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스] 그녀들의 마음은 ? - 20부
감동넘치는 로맨스 명작
그녀들의 마음은 ? - 20부
나는 이 상황이 불가항력이라 믿고 싶었다. 그래야만 지금 이 심정을 그나마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침대 등받이로 나를 바짝 밀어붙이는 동생의 손길도, 또 그걸 알면서도 떨쳐내지 못하고 여전히 동생의 몸을 더듬고 있는 나의 손길도, 할 수만 있다면 정당화하고 싶었다.
"으음... 오빠...."
하지만 그따위 구차한 자기 위로가 이미 무슨 소용이 있을까. 그 자기 위로라는 것도 결국엔 지금의 이 흥분을 깨뜨리고 싶지 않은 마음에서 나온 얄팍한 구실에 지나지 않았다. 조금 전까지는 그래도 머리와 몸이 따로 논다는 식으로 내 나름대로의 위선을 부릴 수 있었지만 이제는 그 머리마저도 흥분 속에 가라앉고 있었다. 아니.... 어쩌면 애초에 그런 생각을 했었던 것조차도 처음부터 내가 만들어낸 하나의 합리화였을지도 모르고.
이미 오누이간의 도를 넘었어, 이 정도 행동이 더해진다 한들 달라지는건 없을 거야, 그러니까 조금만 더 이대로 있어보자, 혜진이를 달래줘야 하니까.... 이젠 그렇게 한심하기 짝이 없는 변명거리를 스스로 되뇌일 뿐이었다. 하지만 소심하게 지껄여대는 속마음에 비해 손은 너무도 망설임 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어느새 혜진이의 등줄기를 타고 올라간 양팔에, 허리춤 밑으로 자락을 드리우고 있었던 하얀색 티셔츠의 끝부분이 걸렸다. 아슬아슬한 느낌으로 팔뚝에 살짝 걸쳐진 티셔츠의 끝자락은 내가 팔을 위로 더듬어 올릴수록 점점 더 함께 끌려올라오고 있었다. 손이 허리께를 지나 옆구리까지 타고 오르자 혜진이의 하체를 덮고 있었던 유일한 옷이 너무도 쉽게, 그리고 자연스럽게 그 기능을 잃었다.
"이거.... 벗고 싶어."
자기 몸을 위태롭게나마 가리고 있었던 하나 뿐인 천쪼가리를 너무도 쉽게 벗어버리는 여동생의 모습을 봐도, 이제는 말려야겠다는 생각보다 될 대로 되라는 생각이 더 커지기 시작했다. 이게 결코 흥분에서 나오는 심정이 아니라, 어쩔 수 없는 체념의 결과물이라고 스스로 되뇌이려 했지만 이제는 심지어 그런 기계적인 과정마저도 건너뛰고 싶은 지경에 이르렀다.
"오빠도 이거 벗어줘."
"......"
이건 선택의 순간이었다. 비겁하게나마 정당화를 할 수 있었던 지금까지의 과정과는 달리, 내 의지로 옷을 벗는 순간부터 그런 변명을 할 수 있는 자격조차도 이젠 영영 사라지는 것이었으니.
"너 나중에 후회하지마."
"후회 안 해."
고민의 과정은 길고 끔찍했지만, 그 선택의 순간은 너무나도 짧았다. 나는 티셔츠의 목부분을 양손으로 잡고는 위로 순식간에 끌어올려버렸다. 머리부터 떨어져나간 옷에서 남은 양팔마저 빼내어버리고 나니, 다음 순간 그 옷은 아무렇게나 바닥을 구르고 있었다.
"......."
공교롭게도 내가 앉은 위치에서는 유리창을 통해 비추어진 우리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반라의 모습이 된 오빠의 몸 위에, 전라의 모습이 된 여동생이 올라타있었다. 한 침대 위에서 그렇게 서로를 끌어안고 있는 우리 남매의 모습이.... 생각보다 훨씬 더 '남녀'처럼 보인다는 사실이 그저 놀랍기만 할 뿐이었다.
나는 유리창을 들여다보던 시선을 옮겨, 조명 아래 환히 드러난 여동생의 알몸을 보았다. 오누이라고는 하지만, 다른 친남매들처럼 어릴 적부터 서로의 몸을 거리낌없이 봐가며 자라온 사이는 또 아니었다. 내가 혜진이를 처음 만났을 때만 해도 서로 남녀의 성적인 구분 정도는 충분히 할 수 있는 나이였으니, 굳이 서로의 벗은 몸을 보여주었을 턱이 없었다.
