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의 리즈시절을 이끌었떤 인재들
하순봉 (1941~): 현 경남일보 회장이자 새누리당 상임고문을 맡고 있는 하순봉 전 한나라당 원내총무는 과거 MBC를 대표하던 간판 앵커였습니다.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지학교육과를 졸업했던 그는 MBC의 사회부 기자로 언론계에 발을 들였고, 뛰어난 능력을 통해 승승장구 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하순봉은 문화방송의 첫 기자 출신 앵커였으며, 과거 곽노환, 김기도 등의 앵커가 있었지만 하순봉 만큼 사람들의 뇌리에 남는 앵커는 그 당시에 없었습니다. 덕분에 그 후, 정일권 국무총리의 공보비서관으로 정계에 입문한 뒤 여당 (민자당) 대변인, 한나라당 원내총무, 사무총장, 부총재, 최고위원 등을 지내며 오히려 기자, 앵커보다는 그냥 국회의원으로써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아있습니다.
이득렬 (1939~2001): 최초의 문화방송 고정 앵커였던 이득렬은 한양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한 뒤 1966년, 문화방송 보도국에 입사합니다. 1974년부터 1987년까지 무려 14년간 앵커로써 문화방송 뉴스를 진행했던 그는 문화방송의 전설로 남아있으며, 1987년 워싱턴 특파원으로 나가며 뉴스 진행을 그만두게 됩니다. 늘 뉴스를 마칠 때마다 "MBC 뉴스데스크 전부 여기서 마치겠습니다"라고 말했다고 하죠. 그 후, MBC 사장과 한국관광공사 사장 등을 지내다 MBC에 기자가 아닌 아나운서로 컴백, 라디오 시사교양 프로그램을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2001년, 비교적 젊은 나이에 타계합니다. 비록 군사독재 정권에 협력했다는 비판도 있지만, MBC의 최전성기를 이끌었던 전설적인 앵커이자 존경받는 선배였으니, MBC를 대표했던 인물 리스트에 넣기엔 적절하다고 봅니다.
강성구 (1940~): 고려대학교 언론계의 거두이자 MBC에서 가장 수려한 외모를 자랑했던 앵커 강성구 전 한나라당 의원은 이득렬 전 MBC사장과 입사 동기였습니다. 고려대학교 농과대학을 졸업한 뒤 문화방송 보도국에 입사했고, 도쿄 특파원, 보도국장, 보도본부장, 해설주간 등을 거치며 문화방송에서 자리를 잘 잡았습니다. 1987년부터 1988년까지 앵커로 뉴스를 진행했었는데, 이 당시 뉴스데스크의 시청률이 무려 40%에 육박했다고 합니다. 그 뒤, 93년부터 96년까지는 MBC 사장을 지냈고, 그 뒤 새천년민주당의 공천을 받아서 16대 국회의원에 당선되었지만, 노무현이 대통령에 당선되자 그에 반발하며 민주당을 탈당한 뒤 한나라당에 입당, 철새 정치인이라는 비판을 받았습니다. 그 결과 17대 총선에서는 낙선하고맙니다.
추성춘 (1946~): 사람 참 좋아보이던 인상의 앵커 추성춘은 1988년부터 89년까지 문화방송 뉴스데스크 앵커를 지냈습니다. 중앙대학교를 졸업했으며, 주로 외신부에서 활약했던 기자였죠. 해설주간, 보도국장, 제주 MBC 사장 등을 지낸 뒤 은퇴합니다. 앵커로써 진행하던 당시 인기가 많아서 유행어도 있었다는군요.
백지연 (1964~):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언론인 백지연은 연세대학교 심리학과를 졸업한 YTN의 얼짱 기자 나연수의 직속 선배입니다. 1987년 겨우 23살의 나이에 문화방송에 아나운서로 입사했으며, 입사한지 겨우 5개월만에 뉴스데스크 앵커에 발탁되는 등, 여러모로 파격적이였습니다. 1988년부터 1996년까지 뉴스데스크를 진행하며 최장수 여성 앵커로써의 기록을 남겼으며, 90년대 들어서는 국제부 기자로 보직을 변경해서 활동했습니다. 프리랜서 선언 이후에도 여전히 영향력 있는 언론인으로 활동했으며, 자신의 이름을 걸고 상당한 수의 프로그램을 진행했습니다.
