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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스] 그녀들의 마음은 ? - 10부

일병 사다리도박사

1범

2014.06.23가입

조회 1,839

추천 2

2014.10.24 (금) 14:46

                           

감동넘치는 로맨스 명작
그녀들의 마음은 ? - 10부


뭐랄까, 그 기분이란.... 마치 세상에서 제일 어울리지 않는 조합을 보는 듯 했다. 물론 내가 오토바이에 대해서 그리 박식한 편은 아니었지만, 아무리 그래도 가와사키 ZX-12R 모델이 여자가 탈 만한 물건이 아니라는 사실 정도는 충분히 알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설미는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그리고 보란 듯이 날렵하게 캔디라임그린색의 바이크 위에 사뿐히 몸을 올렸다.




"뭐 해?"



어두침침한 차고 속에서도 기묘한 빛을 발하는 설미의 두 눈동자가 나를 보았다. 



"헬멧은 안 써?"



"잃어버렸어."



"......"



근데 타도 되는 거니?



"빨리 타."



지금 이 순간, 이유는 도저히 모르겠지만 '인생은 곧 선택의 연속'이라는 말이 뜬금없이 떠올랐다. 지금 여기에 타느냐 마느냐를 결정하는 그 작은 선택이 내게 어마어마한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이 불쑥 들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고민의 시간이랄 것도 없이, 나는 어느새 엉거주춤 바이크 뒤편에 몸을 올리고 있었다.



"......"



다음 순간, 나는 갈등에 직면하지 않을 수 없었다. 대체 어디를 잡아야 한단 말인가? 상식대로라면 앞사람의 허리를 잡아야겠는데.... 새삼 앞사람이 여자라는 사실을 깨닫고 마는 순간이었다. 그것도 그냥 여자도 아닌 엄청나게 위험한 여자....



"흐악!"



설미가 갑작스럽게 액셀러레이터를 당겼다. 어디를 잡기는커녕 마음의 준비도 미처 못하고 있었던 나는 그 상태에서 뒤로 튕겨져나갈 뻔하다가 가까스로 설미의 허리에 팔을 두를 수 있었다. 엄연히 말하지만 이건 생각하고 한 행동이 아니라 살기 위해서 반사적으로 튀어나온 행동이었다. 하지만 의도했던 아니건간에.... 나는 졸지에 설미의 허리를 껴안게 되었다.



"야, 놀랬잖아."



"......"



설미는 시간에 쫓기기라도 하듯이 속력을 마구 올렸다. 그 와중에도 오토바이가 어찌나 유연하게 움직이고 있었는지 이게 정말로 여자의 솜씨가 맞는 건가 싶을 정도였다. 딱히 성별에 대한 고정관념이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이 정도로 능숙하게 오토바이를 타는 여자가 있을거란 생각은 좀체 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었으니까....



허리춤에 팔을 둘렀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아무런 말이 없었다. 하기사 애초에 워낙 말이 없는 성격이긴 했지마는, 그렇다해도 이런 상황에서 일언반구도 없다는 것이 어떤 의미로는 참 굉장해보였다. 여하튼간에 허리를 껴안았다고해서 날 오토바이 밑으로 처박아버린다거나 하는 일은 없을 것 같았기에 나는 허리를 껴안은 팔에 조금 더 힘을 주었다. 



'으아... 허리가...'



잘록하게 들어간 맵시있는 허리의 굴곡이 두툼한 겉옷 위로도 고스란히 느껴지는 것 같았다. 게다가 끌어안은 팔에서는 상황에 어울리지도 않게 왠지 모를 온기까지 전해져오고 있었다. 세찬 바람에 흩날리는 그녀의 검고 긴 머리카락이 내 얼굴을 간질이자 미처 주체할 수도 없이 가슴이 두근거렸다.



나는 도무지 이 상황이 믿어지지가 않아서 그만 정신이 아득해지는 듯 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말도 제대로 붙이기 어려웠던 그녀와 이렇게 허리를 끌어안은 채로 밤거리를 달리고 있다는게.... 



"우, 우리 어디로 가는 거야?"



신호등의 빨간불에 걸려 오토바이가 잠시 멈추었을 때 나는 잽싸게 물었다. 설미는 고개를 옆으로 살짝 틀어서 나를 흘끗 보더니 더없이 진지하고 아름다운 얼굴로 이렇게 대답해주었다.



"술이 있는 곳으로."



"......"



아니, 그러니까 그게....



"으아악!"



신호가 파란불로 바뀌자마자 설미는 또다시 급출발을 했다. 다시 미친 듯이 질주하기 시작하는 오토바이의 격렬한 속도감을 느끼고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얼굴에 와서 부스러지는 바람결을 타고 그녀의 머리칼에서 은은한 샴푸향이 번져오는 것 같아서 또다시 아찔한 감각이 온몸을 타고 흘렀다.



바람 소리는 높고 거칠었지만 나는 이 커다란 심장의 고동소리가 분명히 그녀의 귓가에까지 들리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이렇게까지 큰 소리를 듣지 못할 리가 없으니까.... 오토바이가 빠른 속도로 스쳐지나갈 때마다 길을 걷던 사람들이 한번씩 우리를 돌아보곤 했다. 하지만 지금 내게는 그 시선들을 느낄 겨를조차도 없었다.





















