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가(李家) 계보 이안사 - 이행리 - 이춘- 이자춘 - 이성계
1. 이성계의 고조 할아버지 이안사.

-이씨 가문 본래 본거지, 전주
전주 호족 출신. 몽골 대항기로 개인 가신단과 사병을 보유하고 있었음.
20대 초반 시절 이안사의 여자를 전주 고을 별감이 건드림. 이안사 격노하여 다투다 싸움박질.
별감은 상사인 고을 현감에게 고자질함. 현감은 안렴사(현재의 도지사급)에게 고발.
그러나 이안사의 사병단의 규모가 있어 안렴사는 조정에 구원병을 요청. 조정은 미적댐.
조정이 꾸물거리는 사이, 이안사는 모든 재산을 처분하고 가신단을 이끌고 강원도 삼척으로 도망.

-이안사 집단, 토벌을 피해 전주에서 강원도 삼척으로 피신하다
이때 전주의 모든 것을 버리고 이안사를 따라 삼척으로 따라간 가구가 무려 170가(家).
170가(家)는 이후에 이씨 가문이 사방 팔방으로 쫒기는 와중에 끝까지 함께하는 충성심 있는 가신단이었음.
이안사 집단은 삼척에 자리 잡으면서 농사를 지으며 세력을 키워감. 당시 고려에는 왜구가 여기저기 출몰 했기 때문에
이안사 집단은 왜구에 대비하기 위해 배 15척을 건조했다는 기록이 있음.
겨우 겨우 세력이 자리 잡나 싶었는데, 새로운 안렴사(현재 도지사급)이 이 지방으로 부임한다는 소식을 들음.
근데 그 안렴사가 바로, 전주 시절 여자 때문에 치고 박고 했던 바로 그 별감!
이안사가 안렴사가 군을 이끌고 자신을 토벌하려고 하면 대적하기 힘들것으로 판단.
북방 의주로 이동함. 이때 170가(家) 역시 모든 기반을 버리고 이안사를 따라 의주로 함께 감.

-운명의 장난처럼, 별감이 도지사로 부임하자 삼척에서 북방 의주로 다시 피신
이안사는 조정의 행정력이 미치지 않는 의주로 가 세력을 키우기 시작함. 기병 전력을 양성하고 사병을 강화하기 시작.
고려 조정은 이안사에 대해 사실상 통제를 포기하고,
이렇게 된 이상 몽골 제국을 방어하라고 의주 병마사에 임명함. (말 뿐인 직책)
당시 이안사 세력은 주변에서 전력을 꽤 높게 평가받고 있었는 듯함. 그를 눈여겨 보던 몽골제국의 장군 산길(散吉)이 이안사에게 귀순할 것을 2 차례에 걸쳐 권유함.
항복하지 않으면 공격. 이안사 사병들이 세력을 불렸다 하나, 몽골제국과 붙으면 박살나는게 당연지사.
고민하던 이안사는 몽골제국에 귀순.
정치적 보호막을 만들기 위해, 이안사는 자신 집안 여자를 산길과 혼인 시켜 인맥을 만듬.
의주에 있으면 고려의 공격을 받을 수 있으므로 자신은 더욱 북방으로 이동해. 개원로 남경 알동(현재 길림성 훈춘시)에 정착함.

