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스] 그녀들의 마음은 ? - 3부
감동넘치는 로맨스 명작
그녀들의 마음은 ? - 3부
"너... 너 얼굴이 왜 그래?"
이마가 깨진 내 몰골을 본 친구들의 반응은 예상 그대로였다. 잠깐 바람 쐬고 오겠다고 나갔던 애가 갑자기 피를 칠칠 흘리면서 나타났으니 그럴 만도 했다.
"괜찮아. 그보다... 아까 그 알바생은 어디갔어?"
"야 이 미친놈아. 너 이마에 피 흘리면서 지금 그 애가 궁금해? 밖에서 싸웠어?"
이 상황에서 그녀를 찾는 내가 한심하다고 생각했는지 서현이가 내 얼굴을 이리저리 뜯어보면서 인상을 썼다. 세나는 한 손으로 입을 가린채 할 말을 잃은 표정이었다. 어디서 좀 닦기라도 할 걸 그랬나 하는 후회가 들었다.
"아냐. 진짜 괜찮아. 좀 긁혔어."
"긁힌 상처가 아닌 것 같은데? 전화만 받고 들어온댔잖아."
세나가 따지고 들었지만 나는 일단 제광이에게 대답을 재촉했다.
"그 알바생 못 봤어? 설미인가 하는..."
"걔 아까 가던데? 퇴근인지는 모르겠는데 교대하고 갔어."
"그래...?"
아무래도 아까 골목길 이후로 가게에는 돌아오지 않은 듯 했다. 그랬다면 나와 마주쳤을 것이니. 혼자 우두커니 골목에 서서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던 나는 어떻게든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그녀에게서 제대로 된 사과를 받아내보리라 하는 마음으로 카페로 돌아왔지만 그녀는 이미 없었다.
"근데 지금 그게 중요한게 아니잖아. 솔직히 밖에서 뭔 짓 한거야?"
"그래, 너 바른대로 말해."
친구들을 안심시키기까지는 꽤 많은 노고를 필요로 했다. 나는 이마가 터진 것보다도 이 알 수 없는 찝찝함에 더 신경이 쓰였다. 좋은 일을 한 것 같기는 한데 결과는 영 신통치 않은 그런 기분이랄까.... 방금 전에 겪은 일을 친구들한테 말해볼까 하다가 나는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도 감이 잘 안 잡혀서 그만두었다.
하지만 같은 학과의 학생이라고 하는 그 백설미라는 여자와는 어디선가 또 마주칠 수 있을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과 꽤 늦은 시간까지 어울리다보니 어느새 시간이 자정을 넘어버렸다. 기숙사 원칙상 자정이 넘어서까지 입실하지 않으면 무단 외박으로 간주되어 벌점을 먹는다. 그나마 새벽에라도 복귀 체크를 한다면 무단 외박이라는 커다란 오점까지는 피해갈 수 있지만, 그래도 시간 내에 입실하지 않았으니 어느 정도의 감점은 감수해야했다.
"많이 늦었네."
감점 기록이 무서운 이유는 그 기록이 다음 학기의 기숙사생 선발에 크게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1점, 2점 정도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할 수 있지만, 그런 자잘한 마이너스가 쌓이다보면 성적 자격을 갖추어도 입사를 할 수 없게 되어버리는 엿 같은 경우가 생길 수도 있다.
기숙사 생활에서 감점을 당할 수 있는 요인들을 크게 몇 가지로 생각해보자면, 우선 두말할 필요도 없이 가장 큰 요인은 이성의 호실 내에 무단으로 침입하는 경우, 혹은 자신의 호실에 무단으로 이성을 데려오는 경우이다. 이것은 마이너스 정도가 아니라 만약 적발이 되면 그 날로 당장 퇴실조치를 당한다.
드물게도 1인 기숙사 시설을 보유한 기숙사이니만큼, 남녀의 생활구분 문제에 대한 원칙은 특히나 더욱 엄격한 편이었다. 학교 측에서 이런 부분에 대한 원칙을 해이하게 만들어버리면 아마 기숙사가 남녀 교제의 훌륭한 요람이 되어버릴테니 말이다.
