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스] 그녀들의 마음은 ? - 7부
감동넘치는 로맨스 명작
그녀들의 마음은 ? - 7부
"와, 의외로 깔끔하네!"
아직도 이 상황을 믿을 수가 없는 나는 신발을 벗을 생각도 않고, 폴짝폴짝 방 안으로 뛰어들어가는 단비 누나의 뒷모습만 멍하니 바라보고 서 있었다. 멍청히 서 있는 내 모습을 돌아본 단비 누나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뭐 해? 안 들어오고."
어째 방 주인과 손님의 입장이 뒤바뀐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거 정말 괜찮을까요?"
"아따, 거 참 사내자식이 간은 콩알만 해 가지고...."
만에 하나라도 절대 쫓겨날 수는 없는 몸이라구요..... 라고 불평하려다가 그냥 그만두었다. 그랬다가는 혹시나 단비 누나가 마음이 바뀌어서 돌아가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이러니저러니해도 나는 지금 이 상황이 싫지 않았다. 아니, 그러긴커녕 은근히 즐기는 듯한 기분도 조금씩 들기 시작하는 것 같았다.
군대 가기 전에도 내내 기숙사 생활을 했었지만 여자가 내 방에 들어온 경우는 난생 처음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성 출입 문제에 대해서 엄격한 기숙사의 규칙을 굳이 어겨보겠다고 마음 먹은 적도 없었고, 그럴 여자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아니, 정말 그런가?'
어쩐지 석연치 않은 느낌이 들어서 나는 기억의 잔재를 조심스럽게 더듬었다. 알게 모르게 연기처럼 떠오르는 모호한 기억들 속에서, 왠지 예전에도 이런 일이 없지는 않았던 것 같은 막연한 기분을 느꼈다.
'세나?'
문득 세나의 얼굴이 떠올랐다. 신입생 시절의 세나. 나와 함께 늘 붙어다녔던, 항상 나에 대해서 많은 것을 궁금해 했던 세나.... 세나는 내가 지내는 방에 한 번 가보고 싶다는 말을 한 적이 있었다.
'난 아직도 기억해. 그 때 기숙사 피아노실에서.'
몇 일 전에 세나가 내게 했던 말이 다시 떠올랐다. 그 때에는 무슨 의미인지 정확하게 떠올릴 수 없었던 그 말. 하지만 지금은 왠지 그 불투명했던 기억을 떠올릴 수 있을 것 같았다. 손 끝에서 연주되던 피아노의 건반, 누나에게서 배웠던 그 잔잔한 선율, 아마도 쇼팽의 녹턴.....
"야!"
까맣게 잊고 있었던 과거의 일들을 다시 끄집어내려 골몰하고 있는데 단비 누나의 고함 소리가 귀를 사납게 찢어놓았다. 멍하니 서 있었던 내 귓가에다 대고 소리를 빽 지른 것이다. 화들짝 놀란 내가 그녀의 얼굴을 보자 누나는 허리춤에 양손을 올려놓은 채로 시큰둥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뭐하는 거야? 멍하니 서서."
"아, 아니에요."
"그렇게 걱정 돼? CCTV에 찍혔을까봐?"
아무래도 내가 멍을 때리고 있었던 이유가 걸릴까봐 걱정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 듯 하다. 나는 고개를 저었지만 단비 누나는 저 혼자 확신해버린 듯 내 등짝을 퍽퍽 두드리며 나를 안심시켰다.
"야, 걱정 마. 걱정 마. 너 개구멍은 잘 알아도 이런건 잘 모르는구나? 너 복도마다 CCTV 설치된거 그거 다 확인할 것 같지? 천만에~ 지금 수위 아저씨랑 사감 쌤들도 다 꾸벅꾸벅 자고 있을걸? 그리고 그거 내일 아침에 녹화된 거 확인해 볼 것 같지? 만만에~ 그거 귀찮아서 다시 안 봐."
참 혼자서 잘 조잘거리는 누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멍하니 서 있자 누나가 뚱한 표정을 지으면서 볼멘 소리를 내었다.
"그렇게 걱정되면 나 그냥 갈까?"
"아, 아니에요. 걱정한 거 아니에요. 생각할게 좀 있어서...."
"무슨 생각?"
"그러고보니 여자를 방 안에 데려온게 처음인 것 같아서요."
나는 적당히 둘러댔지만, 속으로는 계속 세나의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제야 겨우 생각난 것이긴 하지만. 아마도 엄밀히 말하자면 처음은 아닐 것이다. 조만간 그녀와 얼굴을 보게 되면 얘기를 해 봐야 할 것 같았다. 하지만 이제와서 굳이 뭐라고 얘기를 해야 할까?
"정말? 그러면 여자 방에 들어가본 적도 없고?"
"네. 당연한 거 아닌가요? 걸리면 퇴실인데."
"의외네?"
"뭐가요?"
"꽤 사생활이 문란할 것 같이 생겼는데."
".....욕이죠?"