-의주에서 현재 길림성 훈춘시로 본거지를 옮기는 이안사 집단.
남경 알동(현재 길림성 훈춘시)로 이동한 이안사 집단. 이안사는 집단 유지를 위해 주변 사방을 다니면서 왕래했음.
이때부터 이가군은 순수 농민집단에서 여진과 같은 북방 이민족과 같은 생활 방식으로 변화했다고 함.
사냥과 농업을 병행하고, 말을 길러 기병 전력을 키워내는데 주력함.
이안사는 아들 이행리에게 가독을 물려주고 사망함.
2. 이행리
이가군의 2대 가주로서 몽골 제국 소속으로, 일본 원정에도 참가.
이행리는 정치 감각이 뛰어났음. 여몽연합군으로 참여하면서 비밀리에 충렬왕에게 밀서를 보냄.
"우리 가문이 몽골에게 귀순한 것은 불가항력이었습니다. 용서를 구합니다. 언제라도 불러주시면 힘이 되겠습니다."
밀서를 받은 충렬왕은 이안사에게 지금은 몽골의 세가 강력하니 때를 기다려 자신의 명에 움직여라 하고 답장함.
이행리는 앞날을 어찌될지 모르니 몽골과 고려에 발 한쪽식을 다 걸치려는 의도이었음.
이행리는 뛰어난 정치력과 높은 운영능력으로 세력을 키움.
주변의 많은 유목민과 여진족들이 이가군으로 속속들이 모여들기 시작함.

이씨가문이 있는 곳은 건주여진의 세력판이었는데
당시 그 주변땅은 항상 물자와 인력이 모자라서 워킹데드 같은 분위기였음.
시도때도 없이 전쟁하여 서로의 물자를 빼앗고, 인력이 부족하여 사람을 납치하는게 일상이었음.
그런데 이행리의 세력이 점점 커지자 건주 여진의 각 군벌들은 그를 매우 경계하기 시작했음.
이가군의 세력이 꽤 컸으므로, 여진족 천호장들은 각자 연합군을 결성해 이행리를 비밀리에 치기로 함.
이때 이행리는 자신의 목숨이 위험에 빠진것을 모르고 소수의 가신만을 이끌고 다른 지역을 방문했었음.
평소 이행리와 친분이 있던 노인 한명이 몰래 다가와 귀뜸 해주었음.
이행리는 소수의 가신을 이끌고 필사의 도주를 감행. 알동에 있던 본거지는 천호장 연합군에게 박살나고
이행리에게도 삼백명이 목뒤까지 붙는등 위험 천만한 상황에 빠짐.
이행리는 구사 일생으로 탈출에 성공한 뒤, 살아남은 자신의 사병들을 이끌고 이리 저리 피신하기 시작.
이행리 군단은 아버지 이안사가 세력을 키웠던 의주로 이동하기로 함.
의주로 정착한 이행리는 자신의 정치력과 운영능력으로 다시 세력을 키우기 시작함.
운영왕 답게, 알동시절 못지않게 기병 전력을 키우고 군단 세력을 크게 키움.
세력을 열심히 키운뒤 아들 이춘에게 가독을 승계하고 사망함.
이춘
이성계의 할아버지. 이때 이가군은 170가의 후손들과 따라온 여진족 세력을 비롯하여 수천의 기병세력으로 컸음.
의주는 대량의 말을 목축하기 불리했으므로, 목축이 용의한 함주(현재의 함경도 함흥)로 이동하기로 함.

