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딩떄 일진녀랑 사귄썰[30]
훈련소 기간, 주말마다 편지를 쓸 수 있었다
편지를 쓸 시간이 길지 않아서 주로 부모님과
중딩녀, 여학생에게 편지를 붙였다 그렇게 마지막
훈련기간에 뜻밖에 사람으로 부터 편지를 받았다
그것은 다름이 아닌 일진녀의 편지였다
매일 구르고 기합을 받아가며 사회와는 단절된 채
고된 훈련을 받는 와중에 힘을 낼 수 있는것은
소중한 사람들로 부터 오는 편지였다
흙먼지 섞인 밥을 먹어가면서도 내일 편지가 온다는
생각을 하면 밥이 꿀맛처럼 느껴지며 설레기 마련이다
하지만 나는 일진녀가 보내 온 편지를 읽지 않았다
시간이 흘러 일병이 되었을 때 나는 따로 소초
생활을 했다 일개소대 병력만이 남은 채로
특정 지역에서 경계를 서며 생활을 하는 곳이다
인원이 적다보니 훈련은 안하고 돌아가며 경계와
순찰만을 했다 그날도 위병소에서 소총에 검을
착검하여 끼우고 실탄과 공포탄을 휴대하고
방한용 전투모를 쓰고 피복을 입고 있었는데
위병소 입구 왼쪽으로 내리막길이 있는 골목에서
어느 민간인이 올라오고 있었다 철조망 울타리가
고가초소에 붙어 있어서 골목과 고가초소가
울타리를 사이에 두고 붙어 있는 모양이 었다
골목에서는 내 모습이 허리 위로 전부 보였고
내 위치에서 골목은 뛰면 쉽게 넘어갈 수 있었다
나중에 검열관이 와서 이것에 대해 탈영위험이
있다고 지적해서 바뀌기는 했지만..
그 민간인은 위병소 울타리를 따라 내가 있는
고가초소에서 발걸음을 멈추었고 나는 놀랄 수 밖에
없었다.. 그 사람은 다름이 아닌 일진녀였다..
왜 답장 안해줬어?
야.. 너 여기가 어디라고 온거야?!
왜 답장 안 해줬냐고!
쉿..! 목소리 낮춰.. 간부가 보는 날엔 나 죽어..
편지 .. 붙였는데..
너 내 주소 어떻게 알았냐..?
갱군일병님 무슨 일이 신지 여쭈어봐도 괜찮겠습니까?
같이 근무를 서던 두달 후임 일병이 내게 말을 걸었다
너무 떨렸다 우리 소초장은 재정신이 아니여서
민간인에 대해 보고도 안하고 얘기를 나누었다는 걸
들킨다면 나는 폭언과 함께 영창에 갈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그것보다도 일진녀와 이렇게
있다는 것이 내게는 더 중요한 우선순위였다
야, 너는 신경끄고 누가 오는지나 잘 보고있어라
예 알겠습니다
음, 여기 주소 어떻게 알았냐고
네 친구에게 물었는데.. 여기 있다해서
면회도 안된다고 자기도 못만난다는데 내가 어쩌냐!
야, 쉿..! ... 하아.. 편지는 받았다
근데 왜 답장 안했어?
그게... 주소가 적힌 봉투를 잃어버려서..
....너 죽을래?!
나는 검지손가락을 펴서 입술에 가져다 대며
제발 조용히 얘기를 하자는 제스쳐를 취했다
일진녀는 단단히 화난 표정으로 나를 보았다
위병소와 우리 건물은 넘어지면 코닿을 거리에
있어서 크게 말하면 상황실까지 들리기도 했고
간부가 건물에서 나오면 곧장 위병소가 보여
위험하기도 했다.. 그러고 보니 얼마전에 내 친구가
나에게 근무시간에 대해 집요하게 물은 적이 있다
나는 일주일 어치의 경계작전명령서를 보고
내가 투입되는 시간을 다 말해주었는데
생각해보니 일진녀가 친구를 통해 들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나는 후임에게 수첩 빌려서 종이에
할 말을 써서 울타리 너머로 구겨서 던졌다
`할 말 있으면 이 종이 뒤에 글로 적어서 넘겨줘`
그리고 일진녀에게 여분의 볼펜을 던져주었다
일진녀는 쪼그려앉아 무언가를 적기 시작했다
그리고 구겨진 종이를 손으로 곱게 펴서
비행기모양으로 접은 뒤에 내게 날렸다
바람결을 따라 날아온 종이비행기를 잡고
그것을 읽었다.. 그리고 남은 공백에 글을
쓰고 일진녀에게 날렸다 그렇게 한참
가시돋힌 철조망 울타리 사이로 종이비행기들이
날아다녔다..
