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은 죄가 없다.txt
얼마 전에 아는 형을 만나서 술을 한 잔 했다.
나는 형에게 요즘 드는 생각을 말했다.
"형 나이가 드니까 이제 성욕이 사그라드는 것 같아요"
"음.. 마누라한테?"
"아니.. 전반적으로 다요... "
"그건 자연스러운 현상이지"
"이젠 가슴이 작은 여성에게는 아예 성욕이 들지 않는 것 같아요."
그러자 형은 말없이 담배를 피우며 생각에 잠기다가
이윽고 내게 말을 꺼냈다.
"너도 알다시피 내가 가슴 큰 여자랑 결혼했자나"
참고로 이 형은 40대 이혼남이다.
그는 담배를 내뿜고는 말을 이어갔다.
"나도 처음엔 가슴이 전부인 줄 알았다. 여성의 매력은 가슴뿐인줄 알았어.
가슴에 파묻혀 질식사하는 것이 나의 소원이었다. 그래서 D컵과 결혼했지.."
"근데요"
"하지만 가슴이 전부가 아니야. 가슴은..가슴은..
너는 동그란 것이 길쭉한 것으로 변할 때의 공포를 알고 있니?"
"동그란 것이.. 길쭉한.. 것?"
"가슴은 늘어지게 되어 있다. 가슴은 변하는 거야.
동그란 것이 이... 이렇게 늘어져서.. 나중에는 리본도 묶을 수 있을 정도로.."
그는 가슴이 답답한 듯 침을 삼켰다.
"차라리 골반이 있는 여성을 탐해라. 뼈는 쉽게 변하지 않아.
여성의 매력을 가슴에서만 찾다간 내 꼴 난다.."
"흐음.."
나는 아무 대꾸도 하지 못한채 고개를 끄덕였다.
자리를 파하고 집으로 향하는 지하철 안에서
나는 문득 번개처럼 내리치는 생각에 그 형에게 전화를 걸었다.
"형!! 형!!"
"어 왜? 들어가고 있냐?"
"길쭉하게 되는 건 그건 가슴 때문이 아니에요!!"
나는 취해 있었고, 열차 안의 사람들은 나를 쳐다보았다.
하지만 당시의 나는 민망함조차 잊은 채
욕탕에서 뛰어나와 유레카를 외친 아르키메데스의 심정으로
그 형에게 말을 이어나갔다.
"그건 나이 때문입니다. 나이가 들면 당연히 탄력을 잃고 쳐지지요. 그건 가슴 때문이 아니에요."
"..."
"형! 가슴은 죄가 없습니다. 형!"
"..."
수화기 너머에선 아무 말이 없었다.
어리둥절해 하는 사람들을 싣고
밤열차는 그렇게 목적지를 향해 달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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