문득 나는 집안에서도 유독 차림새를 신경쓰곤 했었던 혜진이의 성격을 떠올렸다. 몸을 씻으러 들어갈 때조차도 벗은 모습을 내게 보이지 않았던 그 유별난 성격은.... 지금 생각해보면 나름대로의 어떤 이유를 품고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하아... 흐음..."
어느새 다시 시작된 키스는 아까보다 더욱 노골적이고 뜨거웠다. 키스를 하는 와중에 나는 아직도 떨림이 가시지 않은 손을 앞으로 옮겨 여동생의 가슴 위에 살짝 얹었다. 오빠로서 할 수 있는 신체 접촉의 선을 훌쩍 넘어선 그 행위에 혜진이도 처음으로 몸을 살짝 떨었다. 하지만 내가 처음으로 성적 행위를 가해왔다는 사실이 기뻤는지 이내 가슴 위에 얹어진 손 위에 되려 자신의 손을 포개어왔다.
"오빠... 괜찮아...."
혜진이는 자꾸만 날 안심시키고 싶어하는 것 같았다. 내 속마음이 지금 정상이 아니라는 것을 당연히 느끼고 있을 터였다. 키스가 아주 잠깐씩 끊어지는 그 짧은 틈새마다 혜진이는 나를 달래는 듯한 말들을 귓가에 계속 속삭여왔고, 인정하기에는 부끄럽지만 사실 나 역시 그 말에 적지 않은 위안을 얻고 있는 듯 했다.
"으응...."
처음으로 손 안에 쥐어본 여동생의 젖가슴을 살짝 주물러보자 혜진이가 내 목덜미에 고개를 묻었다. 마주본 상태에서 내가 혜진이를 배 위에 태우고 있는 꼴이었기 때문에, 어디를 조금만 움직이더라도 온 몸을 통해서 살결의 감촉이 군데군데 느껴져왔다. 그리고 그 감촉은 지금 눈 앞의 소녀를 틀림없이 여자라 받아들이고 있었다.
혜진이의 젖가슴은 아까 전에 바로 이 침대 위에서 실컷 주물러댔던 단비 누나의 가슴에 비한다면, 빈약하다고 해도 좋을만큼 아담한 사이즈였다. 사실 당연한 말이긴 했다. 애초에 날씬한 허리에 비해서 언밸런스할 정도로 풍만한 가슴과 엉덩이를 가진 단비 누나의 몸매와 비교를 한다는 것 자체가 지나친 욕심일테니.
하지만 혜진이의 몸에는 비율의 미라는 것이 있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어디 한 군데 어색한 부분 없이 미끈하게 쭉 빠진 몸이라고 해야 할까. 모델의 인체비율을 저절로 떠올리게끔 하는 그 미려한 바디라인은 분명 특유의 매력을 빛내고 있었다. 어린애로 보고 있었던 여동생의 몸매가 이렇게 훌륭하다는 사실이 이 와중에도 조금은 감격스러울 정도였다.
"다리 이쁘네."
나도 모르게 감상이 입으로 튀어나오자 아차 싶었다. 하지만 혜진이는 오히려 나보다도 지금 이 상황 앞에서 이성을 잘 유지하고 있는 것 같았다.
"다리만 이뻐?"
"아니. 사실 다 이뻐."
"어디가 어떻게 이쁜지 말해줘."
참 못하는 말이 없는 여동생이었다. 민망하게 그걸 어떻게 입으로 말한담.... 나는 대답 대신 가슴을 주무르던 손에 더더욱 과감함을 싣어 젖꼭지를 살짝 집어보았다. 엄지와 검지 끝에 잡힌 유두의 돌기 또한 당연히 단비 누나에 비한다면 아담한 느낌을 주었지만, 유륜의 선명한 분홍빛과 너무나 잘 어울려 오히려 앙증맞은 매력을 띄고 있었다.
"다 이쁜데 특히 젖꼭지 색깔이 이뻐."
"하음.... 그것.... 뿐이야?"
젖꼭지를 조금씩 비틀어주니 혜진이가 서서히 흥분 섞인 숨을 뱉기 시작했다. 한꺼풀 탈을 벗어버린 듯 이제 흥분을 허용하기 시작한 내 머리도, 더 이쁜 곳을 직접 찾아보고 싶은지 여동생의 온몸 구석구석을 둘러보라고 명령을 해오고 있었다.
"오빠.... 키스하자."