정동영 (1953~): 전북 출생의 수재였던 정동영은 서울대학교 국사학과를 졸업한 뒤 문화방송에 입사했습니다. 그 당시의 문화방송은 정권 찬양을 하는데 여념이 없었는데요. 그 당시 정동영 기자가 전두환 대통령을 찬양하던 영상이 07 대선 때 넷상에서 퍼지는 바람에 지지율을 깎아먹는데 크게 공헌한 바 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이전엔 유신 정권에 반대한다며 데모하다가 투옥이 됐던 전력도 있습니다. 뉴스데스크에서는 주말 앵커를 맡았으며, LA 특파원을 지내기도 했습니다. 사람들의 기억 속에 가장 오래남을 사건은 역시 삼풍백화점 붕괴사건 취재일텐데요, MBC의 선배들이 늘 말하듯, 정동영이 뛰어난 취재력을 가진 기자였단건 분명한 사실 같습니다.
엄기영 (1951~): 문화방송의 또 다른 전설. 1975년 취재 기자로 MBC에 입사했으며, 85년부터 88년까지 3년간 파리 특파원을 지냈습니다. 그 역시 다른 기자들이 그랬듯이 서울대학교를 졸업했고, 사내 인맥을 쌓아가는데 크게 어려움이 없었습니다. MBC 보도제작부 차장을 거쳐서 드디어 문화방송 뉴스데스크 앵커 자리를 꿰차게 됐었고, 89년부터 96년까지 간판 앵커로 활약하며 수 없이 많은 어록들을 남겼습니다. 그에 더붙어 국민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던 앵커임에는 두 말할 여지가 없습니다. 그 뒤, 정치부장, 보도국장, 보도제작국장 등을 맡으며 간부로써 일했고, 2000년에는 보도본부장에 이르게 됩니다. 2002년부터 2008년까지 다시 MBC의 간판 앵커로 뉴스를 진행했으며, 그가 뉴스를 진행한 시간을 계산하면 거의 15년 가까이 됩니다. 2008년에는 문화방송의 사장이 되었으며, 수 없이 많은 MB정권에 압력해도 굴하지 않으려 했지만, 결국 2010년에 물러나게 됩니다. 마지막에 떠날 당시 노조원들과 함께 "문화방송은 영원할 것입니다"라는 짧고 굵은 말을 남긴 채 35년 넘게 일한 정든 회사를 떠납니다. 그의 후임이 바로 재처리였습니다 ^.^
심재철 (1958~): 광주광역시 출신의 심재철은 1980년대 당시 전두환의 독재 정권에 맞서 싸운 학생 운동권의 주축이자 핵심인물이였습니다. (훗날 새누리가 됩니다 ㅇㅇ) 서울대학교 영어교육과에 재학하며 총학생회장을 지냈던 그는 옥살이를 마친 뒤 동대문여자중학교에서 영어교사로 일하다 1986년 문화방송의 보도국 기자로 언론계에 입문합니다. 그 당시에도 MBC는 여전히 정권에 유리한 보도만 냈으며, 나아질 기미가 별로 보이지 않았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네). 이 때, 심재철은 이에 반발하여 방송사 최초로 문화방송의 노동조합을 만들었으며, 초대 노조위원장을 지내며 투쟁했습니다. 이 결과 92년에는 다시 감옥살이까지 합니다. 하지만 이를 계기로 MBC는 정상적인 언론으로 돌아왔으며, 최초로 노조위원회를 제작했던 심재철은 다시 기자로 활동할 수 있게 됩니다. 사회부 기자로 활동하던 중, 1993년에 치명적인 사고를 당하며 기자 생활을 그만두고 정계에 투신해 신한국당에 입당했으며, 2000년엔 국회의원에 당선되어 현재는 4선 국회의원이자 새누리당 최고위원중 한 명입니다.
구본홍 (1948~): 구본홍 기자는 1974년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보도국 기자로써 MBC에 입사했으며, 한 때 뉴스데스크 주말 앵커를 지내기도 했습니다. 1974년부터 2005년까지 MBC에서만 일했던 문화방송맨이였으며, 05년에는 보도본부장을 끝으로 물러납니다. 하지만 2008년에 다시 MB의 고려대 인맥을 통해 YTN의 수장이 되었으며, YTN을 망치는데 크게 일조하시게 됩니다. 얼마 안가 물러났고, 지금은 CTS기독교 방송의 사장을 맡고 있습니다. (CBS랑 다른 방송국입니다) YTN 시절은 흑역사 그 자체지만, MBC에서는 나름 보도본부장으로써의 본분을 다했기에, MBC를 대표하는 인물란에 포함시켰습니다.
