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GM] 각 국의 특수부대를 알아보자 2편 - 오스만 투르크의 예니체리
오늘은 오스만 투르크의 상징 예니체리에 대해서 알아봅시다.
예니체리는 (오스만 터키어: ڭچى, yeniçeri)로 오스만 투르크 제국의 군단을 지칭하는 명칭입니다.
예니체리의 어원은 투르크어 예니센에서 유래한 말로 "새로운 병사"라는 뜻입니다.
술탄의 직속경호대이자 친위대 역할을 하는 정예군단입니다.
1364년 오스만 제국의 술탄 무라드 1세가 예니체리 군단을 처음 세웠는데요.
일부 학자들은 2대 술탄인 오르한 1세가 창설했다고도 합니다.
오스만 제국 초창기의 오스만군은 유목민 경기병들이 모인 군대라고 보시면 됩니다.
야전에서는 강하지만 공성전에서는 문제가 많았는데 니카이아와 니코메디아를 함락시키는데 30년이 걸린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문제를 인식할수 있습니다.
이 결과 오스만 제국은 보병의 형태를 가진 상비군의 필요성을 절감하게됩니다.
군대적인 측면이 아니더라도 다른 측면에서도 예니체리의 탄생이 연관되어있지만 특수부대를 이야기하는데 정치적 이야기까지 적기는 귀찮네요.
(무라드 1세의 초상)
보통의 예니체리는 술탄의 직속경호대 겸 친위대 역활을 하는데요.
공병의 역활도 소화하는 만능부대였습니다.
(예니체리를 만든뒤 무라드 1세의 영토확장)
전쟁이 없을시에는 술탄이 머무는 장소에서 경찰관이나 소방관의 역활도 같이하기도 했습니다.
심지어 예니체리는 세계 최초의 군악대인 메흐테르를 만들기도했습니다.
왜 세계 최초의 군악대로 메흐테르를 이야기하는지에 대해서 의문을 가질수있지만 메흐테르는 순수하게 군의 사기를 위한 연주를 하였기때문입니다.
(메흐테르)
(예니체리)
초기의 예니체리는 전쟁포로와 비이슬람교도들을 강제로 징집해서 병사들로 만들었는데 특히 오스만 투르크와 가까운 발칸 반도 지방의 기독교도들을 징집하기도 했습니다.
실제 징집은 선발 담당 관리가 마을을 돌아다니면서 10~20세의 어린 소년들을 모아놓은 뒤 가장 뛰어난 소년을 선발해서 데려가는 형식을 취하고 있었습니다.
일부에서는 출세를 위해서 뇌물을 받치면서까지 자식들을 예니체리에 보내기도했습니다.
이 징집제도를 데브시르메라고 하는데 단순히 예니체리에 한정된 징집제도가 아님을 알려드립니다.
최근 영화 드라큘라에서도 강제징집하는 장면이 나오기도합니다.
(남자주인공 나 닮은듯.)
어린 소년들은 강제로 징집이되면 이슬람과 투르크의 전통을 익힌후 이슬람으로 종교를 개종합니다.
터키어를 배우면서 자신의 부대원을 가족으로 여기고 술탄을 아버지처럼 추종하는 교육을 받습니다.
엄격한 신체훈련과 각종무기를 다루는 기술을 익힌후에만 예니체리 부대로 편성됩니다.
초기의 예니체리는 활을 주무기로 할버드, 검을 사용했지만 1440년 머스킷이 도입된 이후에는 머스킷을 사용하였습니다.
예니체리들은 다른 정규군들과는 다른 특별한 군복을 지급받았으며 다른 이슬람교도와는 달리 콧수염을 제외하고는 수염을 기르지 않았습니다.
이슬람에서는 믿음의 조상인 무함마드같은 예언자들이 본받아야할 대상이라 보았는데 예언자들이 수염을 기르는것까지 본받아야한다고 합니다.
(예니체리의 군복)
예니체리는 복장에서부터 다른 군대와는 달리 특별한 대우를 받았는데 뵈르크라고 부르는 하얀색 머리 보호대를 착용하였습니다.
예니체리들은 청색이나 암청색의 치마와 붉거나 노란색을 지닌 로브로 만들어진 돌라마라는 군복을 기본으로 지급받았습니다.
고위장교들의 군화는 붉은색이었고 그 외의 군인들은 검은색 군화를 지급받았다고 합니다.
예니체리에서도 솔락과 페익이라고 불리는 정예부대원들은 노란색 군복과 청동 투구를 지급받습니다.
그리고 궁궐경비대인 보스탄지는 바타라라고 부르는 붉은색 머리보호대와 붉은색 로브를 착용했습니다.
장교들은 일년에 2번, 일반 사병들은 1년에 한번 지급받았다고 합니다.
예니체리는 예니체리 안에서도 세분화가 되는데 지르힐 네페르 (갑주병사), 투페케치 (소총병), 오크추 (궁수), 솔락, 페익, 보스탄지등으로 나뉘게됩니다.
지르힐 네페르는 사슬갑옷과 투구를 착용하고 여러가지 무기를 소지하였습니다.
솔락과 페익은 투구는 착용했지만 갑옷은 입지않고 가다라라는 창과 단검을 소지하거나 활을 소지했다고합니다.
초기의 예니체리는 결혼이 금지되었고 일정한 주거지역을 벗어나는것이 금지되었지만 16세기에는 금혼규정이 철폐되었고 자식이 무슬림이라고 하더라도 예니체리로 선발되는 특권이 주어지게됩니다.
하지만 예니체리는 특권이 주어지면서 군사집단에서 이익집단으로 변하게 되는데 세습이 가능해지면서 그런 모습이 더 강해졌습니다.
그 결과로 1621년 호틴에서 폴란드와의 전쟁에서 12만에 달하는 대군을 동원하고도 참패를 하는데 상대가 얀 카를 코드키에비츠라는 명장이라고 해도 예니체리의 능력에 문제가 있다는 점을 여실히 보여줍니다.
17세기 초부터 예니체리는 궁궐내에서 반란 및 항명을 지속하게 되는데 이러한 모습은 예니체리의 몰락을 더 가속화시키게 됩니다.
특히 1648년 예니체리의 행실을 보고 오스만 2세가 예니체리를 개혁하려고 했지만 예니체리가 궁궐에 난입해 술탄을 죽이고 정신질활을 앓던 오스만 2세의 삼촌인 무스타파 1세를 술탄에 추대하는 일이 벌어지게됩니다.
이 사건을 기점으로 예니체리는 술탄조차도 감히 대항할수없는 존재가 되었는데요.
이후에도 19세기 초에 셀림 3세가 개혁을 시도하려다 폐위를 당하고 암살을 당하게 됩니다.
하지만 1820년 예니체리가 그리스의 독립전쟁을 진압하는데 실패하면서 예니체리의 몰락의 끝이 보이기시작하는데요.
1826년 예니체리에 의해 살해당한 셀림 2세의 동생인 마흐무드 2세가 예니체리의 막사에 포탄을 쏟아부어 예니체리들은 죽이고 살아남은 예니체리들은 처형을 당하거나 유배형에 처해지면서 예니체리는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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