여동생의 노골적인 유혹에 마주하여 이제 나는 망설임도 없이 혀를 허용하고 있었다. 다시 또 얽히기 시작한 혀의 틈새에서 한층 더 거세어진 타액 소리가 새어나왔다. 그러는 동안 나는 손을 여기저기로 뻗어 뽀얀 살결이 빛나는 혜진이의 알몸을 천천히 더듬어갔다.
가슴과 옆구리, 아랫배와 등, 허리를 거쳐 엉덩이에 이르기까지 손은 한순간도 쉬지 않았다. 동생의 굴곡을 천천히 실감하고서, 손이 엉덩이 아래로 내려갈 때쯤이 되자 나는 비로소 다시 긴장하기 시작했다. 신체적인 구분선 앞에서 어쩔 수 없이 멈칫하고 만 것이다. 이쯤되니 이제 이 선을 넘기 전에 꼭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었다.
"혜진아. 너.... 혹시 처음이야?"
"하아아... 뭐... 뭐가..."
한손은 이미 가슴으로 돌아와 젖꼭지를 사정없이 건드리고 있었다. 흥분 때문에 잘 이해를 못 한건가 생각도 들었지만, 솔직히 내가 보기에는 혜진이가 알면서도 대답을 기피하고 있는 것 같았다.
"섹스 말야.... 아직 해본 적 없냐구."
"......."
섹스라는 말을 직접적으로 꺼내자 비로소 내가 자기와 성관계를 하려 한다는 사실을 현실로써 실감한 것인지 동생은 더욱 힘주어 내 목을 바짝 끌어안았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여전히 대답을 머뭇거리고 있었다.
"처음이야."
"정말?"
"....라고 해봤자 하다보면 티 나겠지? 헤헤.... 사실 거짓말이야."
솔직히 동생이 숫처녀일거라 거의 믿어 의심치 않고 있었던 내게, 이 말은 상당히 충격적이었다. 혜진이가 성경험이 있을까 없을까를 굳이 생각해 볼 만한 계기가 없었기 때문에 여태껏 궁금하게 여기지도 않고 있었으니까.
"나 사실, 오빠 생각 안 해보려고 많이 노력했던 적도 있었어. 오빠를 좋아하면 어쩔 수 없이 힘들어지니까...."
"......."
"그래서 시간도 많이 쏟아봤어. 남자도 여러명 만나보고, 연애도 해보고, 그러다보면 나도 오빠 생각 안하고 남들처럼 평범하게 살 수 있을 것 같아서."
혜진이에 대해 내가 알지 못하는 구석이, 아마 있기는 있더라도 그리 많지는 않을 거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괴로운 표정으로 내 어깨에 고개를 묻은채 힘겹게 고백하는 그 목소리를 듣고 있자니....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그런 부분이 많았을 거라는 사실을 나는 겨우 깨달을 수 있었다.
"근데 내가 처녀딱지 떼던 날에.... 남자친구 집에서 그걸 하는데, 오빠 얼굴이 너무 너무 생각나더라. 눈 앞에서 다른 남자가 내 몸 위에 올라타 있는데도 그 남자는 안 보이고 오빠 생각밖에 안 났어. 그래서 그거 끝나고 나 펑펑 울었다? 남자친구는 자기가 못해서 그런 건줄 알고 안절부절 못하고 그랬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좀 웃기네."
"......"
옛 추억이라도 말하는 것마냥 힘없이 웃기까지 했지만, 나는 혜진이가 어떤 심정으로 이런 이야기를 털어놓고 있는지 비로소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었다. 몸과 몸이 어느 때보다 가까이 닿아있었던만큼, 우리 남매간의 정신적인 교류도 그 어느 때보다 더 깊어져있는 듯 했다.
하지만 그렇기에, 나는 결심을 할 수 밖에 없엇다.
"혜진아.... 안 되겠어."
"뭐?"
나는 내 얼굴을 품 안 가득히 꼭 껴안고 있었던 동생의 몸을 어렵사리 밀어냈다. 내 반응에 혜진이는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굳어져있었다. 그 모습을 보는 내 마음이 더욱 시려왔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여기서 그만두어야 한다는 것을 분명히 알 수 있었다.
"우리가 여기서 마음가는대로 이렇게 해버리고나면.... 아주 잠깐 네가 행복할 수는 있겠지. 하지만 그건 결국 너를 더 힘들게만 만들 뿐이야. 우린 남매잖아. 이 방향으로 가면 갈수록 네가 훨씬 더 괴로워져."
"오, 오빠...."