최문순 (1956~): 생김새부터 개성 넘치는 강원도 사나이 최문순은 강원대학교 사범대학에서 영어교육과를 전공했으며, 졸업한 뒤에는 서울로 상경해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영문학 석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그 뒤, 29살의 나이에 문화방송 취재기자로 언론계에서의 커리어를 시작했으며, MBC 내에서 주류라기보다는 비주류에 가까운 인물이였습니다. 굵직한 역할을 맡은 것도 아니였으며, 그렇다고 특종을 잘 뽑아내는 기자도 아니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는 입사한지 21년만에 MBC의 대표이사 자리에 오르게 됩니다. 이 때 그의 나이가 만으로 50이 채 되기 전이였습니다. MBC 사장 재직 시절에는 공정하면서도 비판을 꺼리낌 없이 하는 뉴스를 계속해서 내보냅니다. MBC 뉴스데스크의 마지막 리즈 시절은 신경민 앵커-엄기영 사장 라인보다는 오히려 엄기영 앵커-최문순 사장 라인 시절이라고 하시는 분들도 계십니다. 최문순 사장은 비록 비주류 학벌 라인에 노조위원장 출신이기는 했지만, 착하고 올곧은 성품 덕분에 부하직원들로부터 신뢰와 존경을 받았다고 합니다. 2008년에는 MBC 사장직에서 물러나 정계에 입문, 민주당 국회의원으로 활동하다 현재는 강원도지사를 맡고 있습니다.
신경민 (1953~): 현 민주당 국회의원 겸 당내 최고위윈. 정동영과 같은 고등학교(전주고)와 대학교(서울대)를 나왔지만, 정작 입사는 그보다 4년 정도 늦게 했던 신경민은, 끝까지 언론인으로 남으려고 했던, MBC의 전설적인 베테랑 기자였습니다. 80년대 후반에 잠시 주말 뉴스데스크의 앵커를 맡기도 했으며, 오랜 기간 문화방송의 얼굴로써 활약했죠. 그의 기자로써의 능력이 가장 잘 발휘되었던 순간은 그 어느 때도 아닌 워싱턴 특파원 시절이였다고 합니다. 그 뒤, 국제부장과 보도국장을 거쳐서 MBC 평일 뉴스데스크 앵커 자리까지 오르게 됩니다. 경험 많고 사내 대부분의 직원들의 깊은 존경을 받던 선배였었고, 이는 김재처리의 질투로 이어지게 됐습니다. 실질적으로 김재철의 입장에서는 사내 최대의 정적은 누가 뭐라해도 신경민 앵커였으며, 그를 쳐낸 이후에는 별 탈 없이 문화방송을 정권의 후빨방송으로 전락시키는데 성공합니다. 신경민은 2012년 총선에서 거물 권영세를 누르고 국회의원에서 당선되며 그의 저력을 입증하기도 했습니다.
박광온 (1957~): 현 민주당 대변인을 맡고 있는 박광온 대변인은 과거 MBC 뉴스데스크의 앵커를 지냈던 언론인 출신입니다. 1984년에 문화방송에 입사, 외신부 기자 라인을 타서 도쿄 특파원을 지냈고, 당연하게도 국제부장을 지냅니다. 그 후 보도부장과 정치부장을 거쳐서 뉴스편집센터 1CP로 근무하며 뉴스 프로듀싱을 전담했으며, 그 뒤에는 정치국 편집위원과 문화방송 논설위원실 논설위원을 지냅니다. 한 1여년 정도 100분 토론을 진행하시기도 하셨습니다. 이 분이 전남 해남 태생이신데, 어렸을 때부터 총명하기로 유명하셨다 하는군요. 앞으로도 좋은 행보 기대해봅니다.

박영선 (1960~): 경희대학교 지리학과를 졸업했던 박영선은 문화방송에서 1982년, 아나운서로 언론계에 입문했으며, 후에 보도국 국제부로 옮겨 기자로 일하며 최초의 기자 출신 뉴스데스크 여성 앵커로 유명세를 타게 됩니다. 미국에서 특파원으로 일할 당시에도 정확한 뉴스 전달로 시청자들의 호평을 받았으며, 선배 정동영의 도움으로 정계에 입문, 17대 국회의원을 시작으로 국회에서 수 없이 많은 활약을 펼치고 계십니다. 현재는 새정치민주연합의 원내대표로 활동 중입니다.

