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블 . 오 ◀ 슬로 불릿 (브금 있다)
현관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간 나는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온통 검은 옷을 입고 목면까지 두른
강도가 손에 쥔 권총을 치켜세우더니
내가 나타나자마자 나를 향해 총을
발포했던 것이다.
나와 함께 집으로 돌아왔던 어머니는
총성에 놀라 기절하셨고,
나는 눈을 찔끔 감는 것 밖에 할 수
없었다.
그렇게 끝이 났다…
강도의 움직임이.
그가 누구이며 언제 어디서 어떻게
들어왔는지는 아직도 알 수 없으나, 한 가지는 확실했다.
그는 우리를 향해 총을 쏘던 모습
그대로 멈춰있다.
마치 범죄 영화를 틀어놓았던
텔레비전을 일시정지라도 해놓은 듯,
강도의 복면에 가려진 일그러진
표정도,
화약이 터져 총구에서 뿜어져 나오던
불꽃과 연기도,
현관문을 향해 치켜세운 팔도 그대로
멈춰있는 것이다.
기절에서 깨나신 어머니는 다시 한 번
놀라셨지만,
멈춰있던 그 강도가 마네킹이라도 세운
듯 미동도 없자 나중에는 의아해하셨다.
그러다 점차 익숙해지셨고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손님이나 택배 배달부가 집을 방문할
때면 우린 놀란 그들에게
일일이 해명을 해줘야 한다는 문제점이
남아있긴 했지만,
불편함은 거기서 끝이었다.
부엌에 가만히 서 있는 강도는
건드려도,
실수로 부딪혀도 아무런 반응이 없었고
언제나 그 모습 그대로였으니까.
대략 5년쯤 되었을 때는 한 가지
변화를 찾아냈다.
발포된 채 정지되었던 그 강도의
총에서 총알이 조금 밖으로 나와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너무나 느렸다.
5년이나 지났음에도 겨우 5cm가
나온 게 고작이었다.
그렇다는 말은 대략 1년에 1cm
정도가 움직인다는 것이 되는데,
그런 상태라면 이 총알은 거의 멈춘
것이나 다름이 없다는 결론이 났다.
그렇게 1년에 1cm씩 움직이는
총알과 강도를 곁에 두고 우리는 10년을 지냈다.
우리 가족들은 매일같이 멈춰있는 강도
옆에서 식사를 하고,
등교와 출근을 하고, 하교와 퇴근을
했다.
불편하거나 찝찝한 감정도 물론 없지
않아 있었지만,
거의 멈춘 것이나 다름이 없는 총알과
강도는
우리에게 어떤 위협도 되지 않았으므로
우리는 그저 안심했다.
세월이 흘러, 나는 군대를 제대하고
대학을 졸업하고 회사를 다니던 중
같은 부서의 여인과 사랑에 빠져
어느새 결혼까지 하고 이제는 귀여운 아들까지 생겼다.
부엌에서 멈춰있던 강도는 내가 그런
행복한 나날을 지내는 동안에도 늘 그 자리에 있었다.
아내는 물론 처음에는 우리 집의
강도의 존재를 혐오했지만,
나중에는 우리 가족들과 마찬가지로
머지않아 안심하게 되었고,
우리는 5살 난 아이를 데리고서
여행을 떠났다.
신혼여행 이후 첫 해외여행임과 동시에
아들과 함께 떠난 즐거운 여행을 마치고, 우리는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나는 지쳤는지 잠이 든 아이를 한
손으로 끌어안은 채 다른 한 손으로 열쇠를 집었다.
현관문이 찰칵 소리를 내며 열렸고,
곧이어 무엇인가 터지는 소리와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울리는 듯 하더니
갑자기 품에 안았던 아이의 머리를
무엇인가 관통하며 사방으로 붉은 혈액을 흩뿌렸다.
순간 정신이 멍해져있던 내 눈에
들어온 것은 20년 만에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 강도의 모습이었다.
나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잠에서 깼다.
조금 전의 일은 모두 꿈이었던 것이다.
“꿈 이었구나… 현실이 아니라
다행이네….”
나는 안도하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그 몹시 불쾌하고도 기분 나쁜
꿈의 영상은 아직도 내 머릿속을 휘젓고 있었다.
꿈속에서는 어째서인지 내 행동이나
주변 인물의 행동이
마치 해야만 하는 것처럼 당연하게
느끼면서,
막상 깨어나고 나서는 그 행동들이
의아하게 보이듯,
훗날 5살밖에 되지 않은 어린 아이의
목숨을 앗아가는 끔찍한 재앙을 집안에 두고서도
아무렇지 않은 듯이 10년, 20년을
살아간 우리 가족의 모습이 참으로 믿기지 않았다.
목이 마른 나는 물을 마시기 위해
곧장 침대에서 내려와 부엌으로 향했다.
다행히, 그리고 당연히 거기에 복면을
두른 강도나 총알 따위는 없었다.
대신 간밤에 술에 취해 잠드는 바람에
끄는 것을 잊어버린 텔레비전에서
아침 방송으로 제작된 다큐멘터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원전이나 방사능, 세슘 수치라는
용어로 볼 때 일본 후쿠시마 원전의
방사능 유출의 현실을 고발하는
프로그램인 듯 했다.
찬물로 목을 축이고 텔레비전을 끄기
위해 리모컨을 집는 순간 꺼지기 직전 화면 속 사나이가 말했다.
“현 상태로 따져보면, 방사능에
피폭된 어린이들의 피해는 약 20년 후부터 급증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나는 방으로 돌아가 남은 잠을 더
자기로 했다.
기분 나쁜 꿈의 후유증이 아직도
남아있었지만,
어차피 꿈은 꿈일 뿐이고, 현실과는
무관하니 괜찮다고 나는 나 자신을 위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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