아예 처음부터 시작도 안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지만 여기서라도 더 늦기 전에 멈춰야했다. 모순적인 말이지만 혜진이가 나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그리고 얼마나 진지한 마음으로 나를 생각해왔는지를 알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진실된 마음은 너무도 깊은 것이었지만, 그렇기 때문에 여기서 그 마음을 접을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했다.
"지금 이렇게 저지르고 나면 우린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남매같지 않아질거야. 그러고나면 네가 행복해질 것 같아? 어쩌면 끝에 가서는 남매는커녕 남남보다 못한 사이가 되어있을지도 몰라. 아마 너도 알고 있겠지만 말이야.... 당장은 힘들지 몰라도, 계속 그 마음 그대로 간직하고 살 수는 없어. 그러니까 우리 여기서 그만둬야해."
"......."
"넌 날 좋아하면 안 돼."
"싫어!"
멀찍이 밀어냈던 몸이 다시 가까이로 와락 안겨왔다. 목 대신 가슴에 양팔을 둘러 내 몸을 가득 끌어안은 혜진이가 점점 흐느끼기 시작했다. 옷도 없는 맨가슴이 동생의 눈물방울로 금방 젖어들었다. 펑펑 울음을 터뜨리는 혜진이의 등을 토닥이며 달래주고 싶었지만, 아무 도움도 안 될 것 같았다.
"이제와서.... 그렇게 말하면.... 어떡해? 나.... 난 싫어.... 오빠 계속 좋아하면서 살 거란 말야.... 흑.... 흐흑...."
"......."
솔직한 심정으론 정말 이러고 싶지 않았지만, 나는 힘겹게 다시 혜진이의 몸을 살며시 밀어냈다. 눈물로 엉망이 된 뽀얀 얼굴이 너무나도 안쓰러웠다. 세상 어디에 내어놓아도 귀엽고 예쁘단 말을 들을 여동생이 이런 말도 안 되는 일로 울고 있다는게 서글퍼질 지경이었다.
"내일 집으로 돌아가...."
"......."
"네가 뭐라해도 어쩔 수 없어.... 내가 보낼 거니까."
더이상 이 방 안에서 둘만의 시간을 이어나갈 수는 없다는 것.... 그 사실만큼은 이제 확실해졌다. 나는 그 말을 끝으로 동생의 나신을 조심스럽게 침대 위로 내려놓은 후, 가냘픈 어깨 위에 이불을 둘러주었다. 몸이 가려진 후에도 혜진이는 손바닥에 얼굴을 묻은채 한참을 그 자리에서 흐느끼고 있었다. 그 모습을 차마 계속 지켜볼 수가 없었기에, 나는 그저 말없이 불을 끄고서 바닥에 드러누워버렸다.
"서승태, 니 면회 왔다. 빨랑 준비해서 통제실로 가라."
잠결에 나는 아주 이상한 꿈을 꾸었다. 군대 시절의 기억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었음에도 벌써 몇 년은 흘러가버린 듯, 마치 아득한 옛날 일처럼 느껴지는 추억이었다. 그 빛바랜 사진 같은 기억을 꿈에서 떠올리게 될 줄은 말 그대로 꿈에도 몰랐다.
"면회 말씀이십니까?"
"그래. 니 마누라 같은 동생 또 왔다 안카나."
혜진이가 어찌나 자주 면회를 오곤 했는지 부대 사람들 중에 혜진이를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심지어 옆 막사를 쓰는 다른 중대 사람들이 내 얼굴은 몰라도 내 동생 얼굴은 알고 있을 정도였으니 말 다 했지 않은가. 그 시간에 공부나 하라고 여러번 만류를 해봤지만 혜진이는 막무가내였다.
"근데 니, 진짜로 동생 소개 안 시켜줄끄가?"
"......"
군화 끈을 묶다 말고, 나는 또다시 시작된 고참의 수작에 힘이 쭉 빠지는 기분이었다. 꼬박꼬박 찾아와주는 혜진이의 정성이 마냥 싫은건 아니었지만, 그 애가 한 번 왔다 갈 때마다 내가 겪어야 하는 이런 종류의 고충은 솔직한 말로 절대 달갑게 여길 수가 없는 것들이었다. 혜진이는 아마 이 사실을 모르고 있을 테지만....
"그게.... 동생이 군인은 죽어도 싫다고 해서 말입니다. 최상병님 제대하시면 한 번 시도해 보겠습니다."
"에고, 군바리 싫다는 아가씨가 우찌 그래 부대에 자주 올 생각을 하노."