한선교 (1959~): 1984년, 문화방송에 아나운서로 입사해 언론계에 입문했던 한선교는, 한 때 주부들 뿐만 아니라 어르신들과 젊은 층에서까지 두터운 호감과 인지도를 쌓았던 S급 아나운서였습니다. 과거엔 낙하산 사장 인사 반대 시위 투쟁 뿐만 아니라 92년, MBC 노조 파업에도 적극 참여하여 동료 아나운서였던 손석희 등과 함께 투쟁했었지요. 95년에 프리랜서 선언을 하고 SBS에서 <좋은 아침>을 진행하며 리즈 시절을 보내긴 했지만, MBC에서도 이미 최정점을 찍었던 아나운서였습니다. 매일 아침마다 티비를 켜면 소소한 웃음과 재미, 감동을 주던 한선교 아나운서는 한 때 MBC를 대표했던 인물 중 하나입니다.
주철환 (1955~): 전 중앙미디어네트워크그룹 상무이사 겸 JTBC 대PD였던 주철환 교수는 과거 MBC의 수 없이 많은 예능 프로그램들을 런칭하며 시청자들의 큰 사랑을 받았습니다. 본래 중학교, 고등학교 등에서 국어 교사를 지냈던 그는 83년에 MBC에 입사합니다. 대한민국 방송계에 한 획을 그은 인물이라 쳐도 과언이 아닌데, 그는 <퀴즈 아카데미>, <우정의 무대>, <일요일 일요일 밤에> 등을 제작, 기획, 그리고 연출하며 MBC에서 자리를 제대로 잡았으며, PD로써는 2000년까지 근무했습니다. 후에 이화여자대학교의 교수로 근무했으며, OBS 방송국의 사장까지 맡았습니다. 그리고 현재는 중앙미디어그룹으로 적을 옮겨 JTBC 개국의 1등공신으로 활약했으며, JTBC 상무이사로 재직하던 시절 그의 처남 손석희까지 JTBC로 영입해 TV조선, 채널A, MBN 등을 누르고 시청률을 높이는 데 앞장섰지요. 지금은 아주대학교 교수로 활동 중입니다.
최일구 (1960~): 상당히 개그스러운 면모가 강한, 흔히 사람들이 아나운서로 오해하는 기자, 최일구입니다. 그는 경희대학교 졸업 후 MBC에 당당히 기자로 입사했으며, 특종을 따내는데 탁월한 기자 중 한 명이였다고 합니다(MBC에는 이 당시 능력자들이 넘쳐났다고 하더이다). 최일구 기자는 경찰서에서 상당기간 근무했으며, 이후 관세청 등을 드나드는 경제부 기자로써도 활약했습니다. 그러다 총리실 출입기자로 정치부에 입문했고, 그 후 MBC 사회부장을 거쳐 주말 뉴스데스크의 앵커를 맡으며 수 없이 많은 주옥같은 어록들을 만들어내십니다. 정 보고 싶으시면 YouTube에 가셔서 검색창에 "최일구"만 뜨셔도 영상들이 쫙 뜰테니 보고싶으시면 가서 보시길. 그 후 보도국 편집위원과 제작국 부국장을 지냈으나, 김재처리에 맞서 파업을 하다가 결국 지난해 이 맘 때쯤, 퇴사하고 맙니다.

최승호 (1960~): 당대 최고의 시사 프로그램 기획자로 이름을 날렸던 PD 최승호는 몇 안되는 똑부러지는 언론관을 지닌 프로듀서입니다. 그는 1986년에 MBC에 입사, 수 없이 많은 시사 프로그램을 런칭하며 MBC의 이름을 드높입니다. 그 중 가장 압권이였던 프로그램은 역시 <미디어 비평>과 이죠. PD수첩 CP를 맡으며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시사교양 프로듀서로 알려졌던 최승호. 그는 문화방송 시사교양귝 2CP/CP를 거쳐 교양국 부장까지 올라갔지만, 그의 출세길 앞에는 김재철이라는 슈레기가 버티고 있었고, 그는 투쟁 끝에 결국 그의 동료들과 함께 퇴사하게 됩니다. 그 후, 뉴스타파의 프로듀서 겸 앵커로 현재는 박근혜 정부의 더러운 실체를 국민들에게 알리려고 노력중입니다.
김주하 (1973~): 아테네의 여신으로 알려진 아나운서, 김주하는 겨우 24살의 나이에 문화방송의 아나운서로 입사했던 재원이였습니다. 이화여자대학교 사범대학이라는 퀄리티 넘치는 학벌에, 이쁘장하게 생긴 외모, 거기에 뛰어난 진행능력까지. 백지연을 이을만한 대표적인 아나운서로 MBC에서는 밀어줄 수 밖에 없던 인물이였죠. 그 뒤 기자로 보직을 변경해 국제부, 경제부, 사회부 등에서 기자로 활동하기도 합니다. 또한 보도국에서 오랜 기간 앵커로도 활약했으며, 2004년 아테네 올림픽 당시에는 "아테네의 여신"이라 불리며 많은 남성 네티즌들을 흥분시킵니다. 김주하가 사람들의 외면을 받았던 대표적인 이유는 바로 그녀가 순복음교회의 신도라는 사실 때문이죠. 하지만 전 김주하가 파업에 참여하는 것을 보고 괜찮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현재는 인터넷뉴스부에서 기자로 활동중입니다. 이혼소송 후 주요 보직에서는 물러난 상태입니다.