군대를 전역하고 나서도 여학생은 나를 기다려주었다
여학생은 아직도 변함없이 나를 좋아해주었고
나도 그런 여학생의 정성이 싫지만은 않았다
나는 어느덧 직장을 가졌고 여학생의 부모님을
만나 인사도 드렸다 아버님께서는 나를 좋게 봐주셨다
주말이 되면 여학생과 함께 차를 타고 명산지나
관광지 같은 곳들을 갔다 여학생은 늘 도시락을
싸왔고 우리는 알콩달콩하고 오붓하게 밥을 함께 먹었다
어느날 고등학교 동창친구에게서 연락이 왔다
일진남의 어머니께서 생을 달리했다는 내용이 었다
장례식에 오냐고 묻는 친구에게 나는 잠시 뜸을 들였다
내가 예전에 사두었던 양복을 여학생이 정성스럽게
다려주었다 여학생의 손길이 닿은 것에는 항상 은은한
향이 났다 나는 차를 몰고 일진남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조문객들로 붐비는 장례식장에는 알고 지내던 사람들이
하나둘씩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한참이나 차 안에서
망설이다가 천천히 내려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빈소쪽으로 가니 유가족들이 있었다 나는 간단하게
목 인사를 했다 그리고 일진남과 눈을 마주쳤는데
일진남의 눈에는 단 한번도 보지못한 눈물이 고여있었다
나는 먼저 영정을 향해 두번의 절을 했다 그리고
이번에는 일진남과 마주보며 맞절을 할 차례였다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일진남과는 서로 죽일듯이
치고 박은 사이라서 얘가 내 절을 받아줄지 몰랐다
내가 조금 뜸을 들이자 일진남은 가만히 나를 보더니
먼저 내게 절을 했고 나도 얼른 따라 절을 했다
인사말과 조의를 표하는 것이 예의이기에 나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마음이.. 많이 아프겠구나, 고인의 명복을 빈다..
일진남은 내 말에 대답을 하지 않고 있다가 입을 열었다
고맙다... 친구야.
이상하게 그때 눈물이 났다 가슴 속이 뜨거워지며
뜨거운 눈물이 났다 나는 고개를 숙이고 애써 눈물을
삼켰다 우는 모습을 보이기 싫어 나는 뒤를 돌아 나왔다
곧장 집으로 돌아가려 했는데 몇몇 동창들이 나를
불렀다 고등학교 때 친구들이 많이 와있었고
그들은 쭉 앉아서 술을 마시고 있었다 나는 나를
반기는 애들과 악수를 하고 있었는데 구석진 자리에
일진녀가 앉아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일진녀의 시선을 피했다 마치 못본 것처럼..
친구들과 악수를 하고 간단히 안부를 묻고 일이 있어
먼저 가보겠다는 핑계로 밖을 나왔다 차에 타려는 찰나
일진녀가 내 뒤에서 나를 부른다 나는 차에 시동을
걸었다 일진녀가 한번더 내 이름은 부른다
나는 헨들에 이마를 대고 눈을 감았다
어쩌면 나는 거기서 일진녀를 뒤로하고 떠났어야 했다
하지만 나는 차에서 내려 일진녀에게 다가갔다
일진녀도 내가 있는 쪽으로 걸어왔다
오랜만이야.. 갱군아..
응... 너는 안 본 사이에 많이 달라졌네
너 정장 입은거 처음 본다..
아... 원래 자주 입어.. 네가 못봐서 그렇지..
그래? .. 틀린 말은 아니네..
으음... 그... 넌 요즘 뭐하고 지내?
나 백화점 직원됐어..
예전에 거기서 아르바이트 하더니 마음에 들었나보네..
응.. 너는 뭐하고 지내?
나는 뭐.. 그냥 평범하게 직장 다니지..ㅎ
아.. 있지 혹시 정장 살거면 나한테 와...
아, 너 남성정장 코너에 있어?
... 아니, 여성정장..
응? ... 내꺼 맞춰준다는거 아니였어?
너 아내 생기면 내가.. 그 사람 이쁘게 꾸며주게...
아..
저기.. 갱군아.. 나 꼭 만나면 하고팠던 얘기가 있는데..
그때 저멀리 건물에서 어느 남자가 우리 쪽으로
걸어왔다 그 남자는 일진녀의 이름을 부르더니
일진녀의 뒤에서 어깨를 감싸 안으며 나를 봤다
누구...?
아, 오빠.. 인사해. 내 고등학교 동창 갱군이야..
아? 그래? 반갑습니다 일진이 남자친구에요.
아... 예.. 반갑습니다
일진녀는 아래로 고개를 떨구었고 나는 악수를
하는 손이 조금 떨린다는 걸 느꼈다
나는 집에 들어와 내 방으로 향했다 그리고
오랫동안 열리지 않았던 서랍을 열고 여러 서류들
아래에서 이제는 낡아버린 한장의 봉투를 손에 쥔다
보내는 이
일진시 일진면 일진읍 17, 일진녀
나는 군대에서 받은 일진녀의 편지를 들여다 본다
한글자, 한글자에 일진녀의 감정이 묻어있고
한단어, 한마디 마다 우리의 추억이 스며있다
그렇게 오랫동안.. 오랫동안
그 편지를 읽고 또 읽고 또 읽었다..
그리고 찢어지고 검게 낡은 종이비행기가
좁은 방안을 날아다녔다....
지금까지 구독해주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12월이 되기전에 일진녀와 사귄 썰 [완]으로
찾아 뵙겠습니다 여학생과 대학교 시절 얘기,
중딩녀와 동거 썰을 조금 풀어보겠습니다.
29가 짤릿나 보다 미안하다 ... 새드앤딩 어쩌구하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