툴툴거리는 고참을 뒤로하고 내무실을 빠져나가 통제실에 들러 허락을 맡았다. 그래도 귀여운 동생이 먼걸음을 해줬는데, 추레한 꼴을 보이기는 싫어서 휴가 나갈 때나 입는 A급의 야상을 꺼내 입은 상태였다. 물론 혜진이는 작업복을 입고 나가든 A급을 입고 나가든 어디가 어떻게 다른 건지도 잘 모를 테지만 말이다.
"오빠!"
어김없이 위병소 앞에 쪼그리고 앉은 채로 날 기다리고 있는 동생의 모습을 보니, 반갑기도 하고 한편으론 한숨도 나왔다.
"면회실 안에 들어가 있으라고 했잖아."
"저기 혼자 들어가면 자꾸 아저씨들이 말 건단 말이야."
하지만 혜진이는 위병소의 사수와 부사수가 곁눈질로 연신 자기를 흘끗거리고 있었단 사실까지는 미처 알지 못했다. 부사수는 몰라도 사수는 내 고참이라서 차마 뭐라고 할 수도 없었는지라, 나는 그저 혜진이를 데리고 재빨리 그 자리를 떴다.
"이렇게 많이 사 올 필요 없어. 다 먹지도 못 하는데."
"히히. 그래도 이렇게 챙겨주는 사람 나 밖에 없지?"
"그래...."
마침 면회실 안을 서성이던 고참 하나가 혜진이에게 아는 척을 하고 지나갔다. 오며가며 눈도장을 몇 번 찍었기 때문에 혜진이는 사심없이 웃으며 그 인사를 받았지만, 솔직히 내 입장에서는 그리 달가운 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저 고참은 지금 면회 온 자기 여자친구를 옆에 끼고서도 자꾸만 혜진이에게 눈길을 보내고 있었다.
"오빠, 내가 어디서 들은 얘긴데."
"응?"
"고무신 거꾸로 신는 여자들도 나쁘지만, 군화 거꾸로 신는 남자들이 더 나쁜 거래."
"그, 그런데?"
"그러니까 오빠는 제대하고 나면 나한테 잘 해야 된단 뜻이야."
애교인지 농담인지 모를 말에 또다시 한숨이 나왔다. 듣는 귀도 있는데 애가 자꾸 이런 얘길 하니까 부대에 이상한 소문이 돌지.... 그래도 워낙 해맑게 웃는 얼굴을 보니 뭐라 반박도 못 하겠다.
"그 못마땅한 표정은 뭐야? 나만큼 오빠 잘 챙겨주는 여자 있어? 있으면 말해 봐."
"아, 알았어. 알았어."
"정말 알아들은거 맞지? 제대하고 바람나면 오빠는 내 손에 죽는 거야."
군생활의 추억 중 거의 절반 가까이를 혜진이가 차지하고 있다는걸 생각해보니, 그 애는 나에게 정말로 지극정성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그 정성은 마냥 농담 섞인 애교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다시 눈을 떴을 때는 아침해가 밝아오고 있었다. 어떻게 서로 그 기분으로 잠이 들 수 있었을까....? 나는 그렇다 치더라도, 아마 혜진이는 울다 지쳐서 잠이 든 것 같았다.
나는 아침 일찍 혜진이를 데리고 기숙사를 빠져나왔다. 혜진이는 어제 단비 누나와의 만남 이후로 내게 말했던 그 태도 그대로 똑같이, 따라오지 말라는 말만을 남기고 그렇게 가버렸다. 마음 같아서는 집까지 바래다주고 싶었지만 도저히 그럴 수가 없었다.
"정말.... 집에 들어간거 맞죠?"
[그렇다니까. 엄마 아빠가 그렇게 말을 해도 안 듣던 애가 그나마 들어오고나니까 좀 안심이 되는구나. 네가 요며칠 설득하느라고 수고가 많았다. 그래도 역시 네 말은 잘 따르는 것 같아서 다행이야.]
"아버지는.... 크게 뭐라고 안 하시죠?"
[글쎄.... 네가 그렇게까지 얘기했으니 아마 넘어가주시지 않겠니.]
"어머니께서 꼭 좀 아버지한테 다시 말씀드려주세요. 애 기분 많이 안 좋으니까.... 괜히 더 야단치지 마시라고...."
새엄마와의 확인 전화를 마치고 핸드폰을 힘없이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갑갑한 감정이 가슴을 옥죄어올 뿐이었다. 내 나름대로의 최선을 다 했다고 생각했는데.... 그런데도 그 결과에 남겨진 이 기분은 한없이 허무하고, 답답하고, 아프기만 했다.