-대량의 기마대의 목축을 위해서 본거지를 의주->함경도 함흥으로 이동하는 이춘.
이때의 이가군은 끝도없는 약탈과 전투를 거치면서 생존한 사람들로 모인 전투의 프로화가 진행됨.
이춘은 주변의 중소 세력과 전투를 벌이거나 흡수하여 세력을 크게 불림.
주변에서 크게 인정받는 세력으로 성장하여, 이춘은 원나라 쌍성총관부의 딸과 결혼함.
이춘 군단은 주변의 여진족과 유목민을 흡수하여 상당한 세력이 되엇는데,
이에 원나라는 이춘 집단을 이행리의 본거지였던 알동(현재 길림성 훈춘) 으로 돌려보내려고 함.
함흥 지역은 대량의 목축이 용이하고, 농업도 꽤 진행되어 이가군에게 경제적, 군사적으로 필수적인 요충지였음.
아버지때부터 개고생하여 일군 세력이 무너지는 꼴을 볼 수 없었던 이춘은
직접 본인이 원나라로 달려가
조정에 상소를 바치면서 필사적으로 이동을 막아내었음.
이춘은 고려 출신 여자와 여진족 여자들과 결혼하여 자식 여러명을 두었는데
장남 타사크 부케(한자명 탑사불화(塔思不花))에게 가독을 물려 주고 사망.
그러나 장남 탑사불화는 가주가 되자 마자 얼마 안되 사망함.
공석이 된 4대 가주를 놓고 아들들끼리 내전이 일어남.
그 중 세력이 가장 컸던 교주(咬住), 완자불화(完者不花), 나해(那海)가 가독 승계 후보자 였음.
이대로 가면 내전으로 공멸하기 마련이었으므로, 아들 중 이자춘이
원나라에 개원로에 직접 출두하여 사정을 설명하고, 후계자를 임명 받아오겠다고 함.
원나라는 설명을 듣더니, 이가군의 후계자로 교주를 임명함.
그러면서 교주의 나이가 매우 어렸으므로 이자춘이 섭정할 것을 명함.
이가(李家)의 섭정이 된 이자춘은 명분을 얻은 것을 바탕으로 전투를 벌여 완자불화, 나해등 나머지 세력을 때려잡음.
원래 4대 가주인 교주는 이후 기록이 없어 행방을 알 수 없으나, 정황을 보아
섭정 이자춘이 가주를 차지하고, 교주는 암살당하거나 사라졌을 걸로 추정.
이자춘은 여러명의 부인을 두었음.
여진족 부인은 아들 이화를 낳고, 다른 부인은 이원계를 낳고, 다른 부인은 이성계를 낳음.
이자춘은 묘를 이장하던 중에 한자를 칼을 얻게 되고 이를 아들 이성계에게 하사함.