이성의 방에 출입해 본 적이 없다는 사실을 꽤나 뜻 밖으로 받아들이는 단비 누나의 모습을 보니 문득 궁금해지는 것이 있었다.
"그럼 누나는 그런 적 있어요?"
"뭘?"
"이렇게 남자 방에 들어온 적이나.... 아니면...."
차마 '남자를 방에 데려온 적이나' 라고 묻기에는 좀 민망했다. 내 질문에 단비 누나는 턱 끝에 손가락 하나를 대더니 뭔가를 곰곰히 생각해보는 표정을 지었다.
"몇 번 있지."
"정말요?"
하기사 그러고보니 그런 경험이 아예 없었다면 이렇게 내 방에 쉽게 들어오지도 못했을 거란 생각이 문득 들었다.
"하긴 의외는 아니네요."
"뭐가?"
"꽤 사생활이 문란하실 것 같아서."
내 소심한 앙갚음에 단비 누나가 풋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남친이 같이 기숙사에 있었으니까."
"아, 그랬.... 네에?"
고개를 끄덕거리려다 그 말의 의미를 곱씹어보고서는 나는 순간 입이 딱 벌어졌다. 내 뜨악한 표정을 보고서 단비 누나가 웃다 말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그래?"
"아, 아뇨. 누나한테 남자친구가 있었을 줄은 몰랐네요."
"지금은 헤어졌으니까 전남친이지."
나는 기묘한 기분을 느꼈다. 물론 단비 누나처럼 섹시하고 화려한 미인이라면 남자친구를 하나가 아니라 서너명을 동시에 사귀었다고 해도 그리 이상할 일은 아니었지만, 어쩐지 '그녀의' 남자친구라는 생각을 하니 솟구치는 부러움과 질투심을 부정할 수가 없었다.
저렇게 쭉쭉빵빵한 여자의 애인이라니. 전생에 우주를 구했나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래도 그나마 지금은 헤어졌다는 말이 그 이유없는 시기심을 조금이나마 줄여주는 듯 했다. 나랑 사귀는 여자도 아닌데 이런 기분을 느끼다니 참 웃긴 일이었다. 하지만 그런 막연한 기분을 느끼게 할 만큼 단비 누나에게는 치명적인 매력이 있었다....
"그 오빠가 지냈던 방도 이 층 어딘가에 있었던 것 같은데. 저 쯤이었나?"
"그, 남자친구분이랑 사귀실 땐, 자주 갔었나요? 그 방에...."
문득 말로 표현하기 힘든 야릇한 생각이 들어 마른침이 넘어 갔다. 뉘앙스로 보건대 그 전남친이랑 사람하고 사귈 때는 그 방에 종종 들어갔었다는 뜻인 것 같은데, 굳이 퇴실이라는 위험을 무릅쓰면서까지 남자의 방에 들어갔다면 분명 사이좋게 둘이서 고스톱이나 치러 들어간 것은 아닐테고....
"너 지금 야한 생각 하지?"
"아, 아니에요."
단비 누나가 마치 고양이처럼 게슴츠레 눈을 뜨고는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정곡을 찌르는 그 시선에 나는 그만 얼굴이 붉어졌다. 하긴, 대답을 들을 필요까지도 없었다. 내가 그 남자친구였어도 단비 누나 같은 여자를 가만히 놔뒀을 리는 없을 테니.
'으, 누군지 몰라도 오지게 부럽네.'
얼굴도 모르는 사람을 이렇게 부러워할 수도 있다니.... 문득 흐릿한 그림자로 이루어진 어떤 남자의 실루엣이 아무 것도 입지 않은 알몸의 단비 누나와 침대 위에서 서로 뒤엉키는 영상이 머릿 속에 적나라하게 그려졌다. 내가 상상으로 만들어낸 단비 누나의 섹시한 나신이 희미하게 보이는 것 같았다.
봉긋한 두 가슴과 잘록하고 맵시 있는 허리, 그리고 요염한 골반과 풍만한 엉덩이.... 그걸 마음대로 만질 수만 있다면.
"야! 너 생각하는거 표정에 다 나와."
"흠, 흠."
단비 누나의 날카로운 핀잔에 나는 혼자만의 음란한 상상 속에서 겨우 헤어나왔다.
"저 그런 생각 안 했어요."
"퍽이나...."
"진짠데."
택도 없는 소리라는걸 자기도 아는지 귓등으로 흘리며 내 방을 이리저리 둘러보는 단비 누나였다. 기숙사생들의 이삿짐이래봐야 보통 뭐 그리 많겠냐만은, 나는 그 중에서도 특히 개인 물품이 별로 없었다. 컴퓨터, 이불, 옷가지, 세면도구 등 생필품만 제외하고나면 딱히 남는게 거의 없을 정도였다.
"그래도 전남친보다는 방이 훨씬 깔끔하네. 물건이 별로 없어서 그런가?"
"제 성격이 깨끗해서 그런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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