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의 아재 "마산아재"

위의 짤 방송버전. 아재의 위엄이 느껴진다.
경기가 잠시 중단된 도중에, 카메라맨에게 양주인 로얄 살루트 를 따라주던 장면. 저걸 보고 된장남이라고 할 수도 없는 게 소주에서 양주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다들 저랬다.사진만 봐도 옆에 담긴 소주가 보인다
1 그들은 누구인가 ¶
2 전설 ¶
이렇듯 같은 꼴리건은 물론, 크보의 모든 구단 팬은 감히 넘볼 도리 없는 그 업적들은 이윽고 하나의 유머 시리즈가 됐다. 상상하기조차 힘든 이야기들이 구전되면서 살이 붙고 하나로 묶이기 시작했으며, 어느 때부턴가 이 전설들은 마산아재 베스트사건 10이란 타이틀을 달고 인터넷을 통해 동네방네 퍼지기 시작했다. 이말년도 써먹은 바 있으며, 진짜 비슷하게 표현했다... ㄷㄷ 불암콩콩코믹스도 마산아재를 소재로 써먹었다.
다음은 그 장대한 서사시의 일부.
2.1 저격수 ¶
VS 쌍방울 레이더스 경기의 어떤 참사. 8회까지 성영재한테 끌려다니며 완봉패를 당하기 일보 직전, 보다 못한 3루의 어느 마산아재가 새총을 꺼내 쌍방울 투수 성영재를 저격했고, 명중시켰다! 성영재는 그 자리서 그대로 떡실신, 당연히 경기는 중단됐다 카더라.
그러나 이는 사실이 아니다. SBS 야구본색에서도 거짓임을 밝혔고, 기사도 있다. http://www.idomin.com/news/articleView.html?idxno=410493
피해자여야할 성영재가 새총에 맞은 기억은 없다고 한 시점에서 이미 거짓이다. 하지만 몇몇 마산아재 신봉자들은 빗나가서 그랬지 실제로는 쐈다는 주장을 하고, 더 나아가서는 성영재가 기절해서 기억을 잃는 바람에(...) 그렇게 되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2.2 용접기 ¶
1995년 한창 롯데가 잘 나가던 시절. 관중 동원이 2만 명 정도 되는 마산 야구장이 매진되어 들어갈 수가 없자 마산아재들은 용접기를 꺼내들었다. 그는 바로 옆동네 창원기계공단의 용접기술자들! 결국 야구장 입구를 녹이는데 성공, 여기서 1만 명이 더 난입했다.
위의 용접기 사건을 통해 문을 뚫었으나 정원 초과의 2승이 된 상황에 자리따위 없었다. 허나 여기서 GG를 때릴 마산아재들이 아니셨더라. 중계석 위 지붕과 스포트라이트 스탠드로 기어올라갔다! 받침대도 없고 뒤로 경사가 져서 여차하면 대참사가 발생할 위험에 놓였지만, 마산아재들은 끝끝내 거기서 버티며 롯데 응원을 하셨다.
철문 해체도 느리다 싶어 야구장 밖의 지지대와 천을 연결한 부분에 발을 딛어 난입한 마산아재도 있었다. 천이 찢어지거나 누가 떨어지거나 그냥 무시하고, 지지대 타고 올라갔다 카더라.
2.4 버스... 그리고 즉석 청문회 ¶
김용희 감독께서 한창 롯데를 물에 빠뜨리던 시절. 같잖은 연패에 벼르고 별렀던 마산아재들은 김 감독이 마산 야구장에서의 경기까지 패배하자 그대로 주차장에 돌격해서 버스를 뒤집어버렸다! 당연 롯데 선수들은 버스를 포기하고 다른 구단 버스를 타서 몰래 빠져나왔다. 그리고 김용희 감독은 연패를 한 죄로 그 자리에서 마산아재들에게 멱살을 잡히셔서 즉석 청문회를 받으셔야만 했다...
"감독님, 왜 졌어요?!"
"죄송합니다..."
"아니... 왜 졌냐고요?!"
"죄송합니다..."
"아니, 시발놈아! 왜 졌나고!!!"
