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속 바위도시 페트라와 알카즈네
황폐한 아라비아 사막에 있는 신비의 고대 도시 페트라.
그리고 페트라에서 최고의 걸작은 입구에 웅장하게 서있는 알카즈네이다.
알카즈네는 보는 이로부터 저절로 경외감을 갖게 만드는 최고의 역작이다.

< 알카즈네 >
이 알카즈네를 처음 알게 된것은 해리슨 포드의 1989년작 인디아나 존스 - 최후의 성전에서 였다.

< 인디아나 존스 - 최후의 성전 >
누가, 어떻게, 무엇때문에 사막의 절벽에 이 위대한 건축물을 만든 것일까?
오늘은 영화속에서 강렬한 인상을 남긴 페트라의 알카즈네에 대해서 알아보자.
페트라는 요르단 남부 사막의 메마른 땅의 좁은 길속에 신비롭게 그 자태를 숨기고 있다.
바위투성이의 깊은 골짜기의 좁은 길을 따라 1km를 지나오면 사막의 산악도시 페트라가 눈앞에 펼쳐진다.

< 페트라로 가는 길목 >
1812년, 고대의 잊혀진 도시가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스위스의 탐험가 부르크하르트는 아라비아 사막으로 향했다.
좁고 구불구불한 협곡은 높은 절벽으로 이어져있었고 그 길끝에 무엇이 있는지는 그 누구도 알수 없었다.
좁은 절벽을 따라 그 끝에 도착한 탐험대는 눈앞에 높이 39m에 달하는 고대의 건축물 알카즈네를 발견했다.
역사속에서 자취를 감춘 위대한 건축물의 발견이었다.

< 페트라의 위치 / 페트라 입구에 자리한 알카즈네 >
알카즈네는 전체가 장밋빛 붉은 사암이였으며 웅장한 기둥사이로 내부 공간이 절벽 가운데로 깊숙히 들어가 있다.
알카즈네 뒤의 협곡을 지나면 널찍한 분지가 나온다.
이 곳에서는 한때 번영했던 고대의 문명유적들이 즐비해있다. 신전과 원형극장, 수십개의 무덤들 이 그것이었다.

< 페트라 전체 지도 >

< 페트라의 유적들 >
페트라는 그리스어로 ' 바위' 이다.
이 유적들중 페트라에서 가장 돋보이는 건물은 바로 알카즈네이다.
알카즈네는 그 높이가 무려 12층 건물 높이에 달하는 천재적인 고대 건축기술의 산물이다.

< 장밋빛 사암으로 된 알카즈네 >
황량한 사막에 이 웅장한 건물을 세우는 것은 불가능해보였다.
전문가들은 해답을 찾기위해 누가 알카즈네를 지었는지 조사할 필요가 있었다. 누가 알카즈네를 지었을까?
19세기의 사학자들은 베두인족이 지은 이름 ' 카즈네 파론 '에 주목했다.
정확한 명칭은 아랍어 ' 카즈네 엘 파론 '으로 ' 파라오의 보물 창고 ' 라는 의미였다.
베두인족은 이집트 파라오가 지은 것으로 생각했으나 현대의 전문가들은 고대 이집트인들이 지은 것이 아니란 증거를 찾아냈다.
알카즈네의 건축양식이 당시 이집트의 건축양식과 달랐기 때문이었다. 알카즈네는 이집트 건축물보다는 그리스 건축물의 양식이 많이 엿보인다.

< 그리스의 신전 >
페트라에서 발견된 후기 그리스 건축양식은 페트라 서쪽의 알렉산드리아등의 로마 제국 도시에서도 나타난다.
두 건축양식이 동일한 것을 보아 알카즈네가 지어진 시기는 기원전 80년경이라고 추정된다.
고대 이집트의 전성기보다 대략 천년뒤에 건축된것이다. 그러므로 고대 이집트인이 알카즈네를 건축했다는 이론은 사실이 아닌것으로 판명났다.
다른 단서가 2천년된 그레코로만 문서에서 발견되었다.
이 문서에는 사막도시 페트라에 대한 언급과 함께 나바테아인들의 도시로 적혀있었다.
나바테아인들은 아라비아 반도의 유목민족으로 무역 활동과 교역로 개척으로 부와 명성을 쌓은 민족이었다.
그들은 당시 고가의 양념과 향료를 수백마리의 낙타에 실고 아라비아 전 사막을 누볐다.
그리고 그들의 무역로 교차로 중심에 위치한 곳이 바로 지금의 페트라였다.

