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에 150억원을 지출하는 구단(A)과 300억원을 투자하는 구단(B)이 있다. 어느 팀이 우승할까. 여러 가지 변수가 작용하는 탓에 ‘B>A’라고 단정할 순 없다. 하지만 확률은 분명히 조금 더 높다. 프로스포츠는 ‘투자=성적’이라는 공식이 어느 정도 성립된다. (아틀레티, 포항은 손 내리세요.)
아스널은 B보다는 A에 가깝다. 2000년대 중후반부터 맨체스터유나이티드, 첼시, 맨체스티시티 등에 ‘쩐의 전쟁’에서 밀렸다. 그런 상황 속에서도 아르센 벵거 감독은 ‘우리는 흑자’, ‘유망주 대환영’ 정책을 고집했다. 하지만 10년째 무관 불만에 못 이겨 2012년 전후로 한 발짝 물러났다. B에서 A로 옮겨가는 추세다. 맨체스터시티, 첼시의 거부 구단주‘님’들이 “어쭈?”라고 할 정도의 돈을 쓰고 있다. 조심스레 높은 곳을 바라본다.
# 희망 징조 1: 알렉시스 산체스(를 사버린 돈)
루카스 포돌스키, 올리비에 지루, 산티 카솔라, 메수트 외질. 아스널이 2012년과 2013년에 걸쳐 영입한 선수들이다. 전성기에 있는 20대 중후반, ‘끝판클럽’ 레알마드리드로부터 영입했다. 4명을 데려온 이적료 합계액만 6000만파운드가 넘는다. 안드레이 아르샤빈의 영입 이적료를 보며 영국 언론은 “벵거가 드디어 돈을 썼다!”라고 떠들어댄 지가 엊그제 같은데 말이다.
2014-15 시즌을 앞두고 아스널은 ‘빅 사이닝’을 터뜨렸다. 글로벌 브랜드 ‘푸마’와 거액의 유니폼 파트너십 체결로 두둑해진 돈 보따리를 풀었다. 20대 초중반의 창창한 나이, 명문 클럽 FC바르셀로나 소속, 월드컵 득점자 알렉시스 산체스를 데려왔다.
산체스의 이적 발표는 계획 하에 이뤄졌다. 아스널-푸마가 새 유니폼을 발표한 그날, 그 유니폼을 입었다. <포포투>는 싱가포르 유니폼 발표회에서 이 소식을 접했다. 현장에 있던 레전드 솔 캠벨과 싱가포르 언론, 아스널 팬 모두 들뜬 기분을 감추지 못했다. 아스널도 이젠 돈 쓸 줄 아는 팀으로 변신하고 있다. 맨유, 맨체스터시티, 첼시 구단에는 당연한 일이겠지만, 어쨌든.
산체스는 힘과 스피드, 골 결정력을 겸비했다. 활동량도 ‘월드 클래스’다. 루이스 수아레스 못지않게 골 욕심도 많다. 남발하는 한이 있더라도 슈팅 시도 없이는 골을 넣을 수 없기 때문이다. ‘소녀 같은’ 공격 취향의 시오 월컷과 외질 위에 산체스의 가세는 공격 패턴의 다양성을 의미한다. 아스널은 외질에 이어 또 한 번 대박을 터뜨릴 조짐이다.
# 희망 징조 2: 든든한 백업
아스널은 지난 시즌 가장 오랜 기간 리그 1위 자리를 지켰던 팀이다. 2월부터 꼬꾸라지기 전까지는 그랬다. 급추락 이유는 주전 선수들의 줄부상이다. 이로 인해 이름도 낯선 게디온 젤라렘, 백업 공격수로 데려온 야야 사노고와 같은 후보급 선수들이 선발로 나섰다. 이젠 다르다. 투자 효과는 벤치 멤버에서 드러난다. 현 시점에서 산티 카솔라, 미겔 아르테타, 잭 윌셔, 마티유 플라미니, 알렉스 옥슬레이드-챔벌레인, 토마스 로시츠키, 루카스 포돌스키 등이 백업 멤버로 활동할 가능성이 크다. 나초 몬레알, 조엘 캠벨, 토마스 베르마엘렌 등을 합쳐 백업으로도 또 한 팀을 꾸릴 수 있다.
2000년대 중후반까지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어린 세스크 파브레가스가 간판 노릇을 했다. 지금은 월드컵 우승자가 3명(메르테자커, 외질, 포돌스키)이나 된다. 사미 케디라(레알마드리드)도 영입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프랑스 현역 국가대표 선수 3명(지루, 드뷔시, 코시엘니), 잉글랜드 국가대표 주전 1명(월컷)을 보유했다. 정상급 기량을 갖춘 ‘완성형’ 선수들이 늘고 있다. 스쿼드 자체가 양은 물론 질적으로 팽창하고 있다.
# 희망 징조 3: 1등 느낌 아니까
아스널 팬은 지금도 무패 우승 신화를 썼던 2003-04시즌을 떠올린다. 티에리 앙리, 로베르 피레, 프레드리크 융베리, 솔 캠벨, 애슐리 콜, 옌스 레만, 지우베르투 시우바 등이 화려한 추억으로 남아있다. 데니스 베르캄프가 벤치에 앉아있던 시절이었다.
지난 시즌 아스널은 리그를 4위로 마쳤다. 시즌 초중반까지 트로피 주위를 맴돌며 우승에 대한 희망을 키웠다. 아스널은 올 시즌에야말로 정책 변화와 투자가 결실을 볼 시기라고 여길 법하다. 지난 시즌 FA컵 우승에 만족하지 않고 리그 정상을 목표로 달린다. 맨체스터시티, 첼시가 호락호락하게 양보하지는 않겠지만, 어쨌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