그 외의 자잘한 요인들로는 호실 내 흡연 행위, 취사 행위 등이 있었고 지금 내가 처한 상황처럼 입실시간 엄수 불량, 점호 불참 등도 은근히 깨알같이 한 몫 했다.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없는 나로서는 어떻게든 기숙사에 계속 남아있어야 하기 때문에 나는 벌점관리에도 꽤나 예민한 편이었다. 그래서 되도록 입실 시간을 지켜서 감점을 먹지 않으려고 했는데 오늘은 어쩌다보니 이런 상황까지 오게 된 것이다.
"1점 정도는... 괜찮겠지."
무단 외박이라면 모를까, 시간 미엄수 정도라면 당장은 크게 영향을 받지 않을 것이다. 되도록 앞으로는 이런 일이 쌓이지 않게 하리라 나는 굳은 다짐을 했다.
"어...?"
사생증 카드를 꺼내려고 건물 현관에서 멈춰섰는데 웬 여자가 서 있는 것이 보였다. 이 늦은 시간에 기숙사 건물 앞에 서 있는 것을 보면 아마 사생일 것이다. 아무래도 나 말고 또 감점받을 사람이 한 명 더 있나보다. 하지만 어쩐 이유에서인지 들어가지 못하고 안절부절 발만 동동 구르고 있는 것이 모르긴 몰라도 무슨 사연이 있어 보였다.
'왜 저래? 사생증 카드가 없나?'
이 야심한 밤에 안으로 들어가지도 못하고 밖에서 찬바람 맞으며 서 있는 이유가 문득 궁금했지만 나는 남의 일에 간섭하지 않으리라 마음 먹고는 지갑에서 사생증 카드를 빼냈다. 그러자 우두커니 서서 이쪽을 보고 있던 그 알 수 없는 여자가 내 카드를 보고서는 만면에 화색을 띄며 말했다.
"앗, 저기요!"
"....네?"
불길한 예감이 든다. 남의 일에 괜히 휘말렸다가 그리 좋은 꼴 보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는 사실을 불과 몇 시간 전에 경험했으니....
"그거, 그거요."
여자는 내 손에 쥐고 있는 사생증 카드를 손가락으로 가르키며 마치 이제야 구원자가 나타났다는 듯이 눈빛을 초롱초롱 빛냈다.
"네. 이게 왜요?"
"아, 하하, 그거로 저도 같이 좀 들어가면 안될까요?"
"........."
기숙사생들에게는 모두 고유의 사생증 카드가 있어서 일종의 신분증과 같은 용도로 사용된다. 하지만 더 중요한 기능은 이 카드가 열쇠의 기능을 한다는 것이다. 건물의 현관이 자연개방되는 오전 6시부터 오후 6시까지의 주간 시간대에는 열쇠가 필요없어서 굳이 기숙사생이 아니라도 건물에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지만, 이렇게 야간 시간이 되면 사생의 보안 문제 때문에 카드를 바코드에 대지 않으면 현관문을 열 수 없는 시스템으로 되어 있었다.
그리고 당연히 이렇게 늦은 시간에 카드를 인식하고 출입하게 되면 카드의 개인 정보에 따라 그 사람에게 감점 기록이 더해지게 되는 방식이었다. 그러니까 즉, 여자의 말을 구체적으로 다시 말하자면 '어차피 찍고 들어가는거 그 김에 나도 슬쩍 끼워주라.' 정도의 뜻이었다. 그러면 감점은 내가 받지만, 그 여자는 아무 탈 없이 들어갈 수 있다. 이걸 굳이 비유를 하자면 지하철에서 표 한장 집어넣고 둘이 합체해서 지나가는 경우라고 말할 수 있겠다.
"으, 으음....."
어차피 들어가는거 남 한 번 도와준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손 안대고 코풀려는 여자의 심보가 괜히 밉살스러웠다. 여자도 그런 내 기분을 눈치챘는지 양손을 기도하듯이 맞잡고는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내게 매달렸다.
"으아아~ 제발요~ 그게 사실은, 제가 이제 1점만 더 감점을 받아도 퇴실이거든요. 그래서 여태껏 추운데 들어가지도 못하고 벌써 한 시간이나 밖에서.... 으아아, 너무 추운거 있죠. 저 내내 사람 지나가는 것만 기다렸어요. 오늘 따라 어찌나 지각생도 그리 없는지... 흑흑, 불쌍한 저를 한 번만 도와주세요. 네?"