< 고대의 교역로 >
나바테아인들은 서쪽의 로마와 그리스, 동쪽의 페르시아, 그리고 지중해 건너 로마까지 무역활동을 했다.
유목민족이던 나바테이인들은 기원전 1세기경 페트라에 정착했다.
수백년전 종적을 감춘 나바테아인들의 유적은 그리 많이 남아있지 않다.
초기의 나바테아인들의 무덤을 살펴보면 그 구조가 매우 단순하다는 것을 알수 있다.
하지만 그들은 몇십년만에 알카즈네를 건설할 수 있는 부와 기술을 가지게 되었다.

< 페트라의 무덤 >
현대의 전문가들은 나바테아인들이 어떻게 깍아지는 절벽에 올라갔는지를 연구했다.
알카즈네 양쪽 절벽에는 두줄로 된 네모난 홈들이 있다.

< 네모홈 / 화살표 참고 >
이 홈에 나무 받침대를 끼웠다고 생각하는 학자들도 있었지만 바위투성이인 페트라에서 나무를 구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일이었다.
나무 받침대를 39m나 쌓으려면 엄천난양의 목재가 필요로 했을 것이다. 또한 네모홈을 살펴보면 홈이 정확한 사각형이 아니란 것을 알 수있다.

< 알카즈네의 네모홈 모양 >
이런 형태는 나무 받침대를 끼울 수 없는 형태였다. 이 네모홈은 절벽을 기어오르는 발판으로 사용된것으로 보인다.
네모홈은 알카즈네가 건축된뒤 중세시대에 생긴것으로 생명체를 조각하는 것에 대해 거부감을 가진 반달족이 알카즈네의 조각상을 파손 시킬때 만들었던 것이다. 이것은 네모홈이 알카즈네 건축때 쓰인것이 아니란 증거가 된다.
나바테아인들은 나무대신 절벽자체를 이용했다. 알카즈네 뒷쪽 절벽에는 위로 향하는 돌계단이 있다.
이 돌계단을 통해 나바테아인들은 39m까지 올라간다음 작업을 시작했다.

< 알카즈네 뒤의 돌 계단 >
첫번째로 절벽의 표면을 갈아내어 평평하게 다듬었다.

< 절벽의 곡괭이 자국 >
단독 건축물은 아래에서 위로 짓는것이 당연하지만 알카즈네는 위에서 아래로 짓은 건물이다.
우선 절벽에 사람이 서있을 수 있는 단상을 만든뒤 점점 아래로 절벽을 깎아 나갔다.

< 알카즈네의 건설방법 >
절벽의 매끈한 단면이 완성되자 건축가들은 다시 꼭대기로 올라가 절벽을 파 다시 단상( 서있을수 있는 발판 )을 만들고 외관을 세심하게 새기기 시작했다. 알카즈네의 모양을 내는 일은 신중에 신중을 기하는 일이었다. 실수를 한다해도 다시 위로 올라갈수 없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끌과 손만가지고 부드러운 사암을 위에서 아래로 조각해나갔다.
나바테아인의 천재적인 생각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알카즈네를 건축하면서 나온 엄청난 양의 돌들을 지혜롭게 처리한 것이다.
바위를 격자무늬로 나누고 중간에 홈을 파서 지렛대를 이용해 손쉽게 아래로 떨어뜨려버린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벽돌모양으로 잘려진 돌들은 다른 건축물을 만드는데 이용했다.

