 내 손놀림에 빠져들었다.
"J가 해볼래? 이거 여기다 끼우면 자동차가 되네?"
조카는 내가 시킨대로 열심히 블록들을 끼워넣기 시작했다. 우리는 처음으로 하나된 마음으로 블록들을 가지고 놀기 시작했다.
자동차와 집이 완성되자 다른방에 있던 동생이 거실로 나왔다.
"우와~ J 삼촌이랑 놀고 있었어? 우와. 자동차네~ 이거 누가 만든거야? 삼촌이 만들어 준거야?"
난 뿌듯하게 조카를 바라봤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였다.
"아니. J가 만들었어~"
"... 뭐?"
동생은 놀라는 척 말했다.
"와~ 대단하네 J가 혼자 만든거야?"
"응. J가 만들었어."
난 커다란 충격에 휩싸였다. 가장 믿었던 동료에게 배신당한 기분이었다.
마치 내가 피콜로대마왕에게 맞아죽은 크리링인데 손오공이 드래곤볼을 모아서 나를 살리는 대신 여자팬티를 달라고 한 것 같은 기분이었다.
"야.. 그거 삼촌이 만들어 준거잖아."
하지만 조카는 날 보지도 않은 채 말했다.
"아니야 J가 만들었어!"
"웃기고 있네. 위에다 블록 몇개 낀거 말고 니가 한게 뭐가 있어??"
조카는 휙 돌아보더니 나에게 손가락질을 하며 말했다.
"삼촌! 들어가!"
배변훈련을 받는 애완견이 된 기분이었다.
"야.. 이... 됐다. 내가 하나 사고만다. 너랑 안놀아!"
난 방으로 들어갔다. 침대에 누워서 분을 삭히려 했지만 도무지 화가 가라앉지 않았다. 분노로 떨리는 손을 붙잡고 핸드폰으로 통큰블록을
검색하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문이 빼꼼 열리며 조카가 고개를 쏙 내밀었다.
"뭐야? 오늘은 너랑 더이상 대화하고 싶지 않거든? 돌아가."
조카는 쭐래쭐래 침대 앞까지 와서 말했다.
"삼촌. J랑 통큰블록 하자."
"뭐? 내가 왜? 안해. 나가."
"삼촌. J랑 통큰블록 하지 않을~래!?"
난 내 귀를 의심했다. 말끝을 요상하게 올리며 뭐뭐 하지 않을~래!? 라고 말하는게 조카가 할 수 있는 최상위급의 공손한 표현이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 전까진 나에게 한번도 저런 식으로 말한 적이 없었다. 그러더니 조카는 내 손을 잡고 날 거실로 데리고 나갔다.
그렇게 넋나간 상태로 앉아있다가 동생을 바라보고 물었다.
"야.. 얘 갑자기 왜 이래?"
"혼자 노니까 재미없나봐. 아까 오빠랑 둘이 놀 떄가 재밌었나본데?"
그 말 한마디에 지금껏 품어왔던 미움분노증오가 눈 녹 듯 사라졌다. 그렇게 블록 하나로 우리들의 사이는 조금 더 돈독해졌다.
하지만 문제가 생겼다.
힘들었다.
같이 놀아주는게 너무 힘들었다.
좀 쉬고 싶은데 조카는 지치질 않았다. 먹고 자고 노는게 주업무라 그런지 아무리 놀아줘도 조카는 만족하지 못했다.
"J야.. 피곤하지? 이제 고만 놀고 잘까?"
"아니. 안피곤해."
내가 피곤해! 내가 피곤하다고!
물놀이를 해도 기본이 한시간이고 그네를 태워주면 내 팔에 감각이 사라질 때까지 태워줘야 했다.
요즘 난 다시 조카와의 관계가 소원해지려면 어떻게 해야할 지 고민하고 있다.
<내 체력을 고갈시키는 모습과 그래도 이제는 제법 예의바른 어린이가 된 조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