살다보면 가끔은 정말로 술을 마시기 싫은 날도 있다. 연달아 이어진 음주로 인해 몸 상태가 말이 아닌 오늘같은 날이 바로 그런 날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해서 내가 하늘이 내려주신 천금같은 기회를 내 발로 걷어차버릴 만큼 희대의 바보천치인가 하면 또 그런 것도 아니었다. 



"야."



정신을 차리고 보니 우리는 어느새 시끌벅적한 고기집의 구석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앉아 서로를 마주보고 있었다. 지글지글 고기 굽는 소리와 그 특유의 짙은 냄새가 진동을 했고, 가게 안은 또다시 찾아오는 월요일을 한탄하는 직장인 아저씨들의 떠들썩한 푸념소리로 가득했다. 



그런 인간적인 정취가 한가득 느껴지는 고기집의 모습과, 언뜻 비현실적으로까지 느껴질 만큼 말도 안 되게 아름다운 설미의 모습은 어딘가 너무나도 어울리지 않는 듯 해서, 눈으로 보고 있으면서도 이게 과연 말이 되는 광경인가 하는 생각이 자꾸만 들 정도였다. 



주문을 받는 점원조차도 참으로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라고 생각하는지, 주문한 갈매기살을 불판 위에 내려놓고는 뒤돌아서 가면서도 자꾸만 뒤를 흘끗거렸다. 아니면 단순히 설미의 미모에 혹한 것인지도 모르고....



"으, 응?"



"너 술 잘 마셔?"



갑작스런 질문에 말이 막힌 것인지, 아니면 그녀의 깊고 반짝이는 두 눈동자를 마주보았기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순간 대답할 말을 찾지 못하고 눈만 껌뻑거렸다. 하지만 설미는 내 대답을 들을 생각도 없는지 벌써 당찬 기세로 소주병의 뚜껑을 따고 잔을 채우고 있었다. 



"뭐... 웬만큼은."



"난 잘 마셔."



"......"



보통 그런 말을 자기 입으로 하나?



"웬만큼 정도로는 사과 받기 힘들걸."



"왜, 왜?"



"말했잖아. 그런 말 안 취하고서는 못 한다고."



"그게 무슨 상관인데?"



"그럼 내가 취할 때까지 살아있어야 할 거 아냐?"



"......"



그녀의 성격으로 봤을 때 아무리 생각해도 허세는 아닌 것 같은데, 사실 그래서 더 무서웠다. 뭘 얼마나 마시길래 이런 말을 하는 걸까?



"뭐 해?"



어느새 자신의 잔을 한가득 채운 설미가 이쪽으로 병을 기울이고 있었다. 받으라는 뜻인 것 같다. 나는 아무 생각없이 소주잔을 들어올려 설미가 따라주는 술을 받았다. 말 한마디 붙이기도 어렵다는 그 유명한 백설미에게서 술을 받다니.... 혹시 이거 영광스러워 해야 하는 걸까? 



우리는 가타부타 말도 없이 서로의 잔을 가볍게 맞부딪힌 후 소주잔을 쭉 비웠다. 설미의 마시는 폼을 보아하니 첫잔부터 게눈 감추듯 쭉 들이키는 것이 척 보기에도 보통은 아니라는 것을 너무나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원샷으로 잔을 싹 비워버린 설미는 잠시 두 눈을 감고 뭔가 골몰히 음미하는 듯 하더니, 이내 툭 한 마디 내뱉었다. 



"맛있다."



"......"



불현듯 위기감이 엄습한다. 이거 어쩌면 하늘이 주신 기회가 아니라 하늘이 주신 위기일지도.... 아무튼 그렇게 평생 잊지 못할 죽음의 레이스가 시작되었다.





















탈무드라는 책에서는 사람이 술에 취하는 과정을 이런 식으로 묘사한다. 처음 마시기 시작할 때는 양처럼 온순하고, 조금 더 마시면 사자처럼 사나워지고, 더 마시면 돼지처럼 더러워진다. 거기서 더 마시면 원숭이처럼 춤추고 노래하게 된다. 이것은 악마가 인간에게 준 선물이다.



사실 난 그 말이 맞는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다. 사람마다 술 마시는 스타일이 제각각 다른 법이니까. 하지만 바로 이 순간, 적어도 딱 한 가지만큼은 확실했다. 지금 내 눈 앞에 있는 이 여자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말이라는 것 하나만큼은....



"더 시켜도 되지?"



"으, 응."



또 하나의 소주병이 그렇게 아작났다. 밑바닥까지 깨끗하게 말이다. 설미는 안색 하나 변함없이 무덤덤한 특유의 그 표정으로 텅 비어버린 병을 테이블 한구석으로 몰고는 소주 한 병을 더 시켰다. 한방울도 남김없이 철저히 바닥을 드러낸 빈 병들의 장엄한 행렬을 보고 있자니 나는 그만 등줄기에 식은땀이 줄줄 흘렀다.



아까 갈매기살을 날라다 주었던 점원이 다시 소주병을 내어 왔다. 처음에는 그저 설미의 미모에 대해서 놀라는 듯한 눈치였던 그 점원은 이제 그녀가 마시는 양을 보고서 거의 경악을 하다시피 하고 있었다. 사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벌써 몇 병째인지도 알 수 없는 소주병을 조심스럽게 내려놓고서 점원은 조심스럽게 물어왔다.



"저... 손님, 빈 병은 치워드릴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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