< 알카즈네에서 나온 돌들을 이중으로 사용함 >
알카즈네는 건설 현장이자 동시에 채석장이었다.
알카즈네 건설에는 위험요소가 있었다.
독립적인 건물은 건축가들이 바닥과 기둥을 튼튼히 쌓은 다음 견딜수 있는 무게만큼 상층부를 쌓을 수 있었으나
아래로 내려가는 방식은 윗부분이 먼저 완성되므로 무게를 지탱할 수 있는 힘의 분배가 정확해야했다.
윗부분의 무게가 너무 무거워지면 건물 전체가 무너져내려 대량의 인명피해가 날 수도 있는 것이었다.
알카즈네는 절벽전체를 깎아 만들었지만 단 한군데만은 예외였다. 하단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입구와 독립적으로 서 있는 두개의 기둥이 그것이다.

< 알카즈네의 구조 >
이 거대한 입구와 두개의 기둥은 수백 톤의 바위를 지탱해야한다.
상단부의 무게를 지탱하기 위해 거대한 상인방을 바위에 조각했으며 상인방을 받치고 있는 거대한 6개의 기둥을 만들었다.
이 6개의 기둥중 정면 2개를 제외한 4개는 모두 절벽에서 깍아낸 것이라 바위표면에 붙어있다.
쉽게 말하자면 무게를 지탱하는 상인방과 4개의 기둥이 절벽에 붙어있어 구조적으로 알카즈네는 매우 안정되어있다.
실제로 1960년대에 알카즈네의 전면적인 보수가 이루어지기 전까지 중앙의 기둥하나는 소실된 상태였지만 알카즈네는 전혀 손상되지 않았다.

< 보수전 알카즈네 >
이는 나바테아인들은 정확한 계획과 계산에 따라 알카즈네를 세웠다는 것을 의미한다.
페트라로 들어서는 입구에 위치한 만큼 전시 효과는 알카즈네의 위치는 지리적으로 매우 위험한 곳이었다.
좋았지만알카즈네의 반대쪽 절벽에 난 좁은 틈 ' 시크 '는 수천년동안 홍수가 범람하면서 바위를 깎아 놓은 것이었다.
사막에 대량의 비가 내려 홍수가 난다면 좁은 시크를 따라서 1.5m깊이의 물 소용돌이가 알카즈네로 들이 닥친다.
나바테아인들은 홍수의 위험에 대한 안전장치를 만들었다. 바로 시크 입구에 위치한 댐과 절벽을 30m나 파고들어간 터널이었다.

< 시크 / 터널과 댐위치 ( 화살표 참고 ) / 터널 >
이 댐과 터널을 이용해 홍수가 나더라도 물이 시크가 아닌 다른쪽으로 흐르도록 만들었다.

< 댐과 터널을 이용해 물길을 바꿈 >
댐은 홍수를 막는 방어목적뿐만아니라 50도가 넘는 사막 한가운데의 페트라에 식수를 공급하는 급수 시설의 용도도 있었다.
또한 페트라의 위치는 분지의 가장 아래에 위치하기때문에 모든물이 도시중심으로 흘러들었다.
그들은 빗물뿐만아니라 먼 곳의 샘에서 물을 끌어오기도 했다.
나바테아인들은 테라코타관을 이용하여 급수터널을 만들었는데 바위를 깎아낸 홈속에 짧은 관들을 배치하고
회반죽으로 고정시킨뒤 관사이의 접합 부분을 방수 회반죽으로 마감했다.

