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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운동 민족대표 33인의 변절과 꽁무니 빼기~ ㅋㅋ
1919년 3.1 운동의 발기인으로 알려져있는 민족대표 33인들~ 이들에 대한 숨겨진 이야기를 아십니까 ? ㅋㅋ
다음은, 책-'패자의 역사' / 구본창 저에 나온 내용을 정리한 것입니다.
1. 3.1운동은 당시 종로경찰서 조선인 고등계 형사였던 '신철'님이 모의를 눈감아 주지 않았다면, 3월1일 당일에 운동으로 시작도 할 수 없었다.
2. 신철님은,2월말에 3.1운동의 모의를 알았으나, 모른체 해주었고 일본에 이를 알리지 않았고, 또한 3개월간 만주로 출장을 갔다가 돌아왔으나, 보고를 하지 않았다는 것이 일본에 의해 발각이 나서, 문책을 받다가 자살을 하고 만다.
3. 유림(유교)은 당시 가장 큰 조직을 가지고 있었으나, 지도부가 모두 평민이라는 이유로 불참했다.
4. 33인의 대표들은, 3월1일 당일에 파고다 공원에 나타나지 않았고, 나타나지 않는 다는 사실을 학생/시민들에게 알려주지도 않았다.
5. 33인의 대표들은, 이완용의 별장이었다가 요정(지금의 룸싸롱)으로 바뀐 태화관에서 있다가, 파고다 공원의 5천여 학생/시민들이 독립선언을 한 직후에 곧바로 일본경찰서에 전화를 걸어서 자신들을 체포해가라고 알려주고 일본경찰에 연행이 되었다.
6. 이렇게 어마어마한 일을 벌여 놓은 채 33인 그들은 차후에 전개된 상황에 대한 아무런 대비나 대책도 마련하지 않은 채 종로 경찰서에 스스로 체포되는 비상식적인 행보를 한 것이다.
7. 3월1이 파고다 공원에는 학생/시민 5천명이 모였고, 일본은 행진을 하는 조선인을 바로 총을 쏘는 무장 진압을 한다.
8. 3개월간의 걸쳐 무려 200만명(당신 남북 합 인구 1500~2천만)이 참가한 3.1운동에서, 일본은 시위 초기부터 무자비한 진압으로 일관해 7,500명이 사망하고, 15,000명이 부상당했으며, 약 50,000명이 투옥되었다.
9. 33인 중에서 끝까지 싸울 것을 주장한 사람은 불교를 대표한 한용운만이 그랬고, 33인 대다수가 일본 경찰의 요구대로 일종의 반성문 성격의 해명서를 쓰고 풀려났고, 선언문을 작성한 최남선을 비롯하여 최린, 정춘수,박희도 등은 친일파로 변절했다.
10. 원래 독립선언문은, 한용운님이 썼으나, 너무 과격하다고 하여 최남선(친일파로 변절)이 다소 부드럽게 고쳐썼다.
제 생각에는 세상 물정 잘 모르고, 목숨 걸고 시위를 하다가 죽은 유관순님 처럼, 윗대가리들은 이리 빠지고 저리 빠리고 지 살길 마련해서, 후일에는 상당수 친일파로 잘 먹고 살고, 순수하거나 의협심 강한-그래서 세상 때가 덜 묻은 사람들은 그냥 죽어가고~ ㅋㅋ
이런 세상은, 현재도 진행 중인데, 국가안보를 담당하는 놈/년들(2mb, 정운찬, 안상수 등)의 80%이상이 군대 면제이고, 순진한 군인들은 수십명이 개죽음 당하고~ ㅋㅋ
참고 서적
패자의 역사
대한민국史 1~4
한국사, 그들이 숨긴 진실
우리 역사의 수수께끼 1~3
친일인명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