한학수 (1969~): 현 MBC 교양국 프로듀서로 근무중인 한학수 PD는 최승호 PD와 더붙어서 대한민국 시사교양계에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는 인물입니다. 그는 본래 문일고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경영학과에 진학, 졸업 후 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도 취득했다고 합니다. 언론고시를 대번에 패스해 97년에 MBC에 입사하게 됩니다. 그 후 수 많은 프로그램들을 런칭했으며, 대표작으로는 역시 이 있습니다. 한학수 하면 역시 황우석 교수의 실체를 까발린 방송의 연출을 맡았던 주역이였으며, 이 당시 PD수첩은 폐지 위기에 놓이기도 했지만, 결국 황 교수의 더러운 행적이 드러나며 위기를 가까스로 넘깁니다. 그 후에도 계속해서 많은 다큐프로그램을 연출했고, 김재철에 맞서 싸우기도 했지만, 현재까지도 문화방송에서 근무 중입니다.
이인용 (1957~): 현 삼성미래전략실의 사장을 맡고 있는 삼성의 전략가, 이인용 사장은 과거 MBC의 간판이였던 기자이자 앵커였습니다. 1982년, 서울대학교 동양사학과를 졸업한 뒤, 문화방송에 입사해 외신부, 국제부 등을 거쳐서 워싱턴 특파원으로 근무하며 경력을 쌓았습니다. 그 후에는 MBC 평일 뉴스데스크의 앵커를 맡았는데요. IMF 당시 매일매일 암울한 뉴스들만 연이어 내보내야만 했던 (-_-) 비운의(?) 앵커이시기도 합니다. 하지만 IMF와는 다르게 이인용 앵커는 국민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으며, 신뢰도가 가장 높은 언론인 중 하나였습니다. 하지만 그는 가면 갈수록 한국의 저널리즘의 폐해에 좌절했으며, 기자로써, 언론인으로써의 한계를 체감한 뒤, 삼성그룹으로 과감히 둥지를 옮깁니다. 이재용 삼성그룹 사장의 선배이기도 한 그는 현재 삼성그룹 내에서도 꽤나 승승장구하고 있으며, 앞으로 삼성을 이끌게 될 이재용 라인의 한 축을 담당할 인물이기도 합니다.
손석희 (1956~): 조선일보 김대중 주필을 잇는 대한민국 언론계의 끝판왕, 손석희는 1984년, MBC 아나운서로 그의 저널리스트 커리어를 시작합니다. 그는 본래 아나운서로 MBC에 입사했지만, 기자도 겸임을 하며 활동했습니다. 수려한 외모와 훌륭한 진행 솜씨로 어렵지 않게 승승장구했으며, 아나운서국 차장, 부장 자리를 거쳐 아나운서국 국장까지 이르게 됩니다. 국제부 기자를 지내기도 했지만, 손석희는 자기는 아나운서가 더 맞는다며 얼마 안가 다시 보도국에서 아나운서실로 옮겼다고 합니다. 하지만, 2006년에 MBC를 떠나며 아나운서도 그만 둡니다. 하지만, <100분 토론>과 <손석희의 시선집중>등의 MBC 휘하의 프로그램들을 계속해서 진행하며 국민들의 많은 사랑과 존경을 받았죠. 2005년부터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언론인 1위에까지 오르면서 그의 저력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2013년, 돌연 그가 진행하던 <시선집중>을 그만 두더니, 그의 매형이 있는 JTBC로 가며 색다른 행보를 보여줍니다. 하지만, 그 해 9월부터 JTBC News 9의 단독 앵커를 맡아 가장 공정성 있는 뉴스를 진행하며 "역시 손석희다"라는 찬사를 받게 됩니다. 계속해서 서민 중심의 저널리즘을 추구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이번 세월호 사건, 너무나도 비극적인 사건이였음에도 불구하고, 언론은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한 채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외면했습니다. 하지만, 손석희 사장만큼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왜 손석희가 손석희인지, 국민들에게 제대로 각인을 시켜줬습니다. 이런 영향력과 언론인으로써의 공정성을 동시에 갖춘 사람이 우리나라에 몇 안 된다는게 안타까울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