< 페트라의 테라코타관 / 기울어진 배수관 홈 >
현대의 급수관은 내부 압력을 견디도록 강철을 사용한 반면 테라코타관은 압력에 약했다.
나바테아인들은 이 문제를 도시주변의 절벽에서 찾았다.
관내부의 물의 압력을 적정하게 맞추기 위해 물의 시작점부터 끝까지 일정 기울기를 줘서 절벽에 홈을 팠다.
관에 물이 흐르게 할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관속에 물을 80%만 채워진채 흐르게 기울기를 주는 것인데
페트라의 송수관 기울기는 이런 효과를 나타내도록 완벽하게 설계되어있다. 나바테아인들은 수력 공학 원리에도 정통해 있었던 것이다.
또한 사막의 건기에 대비해 도시안 지하에 200여개의 물 창고를 만들었다.
이 물창고의 크기와 저장된 물의 양을 보아 페트라의 인구는 5만명에 달했으며 수천명의 상인이 왕래한 것으로 보여진다.
물탱크에 저장된 물은 위의 인구가 몇달을 마실 수 있는 양이기도 했다.
지금과 달리 페트라는 사막속의 오아시스 같은 도시였다. 정원과 분수, 물이 넘쳐났던 것이다.
나바테아인들은 자신들의 번영을 다른 민족들에게 보이기위해 페트라를 건설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알카즈네가 있었다. 수천명의 방문객들은 고대 페트라로 들어오면서 그 웅장함에 놀라워했을 것이다.
하지만 과시용으로 보기엔 페트라의 최고 건출물 알카즈네의 용도는 너무 단순해보인다.
알카즈네의 다른 용도는 무엇이었을까?
알카즈네의 외벽에는 조각상들이 있다. 신적인 존재와 짐승, 잎, 꽃등이 그것이다.
위의 나바테아인들의 무덤을 보면 그들은 이런 조각과 거리가 멀었던 것을 알수 있다.
나바테아인들은 무역을 통해 여러나라를 오가면서 당시 유행하던 문화를 받아드렸다.
( 그리스 신전과 비슷한 형태 / 이집트 이시스의 왕관 , 메두사의 머리 조각 )
또한 조각상을 통해 알카즈네의 용도를 집작해 볼수 가 있다. 죽은 자의 영혼을 천국으로 데려가는 독수리가 4마리 있으며
측면에는 양날 도끼를 들고 춤추는 6명의 아마존(여전사) 조각이 있는데 이것은 아마존족의 ' 죽음의 춤 ' 이다.

< 알카즈네의 조각들 >
독수리와 아마존의 조각을 보면 죽음과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알 수있다. 하지만 내부는 텅비어있기 때문에 확실한 단서가 없었다.
알카즈네의 내부는 외부와 다르게 매우 단순하다. 외부를 위에서 아래로 깎아내려가면서 동시에 절벽안쪽으로 내부공간을 파들어갔다.
내부 방의 크기는 그리 크지 않은데 그 이유는 방위의 160m가 넘는 바위를 지탱하기 위한 것이었다.
나바테아인들은 상부의 무게를 견딜수 있는 크기만큼만 내부를 만들었던 것다.

< 알카즈네의 내부모습 / 내부 단면도 >
내부에서 제단이나 유골이 발견되지 않았기에 위대한 왕을 기념하기 위한 건축물이란 추측도 있었다.
온갖 가설이 난무하는 가운데 1996년, 결정적인 증거가 발견되었다.
알카즈네 앞쪽 광장이 건설 당시엔 지금보다 훨씬 낮았던 것이었다.
즉 지금 보고 있는 알카즈네가 전부가 아니라 땅 속에 하층부가 뭍혀있었던 것이었다.
2003년 고고학자들은 알카즈네 지하 6m에서 4개의 매장실과 11구의 유골을 발견했다.

< 매장실 입구와 매장실 >
전문가들인 이 매장실에서 나온 부장품들을 분석하여 그 연대를 알아냈다.
공예품들은 모두 기원 후, 1세기 이내에 만들어진것들이었다. 당시의 페트라에 알카즈네를 건설했던 왕은 아레타스 4세였다.
그 당시는 아마 나바테아의 최고 전성기였을 것이다. 지금까지 발견된 나바테아 동전의 80%이상에 아레타스 4세의 부조가 들어가 있다.

< 아레타스 4세 >
매장실에서 아레타스의 유골은 발견되지 않았지만 그의 가족 유골로 추정된다.
매장실에서 발견된 신에게 바치는 향료나 제물이 담긴 그릇으로 보아 알카즈네는 종교적 의식이 거행되던 신성한 장소였음이 분명하다.
그리고 많은 고대인들이 알카즈네를 성지순례했을 것이다. 지금도 페트라의 알카즈네는 고대의 눈부신 건축술이 만들어낸 사막속 최고의 보물이다.
참고 : 네셔널지오그라피, 구글
펌오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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