게다가, 이걸로 끝이 아닐 것 같아서.... 그런 기분이 자꾸만 들어서 더욱 괴로웠다.
"왜 이렇게 못 먹어?"
그 날 이후로 나는 약간의 우울증 비슷한 기분에 한동안 시달렸던 것 같다. 기숙사 식당에서 같이 저녁을 먹던 단비 누나가 내 식판에 남은 잔반을 보고 걱정스레 물었다. 요새들어 운동시설에도 내려가지 않고 식사량도 눈에 띄게 줄어버린 내 모습을, 누나는 얼마 전부터 이상하게 여기고 있는 것 같았다.
"몸이 안 좋아서 그런지.... 입맛이 없네. 하하."
"왜 그래? 요새 왜 이렇게 계속 아파보이지?"
내 이마에 손을 올려보고 이리저리 뜯어보는 누나의 모습이 꽤나 귀여웠다. 내 입장에서는 껍데기 뿐인, 그리고 누나 입장에서는 갈수록 깊어져가고 있는 우리 사이의 애매한 관계에도 이제는 익숙해졌다. 익숙함이라는 것은 마냥 좋은 의미만을 담고 있는 것이 아니었기에, 이제 누나의 마음을 속이고 그 옆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에 대한 죄의식마저 서서히 희미해져가고 있었다.
"오늘 하루 쉬면 나아질 거야."
"내가 방에 올라가서 간호해줄까?"
내 몸에 대한 걱정 반, 그리고 함께 보낼 수 있는 시간에 대한 기대 반으로 눈을 빛내며 묻는 누나였지만, 나는 난처하게 웃으며 그 아까운 제안을 조심스럽게 거절했다. 혼자 편히 쉬는 것이 빨리 회복되는데에 도움이 될 것 같다고 말하자, 누나는 적잖이 아쉬운지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내내 괜시리 바닥을 툭툭 차고 있었다.
"사랑해."
왠지 달래주어야 할 것 같아서, 엘리베이터가 도착하기 전에 누나의 귀에 대고 나지막히 속삭였다. 우리의 연인 관계 (적어도 누나가 생각하기에는)가 시작된 이후로 내 입에서 사랑한다는 말이 나온 적은 처음이었다. 차마 그렇게까지 진실을 왜곡시키는 뚜렷한 거짓말을 내 입으로 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닳은 양심에 어느새 익숙해져버린건지, 나는 고작 한순간의 위로를 위해서 그런 무게감 있는 말을 쉽게 내뱉고 있었다. 그 말은 결코 함부로 꺼내서는 안 되는 말이라는걸 알면서도.
"헤헤.... 나도."
내 말이 진실인지 거짓인지 알지도 못하는 단비 누나는, 처음으로 들은 그 의외의 속삭임이 그저 좋았는지 해맑게 웃을 뿐이었다. 내 거짓말의 댓가로, 단비 누나는 웃는 얼굴로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갈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자리에 혼자 남은 내 표정은 아까보다 더욱 어두워져 있었다. 기분이 더 우울해진 것 같았다.
"즉, 사운드라는 장치를 통해서 이런 추상적인 이미지를 끌어낼 수 있다는 점에서 볼 때, 배경에서 연출되는 음악 또한 하나의 자체적인 기법이라고 볼 수 있겠죠? 다음 시간에 발표할 1조는 이런 형식의 사운드 기법에 대해 특히 중점을 두고 다루어주길 바래요. 그럼 오늘 수업은 여기까지."
심지어 나는 수업에서도 좀체 집중을 할 수가 없었다. 그 증상은 내가 특별히 신경쓰고 있는 유가희 강사의 수업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젊은 여강사는 낭랑한 목소리로 수업을 끝맺었지만, 잡생각에 빠져있었던 나는 멍하니 앉은채 나갈 생각도 못하고 있었다.
"야."
문득 들려온 냉랭한 목소리에 나는 고개를 들었다. 주위의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던 굳은 무의식이 깨어진걸 보면, 이 목소리가 내게는 매우 특별한 목소리라는 증거였다.
"으, 응?"
설미가 내게 먼저 말을 건 경우는 정말 드문 일 중의 드문 일이었다. 평소 같았으면 이 의외의 사건에 깜짝 놀랄 법도 했겠지만, 지금 상태가 좀 맛이 가 있어서 그런건지 나는 그저 얼이 빠질 뿐이었다.
"너 말이야."
"그, 그래."