문동환 8:1 사건도 있다. 8:1로 이기고 있던 롯데가 불펜진의 불질로 되레 8점을 퍼줘 8:9로 역관광을 타자, 이번에도 역시 구단 버스가 뒤집혔다. 그리고 불에 휩싸였다! 그런데 하필 이 날이 어린이날이었다... 어떤 마산아재가 이런 짓을 한 이유를 이렇게 밝혔다. 어린이날에 어린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줘야지, 절망감을 주냐? 이 ㄱㅅㄲ들아!!! 하지만... 정작 어린이날에 어린이는 거의 안 보였다...8:9로 역전한 쪽의 어린이들에겐 꿈과 희망이 넘쳤겠지
2.6 제3세력 난입 ¶
1992년인가 1994년인가, 롯데의 마산 야구장에서의 경기와 어떤 단체의 행진 시위가 겹쳤던 날이 있었다. 시대가 시대였던지라 시위대는 자연스레 전경들과 충돌했고, 곧 벽돌과 물대포가 오고가는 전투가 벌어졌다. 그런데 왠 최루탄이 마산 야구장 안에 들어갔고 경기는 중단. 그리자 야구 못보게 가스 뿌리냐며 분기탱천한 마산아재들은 불타는 쓰레기통을 앞세워 구장을 뛰쳐나가서 시위대와 전경의 전투에 난입했다. 캐스터는 "성숙한 관중문화가 필요할 때입니다."라며 떨리는 목소리로 아재들을 진정시키려 애를 썼지만 그 말을 들었다면 이런 일이 벌어지지도 않았다…….
2.7 전설의 실체 ¶
지역 신문의 기사에 따르면, 베스트 10 중 새총저격 사건과 용접기 사건은 거짓이다.
다만 용접기 사건은 아직 논란의 여지가 있는데, SBS ESPN에서 방영한 '야구본색" 3화에서 '문 자체를 용접기로 녹여버린 건 아니지만 "산소용접기"로 "자물쇠"를 녹여서 들어왔다'는 식의 내용과 삽화를 담아 방송을 했다. 해당 방송을 믿는다면 어쨌든 용접기로 자물쇠를 녹였으므로 "엄청난 과장" 급이지 사건 자체가 거짓은 아니게 된다. 설사 마산아재들이 용접기를 쓰지 않았더라도, 위의 기사에 따르면 여러 명이 합심해 자물쇠까지 채워진 문을 부수고 들어간 것은 사실이란다. 어쨌거나 자물쇠 부수고 들어간 건 맞다는 거(...)
또한 용접기 사건과는 별개로, 특고압이 흐르는 조명탑과 경기장 지지대를 타고 문 닫힌 경기장에 난입한 것 역시 사실.
3 아재들의 변명 ¶
4 맞수들 ¶
사실 1980년대, 1990년대까지만 해도 이러한 극성 팬들이 마산아재만 있던 것은 아니다. 마산아재의 위엄에 도전했던 경쟁자(...)들로는 해태 버스방화 사건, 호세 고간 저격 등으로 명성을 떨친 대구아재, 해태 버스방화 사건의 시발점이 된 진동한 저격, 2002년 플레이오프 관중석 방화 사건 등의 화려한 전적을 지닌 광주아재, 하얀색 순면 빤스로 무장하고 그물망을 타시던 도원전사 등이 있다.
5 사라지...지 않았다? ¶
세월은 흘러흘러 8888577은 진즉 깨지고, 부산 꼴리건의 무쌍난무도 그 세가 시들해졌다. 2000년대 들어 크보의 관객문화가 상향평준화되자 마산아재 역시 옛날 저질렀던 갖은 삽질에 회의를 느꼈고, 롯데 구단 역시 마산구장 경기 일정을 서서히 줄였다.
그리고 2000년대 후반기에 들어서며, 특히 야구가 본격적으로 일반인에게 알려진 2010년대로 접어들면서 마산아재는 멸종위기 거의 사라졌다. 자리 깔고 양주 따고 삼겹살 구워 먹는 관전문화는 여전해도 가끔 야갤과 구단 팬들한테 '그런 시절에 그런 양반들이 있었지' 하며 개드립 소재로 입에 오르내를 뿐. 마산아재 자체가 자조적인 유머 소재라 깊게 파고 들 것도 없는 말이니, 괜시리 옛날의 저 몇몇 면만 보고 마산의 야구 팬들에 지역감정 같은 것을 덧씌우지 않도록 주의하자. 무엇보다도 롯데의 암흑기가 끝나며 경남대 공대의 MT촌이 된 마산구장에서 마산아재 난동이 벌어지면 주변 관중들은 '아주라' 대신 집에 가를 외친다.(....)