"아, 알았어요. 알았으니까 진정해요."
1점만 더 감점을 받아도 퇴실이라니.... 도대체 얼마나 많은 감점이 쌓였다는 거야? 아니, 그게 가능하긴 한가? 하기사 그렇게 생각하면 들어가지도 못하고 밖에 서 있었던 것이 이해가 간다. 단순히 카드가 없거나 분실한 경우라면 정문의 비상 호출벨을 눌러서 사감에게 확인 조회의 절차를 거치고서라도 어떻게든 안에 들어갈 수는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조회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감점 기록이 남아버리고, 그러면 이 여자의 말대로라면 결과적으로 볼 것도 없이 곧바로 퇴실행이기 때문이다.
나는 조금은 딱하다는 생각이 들어 어차피 어려운 일도 아니니 한 번 도와주기로 마음 먹고 바코드에 내 카드를 찍었다. 여자는 자신의 동정심 유발 컨셉을 강조하기 위해 가만히 두면 이제 거짓 눈물까지 쥐어짜내려는 기세였다.
내 개인 정보가 소형 모니터에 체크되고 현관문이 열리자 여자는 이제 살았다는 듯 함박웃음을 지으면서 폴짝 안으로 뛰어들었다. 이로써 나에게는 감점 기록이 추가된 것이다. 나는 어쩐지 택시는 두 사람이서 타고 요금은 한 사람만 낼 때 그 특유의 씁쓸한 기분을 느꼈다.
"헤헤, 진짜진짜 고맙습니다!"
여자는 무사히 안으로 들어올 수 있었다는게 마냥 행복하다는 표정이었다. 어두컴컴한 바깥에서 조명이 희미하게나마 비추는 실내로 들어오고나자 나는 그녀의 모습을 자세히 살필 수 있었다.
"........"
뭐랄까, 딱 보자마자 처음 든 생각은 '진짜 야하다'라는 감상이었다. 딱히 노출있는 옷을 입거나 천박하게 화장을 한 것도 아닌데 그냥 첫 인상이 그랬다. 이유가 뭘까 생각해봤는데 답은 금방 나왔다. 스웨터 위로 풍만한 곡선을 그리는 글래머러스한 가슴의 존재감이 너무 컸던 것이다.
"어... 음..."
두툼한 스웨터 위로도 저렇게 봉긋한 곡선을 그리고 있는 저 큰 가슴이 과연 자연산인지 뽕인지가 무척 궁금했지만 나도 모르게 고개를 돌렸다. 노출이 있는 것도 아닌데 하도 섹시하다보니까 시선을 두기가 참 민망했다. 그 때문인지 괜히 쳐다보는 것이 굉장히 실례되는 것처럼 느껴져 혼자 어색해졌다.
"괘, 괜찮아요. 그럼 안 걸리고 잘 들어가요. 혹시 사감 선생님 순찰이 있을...."
"나 말이냐?"
.....지도 모르니까요. 라는 부분은 마음 속으로 삼키고 뒤를 돌아보자 1층 로비 한가운데 떡하니 서 있는 사감의 모습이 보였다. 나는 속으로 조용히 육두문자를 뱉었다. 어쩐지 불길한 예감이 들더라니.
나는 흘낏 그 여자의 표정을 살폈다. 이대로 아무 탈 없이 잘 들어갔으면 서로 윈윈하고 좋은 결과로 끝났을텐데 하필이면 순찰에 걸려서 꼼짝없이 감점을 당하게 되어버린 것이다. 1점만 더 감점되면 퇴실이라더니 그럼 저 여자는 이대로 퇴실당하는걸까?
"서승태. 윤단비. 이리 와라."
사감은 늘상 들고 다니는 당최 의도를 알 수 없는 지팡이를 까딱거리며 우리를 불렀다. 순간 혹시나 저걸로 패는 것은 아니겠지 하는 의문마저 들었다. 여자의 얼굴을 보니 한 마디로 '엿 됐다'라는 멘트를 굳이 입으로 꺼내지 않아도 너무나 생생히 느낄 수 있게끔 해주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입실 시간을 어겼구나. 그리고 윤단비, 너는 상습범이야. 게다가 아까보니 조회도 없이 들어오는 것 같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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