설미는 감정 없는 그 무심한 얼굴을 드물게 찡그린 채로, 아직 일어서지도 않은 내 옆모습을 이모저모 뜯어보는 듯 했다.
"오늘 좀 이상한데."
"어어? 뭐, 뭐가."
"평소에도 좀 얼빠져 보이긴 했지만 이만큼 나사가 풀린 것 같지는 않았는데."
"......."
말문을 막아버리는 설미 특유의 능력이 또 한번 발휘되는 순간이었다. 어이가 없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설미가 평소에 나를 의식하고 있다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어 이 와중에도 묘하게 설렌 기분이 들었다.
"음. 그러니까...."
"......."
설미가 헛기침을 하자 나는 순간 긴장감이 느껴졌다. 그 무서운 성격의 백설미가 저렇게 뜸을 들일 정도라면 대체 무슨 말을 하려고 저러는 걸까?
"흠, 그게...."
"그, 그게 뭐?"
설미가 이렇게까지 머뭇거리는 모습을 단 한번도 본적이 없었다. 널 죽이겠다 등의 말이라도 하려는건가 싶어서 식은땀마저 흐를 지경이었다. 뭔가 꺼내기 힘든 말이라도 하려는 것 같았다. 심지어 인상까지 써가면서 그 뭔지 모를 말을 뱉지 못하고 있는 설미의 모습이 내게는 충격적이기까지 했다.
"제길. 정말 하기 어려운 말이긴 한데."
"그, 그래. 얼른 말해봐."
"너 무슨 일 있어?"
"뭐...?"
마침내 설미의 입에서 튀어나온 그 한 마디에 나는 그만 얼이 빠졌다. 이 여자가 지금 나랑 농담하나 생각도 들었지만 심지어 설미는 그 말을 뱉고난 후유증이 상당히 큰 듯, 미약하게 몸서리까지 치고 있었다.
"그, 그 말 한마디 하려고 그렇게 뜸 들인 거야?"
"매번 느끼는 거지만 이런 말은 정말 오글거려서 못해먹겠군."
"......."
도대체 설미는 인생 살면서 편하게 말 트고 지내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하긴, 그래도 남자에게만 이런다는 사실을 생각해보면 그나마 다행이긴 하지만.
"그게... 별 거 아냐."
설미가 나에게 먼저 말을 걸어줬다는 사실이 기쁘긴 했지만, 그렇다고 지금 내가 안고 있는 고민을 낱낱이 털어놓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물론 누구에게도 쉽게 털어놓지 못할 일이긴 했지만 특히나 상대가 설미라면 더더욱 그랬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이 여자한테만큼은 무슨 일이 있어도 말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별 거 아닌게 아닌 것 같은데."
"지, 진짜 아냐.... 그보다 너 지금 나 걱정해주는 거야?"
"......."
나는 그 사실이 기뻐서 아무 생각 없이 말한거였는데, 설미한테는 그게 의외의 역습이었나보다. 말문이 막힌 설미의 모습을 보니, 표정에서는 읽을 수 없지만 조금 당황하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당황하는 백설미'라는 말도 안 되는 명제를 도저히 떠올릴 수가 없어서, 그 생각을 이내 지워버렸다.
"쓸 데 없는 토 달지마. 죽어."
"......"
이제는 너무나 귀에 익어버린 익숙한 협박을 듣자 오히려 반갑기까지하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이거 이러다가 언젠간 진짜 죽겠다는 생각이 드는건 왜일까?
"어어? 가는 거야?"
"흥."
설미의 무심한 작별이야 이미 수차례에 걸쳐 충분할 만큼 겪어봐서 알고 있었지만, 오늘은 평소보다 그 뒷모습이 조금 더 쌀쌀맞고 냉랭해보였다. 찬바람마저 느껴지는 걸음으로 강의실을 쌩하니 나가버린 설미의 뒷모습이 사라져버리자, 나는 또다시 찾아오는 알 수 없는 허탈함에 한숨을 푹 쉬었다.
일어서야겠다고 생각하며 뒤늦게 가방을 챙겨 몸을 일으켰다. 또다른 한 사람이 내게 말을 걸어온 것도 바로 그 순간이었다.
"기운이 없어 보이는군요."
"교, 교수님."
어느새 소리소문없이 슬쩍 다가온 유가희 교수가 일어서려는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녀의 입가에는 늘 그랬 듯이 싱그럽지만 어딘가 비밀스러워보이는 미소 한줄기가 걸려 있었는데, 어쩐지 그 웃음이 오늘따라 더욱 미심쩍은 느낌을 주었다.