다만 신구장 문제로 시에서 병크를 터뜨리고 있음에도 시민들의 별다른 움직임이 없어서, 마산아재들은 그냥 날뛰는 곳이 필요한 것뿐이지 야구팬이 아니다 라는 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자세한 건 NC 다이노스/사건사고 참조. 결국 마산아재들은 소시민으로 돌아가버렸다는 평도 있지만, 2014 지방선거 때 어떻게 돌아갈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시범경기 관중은 다른 팀 경기들에 비해 무척 적었다. 19일 9구단 NC와 KIA의 시범경기가 열린 창원 마산구장에는 고작 921명 의 관중이 들어왔다고 한다.# 아무래도 이전같은 야구열기를 쉽게 기대하기 힘들지도 모른다. 아니면 일반 관중은 적고 소수정예의 일부 과격팬들이 난동을 주도할 최악의 상황이 닥칠수도.
6 부활의 조짐? ¶

2012년 4월 14일, NC 다이노스 홈 개막 경기가 열렸는데, 이 때 NC가 집계한 공식 관중수는 9,865명, 퓨처스리그사상 단일 경기 최다관중 기록이 확실시되었다. 4월 15일 관중수까지 합해서 총 15,000명이 넘는 관중이 왔는데, 2012 시즌 홈경기 무료 개장이라는 점을 감안해도 엄청난 수치. 역시 성지 마산 덕분에 처음에는 리모델링이 완벽하게 완료된 내야만 개방했으나 관객을 모두 수용할 수 없어 리모델링이 덜 끝난 외야석을 임시로 개방했다.
또한 롯데 투수가 견제구를 던지자, 관중석에서 일제히 "마!!!"소리가 나오는, 과거엔 상상도 못했던 롯데에게 마를 시전하는 광경이 펼쳐지기도 했다. 그리고 이 경기에서 NC 투수가 견제구를 던지자 롯데 원정팬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마!"를 외쳤지만 마산아재들의 답변은 "산!" 그리고 훈훈하게 이어지는 마!-산!-마!-산!의 열창(...) 당연한 얘기지만 이 쪽이 상대편 '마!'에 대한 부산갈매기들의 대응 '왜!'보다 짝짝 붙는다.
예전처럼 난폭(...)한 수준까지는 아니더라도 그들의 왕성한 활동력과 전투력이 아직 죽지 않았음을 보였다. 이미 2012년부터 마산구장에서는 주중 경기, 그리고 2군 경기임에도 안전요원들을 두세블록마다 한 명씩 배치했는데, 그 수만 해도 잠실 구장보다 더 많다.
2013년 NC가 1군으로 올라오면서, 이들의 전투력이 다시 드러나게 됐다. 시범경기 카더라에 따르면 벌써부터 욕배틀이 펼쳐진 모양.
2013년 4월 2일, 드디어 롯데 자이언츠와 1군 홈 첫경기이자 개막전 경기를 가졌다. 대망의 엔 꼴라시코(...)의 서막이 열렸다 개막전이라 그런지 경기 시작 전부터 많은 관중이 몰려왔다. # 하지만 이미 1만 4천장에 달하는 표는 인터넷 예매로 매진된 상황이었고, 현장판매분은 300장 뿐. 결국 표를 못 구한 아재들은 용접기를 가져오겠다고 하거나 매표소에 벽돌을 던지기도 했다고... # 시작부터 심상치 않은 전투력이 느껴진다[9]... 그래도 과거와는 달리 자제하는 모습을 훨씬 더 많이 보여줘서, NC가 홈 개막전에서 전패를 했음에도 마산아재들이 버스를 둘러싸더니 욱두문자가 아닌 격려와 위로의 응원을 해 주는 훈훈한 모습도 보였다.
사실 30여년간 롯데의 또 다른 본거지나 다름이 없었기에 아직도 롯데의 세력이 남아있다고도 볼 수 있다. 일례로 롯데 NC전에서 NC모자를 쓴 어떤 마산아재가 술에 취해서 강민호한테 '야구 단디해라'라고 하고 지나갔다고.#
그리고, 그러한 응원에 힘입어 팀은 결국 결코 짧지 않은 1군 울렁증을 극복하고 승수를 쌓아가고 있다.
일단 2013시즌에서 딱히 기록에 남을 만한 사건은 의외로 그 명성이 무색할 정도로 아직 일어난 적이 없다. 아직까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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