이것이 바로 전어도(傳御刀)로 당시 한반도와 중국에서 보기 힘든 검의 형태로, 한반도 도검 역사에서 의미하는 바가 큼.
함주(함흥)의 풍부한 목초지와 농경지를 노리고 사방팔방에서 약탈하고자
주변 여진족과 왜구들과 수없이 전투를 치루면서 이성계 휘하 병력들은 당대 실전경험이 가장 풍부한 집단이 됨. 그 중 고려인, 여진인 중 활과, 검술, 기마술에 모두 능한 최정예들만 추려내어 친위 기병 2천을 선발함.
원나라에 밑에 있으면서 본토 몽골인들보다 더 기병전술에 통달하여 인정을 받아 어린 나이에 원나라 만호장에 임명됨.
젊은 이성계는 어느 날 초원으로 사냥을 나갔다가 사슴을 만나게 됨.
그는 활 시위를 당겨 쏘았는데, 동시에 다른 곳에서도 화살이 날아와 2개의 화살이 사슴을 맞춤.
2명은 이것은 내 사슴이다 하고 말다툼을 하다, 결국 서로에게 화살을 날리면서 격투함,
치열한 격투 끝에 서로의 무용에 크게 감명받은 둘은 통성명을 나눈 뒤 의형제를 맺기로 함.
이자가 바로 여진족 완안씨 일가의 금패 천호장 아라부카(阿羅不花)의 아들 티무르(후에 이지란)이었음.
풀네임 쿠룬투란 티무르는 역사 기록에 따르면 용모가 매우 아름답고 피부가 고와
마치 여인과 같다라고 서술된 만큼 미소년이었음.
당시 초원지대 의형제는 안다라고 하여 서로의 피를 베어 넣은 술을 함께 마시고, 땅에 물건을 묻는 의식을 했음.
이렇게 안다를 맺으면 평생을 배반하지 않으며 우열을 가리지 않고 동등한 위치를 가짐.
한국 사극에서는 동생, 형니메~ 이러지만 고증에 맞추면
둘은 형, 아우를 나누지 않고 동등한 위치였을 것.
이성계는 당시 북방 이가(李家)의 가독 후계자였고, 티무르는 여진 금패 천호장의 후계자 였으므로 신분도 격이 맞았음.
이가(李家)의 4대 가주인 이자춘은 원나라의 세력이 기우는 것으로 정세를 판단, 비밀리에 고려를 방문하여 공민왕을 알현함.
공민왕은 반원 정책을 필 예정이었으므로 이자춘을 대 환영하였음. 그러나 아직 때가 아니므로 자기의 지시를 기다리라고 함,
후일 공민왕은 밀지를 보내 이자춘에게 원나라를 공격하라 명령함.
이자춘은 이가군(李家軍)을 이끌고 쌍성 총관부를 공격함. 이때부터 청년 이성계 휘하의 특수부대, 북방기병 2천의 무쌍전설이 개막함.
기록에 의하면 북방 기병 2천명은 전투전, 특유의 소라고둥을 불었는데, 뿌우, 하고 울리는 그 소리가 매우 특색있어
적군은 이성계의 기병군단이다! 라고 바로 알아차렸다 하며 매우 두려워 했다함.
고둥 소리와 함께 이성계와 북방 기병이 돌격하여, 적군의 장교와 군관을 노려 화살로 쏴죽여 지휘 체계를 무너뜨리고
이성계와 티무르가 돌격하여 총사령관을 쏴죽여 적의 사기를 크게 떨어뜨림.
무너진 적들을 상대로 칼을 빼들고 도륙전에 난입하는 순서였음.
청년 이성계의 전공
361년 10월 독로강(禿魯江) 만호장,박의의 반란을 진압하고 박의를 죽임.
같은 해 수도 개경을 함락한 홍건적 10만 격파. 이성계가 직접 말을 몰아 총사령관을 참수.
여진족 호바투 세력과 대결, 실록에 따르면 이성계를 얕잡아본 호바투가 부하들을 제지하며 단기로 말을 끌고 나옴,
이를 본 이성계도 칼을 빼어들고 돌격하여 1대1 일기토가 벌어짐.
칼을 들고 서로 휘두르다, 지나쳐 가자 이성계가 몸을 돌려 화살로 호바투의 말을 쓰러뜨림,
부하들이 구해가자 이성계 군단이 돌격 격파함,
원나라에서 쌍성 총관부 회복을 위해 나하추 파견, 나하추는 수만의 병력으로 함경도를 침공함,.
나하추는 너른 평원에 포진하지 않고 함경도의 고개와 골짜기에 각 병력을 분산 배치함.
이성계와 나하추는 병력차가 10배. 나하추는 설마 선제 공격하겠어 생각.
그러나 이성계는 바로 돌격. 신에 달한 기병 컨트롤을 보여주며 본토 몽골 장수보다 더 몽골 전술을 사용하며 각개격파함.
2년 뒤 원나라 황제 덕흥군과 최유에게 1만 군대 주고 고려 침공. 이성계, 최영 연합군이 격파.
같은 해 여진족 장군 삼선 삼개가 이가군 본거지 함주(함흥) 함락.
이성계 북방기병 2천 출격. 여진 본토 기마대 작살냄.
요동 정벌에 투임. 말을 타고 화살을 피하면서 애깃살로 적군 70명을 헤드샷 시키는 무쌍을 선보임.
원나라 장수 채명의 무용이 뛰어나자 영입욕구 상승.
단기 필마로 진격해 채명의 말을 활로 쏘아 떨어뜨리고, 무기도 활로 쏘아 떨어뜨림.
다음엔 허벅지 어디임 말하고 정확히 맞추자 채명 투항.만주 동녕부 함락.
1378년 왜구 수만명이 침공, 지리산에서 고려군 박살냄
이성계가 적장을 참살하고, 북방 기병 2천이 적 전멸시킴.
1380년 대규모 왜구가 침공하여 사근내에서 고려 9원수가 모조리 전멸함.
압도적인 규모의 왜구를 황산에서 전멸시킴. 황산대첩.
한반도에서 만주를 횡단하며 필사적으로 생존하려 했던 생존왕 이가군은 마침내
고려의 구국영웅을 지나 조선 창건의 주축이 됨.
한반도 왕조 개창한 가문중에서 이렇게 사방팔방 이주하면서 생존해 결국 왕까지 되는 경우는 최초인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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