"승태 학생이 제 수업시간에 집중을 못 하는거야 워낙 익숙한 일이니 뭐 할 말은 없지만, 그래도 오늘은 이유가 좀 다른 것 같던데요?"
"무, 무슨 말씀을...."
"평소에는 그 여학생 쳐다보느라 늘 정신이 팔려있었다지만, 오늘은 그 여학생을 보는 것 같지도 않았는데 집중을 못 하고 있길래 하는 말이에요."
"......."
늘 그랬듯이 너무나 예리하게 정곡을 찔러오고 있었다. 젊은 강사는 이제 학생들이 거의 다 나가버려 한산해진 강의실을 잠시 둘러보더니, 내 옆자리의 의자를 뒤로 빼고서 살며시 앉았다. 그저 우연일 뿐이겠지만 방금 전까지 백설미가 앉아있었던 자리였다.
"무슨 고민을 하고 있는지 내가 들어도 될까요?"
"......."
내가 그렇게 얼굴에 티를 내고 다니는 구나,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하기사 그 무심한 설미가 알아챌 정도라면 보통 눈에 띄는게 아니었다는 뜻이겠지.
"그게...."
"물론 말하기 곤란하다면 안 해도 괜찮아요. 아까 그 여학생에게도 말 못할 문제라면 분명히 사소한 문제는 아니겠지요."
"드, 듣고 계셨나요?"
강사는 너무도 의미심장한, 그리고 한편으로는 장난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뇨. 두 사람이 이야기하는 모습은 멀리서 봤지만 내용까지는 듣지 못했죠. 하지만 그 여학생 뒷모습을 보니까 대충 알겠던걸요."
"네에?"
"꽤 화가 난 것 같던데.... 아무리 말하기 곤란한 문제라도, 여자가 먼저 관심을 보여올 때는 그런 식의 반응을 보이는게 아니랍니다."
말문이 턱 막히는 순간이었다. 끝을 알 수 없는 예리함이 커리어 우먼 특유의 능력인지, 아니면 이것도 여자의 직감 중 일부분인지 나로서는 알 수가 없었다. 그 미스테리한 날카로움에 압도된 나는 차마 대답도 못하고 금붕어처럼 입만 벙끗거렸다.
"다음에 만나면 사과하도록 하세요. 그 문제가 무엇인지 여학생에게 말해줄 수 있다면 더욱 좋겠지만."
"그, 그럴 수는 없어요."
"왜죠?"
"그 애한테만큼은 말할 수가 없는 문제거든요."
비록 간접적이긴 하지만, 이렇게 쉽게 고민을 드러내고 있다는 것은 어찌보면 참 신기한 일이었다.
하지만 뭐랄까.... 눈앞의 이 젊은 강사에게는 이유를 알 수 없는 모호한 편안함과 더불어, 속내를 털어놓고 싶어지게 만드는 무언의 힘이 있었다. 어떤 말을 하더라도 유심히 들어주고, 늘 그랬듯이 정곡을 찌르는 예리한 한 마디를 던져줄 것만 같았다. 사실 그것은 이 여자의 매력이기도 했다.
"재미있네요. 어떤 문제인지 듣고 싶은 걸요."
"조, 조금 복잡한 문제이긴 한데...."
"그 학생한테만큼은 말할 수 없다면, 저한테는 말할 수 있을 정도인가요? 저는 복잡한 얘기도 나름대로 좋아하는 편인데."
타인에게 고민을 털어놓을 수 있다는 것은 좋은 일이었다. 해답을 얻을 수 있고 없고를 떠나서 털어놓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니까. 물론 그걸 들어주는 상대가 답을 제시해줄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라면 더 할 나위가 없을 테고.
"저.... 교수님."
그래서 나는 마음을 굳힐 수 있었다.
"그러면 술 한잔 사주실래요?"
"네?"
내 입에서 전혀 뜻밖의 멘트가 튀어나오자 유가희 교수도 드물게 놀란 듯,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저런 표정을 짓는 모습은 처음이었기 때문에, 솔직히 내가 너무 생각없이 말을 뱉은건가 하는 생각이 들어 조금 후회가 되기도 했다.
"아니, 그게... 사는건 제가 산다는 뜻이었어요."
적잖이 당황했는지 방금 전보다 더 심한 헛소리가 튀어나왔다. 그런 내 모습을 잠시 놀란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던 유가희 교수가 이내 헛기침을 하듯이 모호한 웃음을 지었다.
"뭐,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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