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머

그녀는 의대생 ㅅㅂ

대위 단소살인마

전과없음

2013.05.22가입

멋있게 늙어 가자.

조회 8,636

추천 2

2015.02.18 (수) 12:13

                           
나는 지지리도 복이 없는 놈이었다. 500원짜리 복권도 당첨되본 적이 없는 복거지 중의 상거지.. 로또는 말해 무엇하리...
미달러환율이 1600원이 넘었을 때 미국으로 어학연수를 갔다. 미국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드는 생활물가를 자랑하는 도시로..... 바퀴따윈 도움도 되지 않는 비포장도로 주변에 위치한 노란 폴리스라인으로 이쁘게 포장이 되어있던 허름한 반타지오가 미국에서 지냈던 첫번째 숙소였다.
환율폭등으로 많은 한국유학생이나 어학연수생들이 한국으로 돌아갈 때에도 나는 허름한 반타지오에서 일주일에 한번만 씻는 잘생긴 프랑스놈이랑 일어로 대화를 하고 있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내가 일본사람인 줄 알았단다. 야동만 봤을 뿐인데..


그렇게 몇달..

반강제적으로 한국인들과 격리된 생활을 지내면서 자연스레 영어는 늘었고, 
한국에서 천대받았떤 나의 똘끼는 미국에선 매력적인 장점이 되었고 많은 친구들을 사귈 수 있었다.
유별나게 애국심이 강해서 그런지.. 외국여자와의 썸은 있었으나 깊은 관계로까지는 발전이 안 되었다...
점점 오리지널 한국인의 느낌도 잃어갈 때 쯤...

하늘 높을 줄 모르던 환율이 한풀 꺽이더니, 어학원에 한국애들이 많이 들어왔다.
매주 월요일은 학원에 새로운 신입생이 들어오는 날이며 동시에 내가 가장 신경쓰는 날이기도 하다.

그 아이를 처음 본 그날. 6년 전임에도 불구하고 생생하게 그날이 생각난다.
봄볕이 스며드는 창가 앞에 놓여있는 쿠션소파 옆에는 누구나 칠 수 있는 줄 끊어진 낡은 기타가 있었고, 그 기타는 항상 누군가에 손에 들려있었다. 제대론 된 소리는 나지 않아도 이래저래 바쁜 기타였다.
누구든 그 소파에 앉아 그 낡은 기타를 잡으면 매력적인 모습을 발산했으니, 학원 내 명당 중 명당이었다.
누구보다 오래 학원에 다녔던 나는 그날도 어김없이 기타를 베개삼아 소파에 누워 지나가는 모든 친구들과 인사를 하며 고학생 티를 냈었다..
오전수업이 끝나고 딱히 할 것도 없어 소파에 잠시 눈을 붙였는데..
어디선가 향긋한 내음이 코를 간지럽히더라..
속으로 또 미쉘이 장난을 치나 생각하고 "미쉘~ 너 또 향수로 샤워했냐?(영어로 했다.)"라며 코를 벌렁벌렁거려줬지.
근데 미쉘이 여자목소리로 "킥킥.." 거리는거야. 물론 미쉘도 여자다.
눈을 살며시 뜨면서 시선을 조금씩 올렸지. 난 누워 있었으니깐.........

앙증맞은 작은 발에 수제화처럼 보이는 작은 단화,
무릎 위까지 살짝 올라간 검은 색 무릎스타킹,
교복을 연상시키는 베이지색체크무늬 주름치마,
햇빛에 브래지어라인이 살짝 비치는 귀엽지도 않고 섹시하지도 않은 라인의 셔츠를...
문채원이 입고 있었어... 그것도 문채원이 살빼고 턱 깍은 상태로......
그렇게 문채원을 보고 "꿈 완전 리얼하네(영어로)" 하면서 다시 드러누웠지.

근데 걔가 말을 하는거야...... 내 꿈인데 허락도 없이....

"저기요.. 발 좀 치워주세요"
내가 근 1년 만에 듣는 첫 한국말이었어..
반가운 한국말을 한번 더 듣고 싶은 마음인지, 채원이의 목소리를 더 듣고 싶은 마음인지 몰라도 "네? 머라구요?" 했던 거 같애.

"저기, 제가 좀 피곤해서 앉으려고 하는데 자리 좀.."
"아, 네. 죄송합니다."

그렇게 소파 위 불편한 동거가 시작됐어. 머.. 되게 어색하고 뻘줌할 줄 알았는데.. 채원이는 소파에 기대자마자 눈을 감더라... 살짝 훔쳐보니, 이마에 땀방울이 송글송글 맺히고 먼가 숨이 불규칙적이면서 불편해보였지. 감기몸살에 오한이 살짝 온 거 같더라고.. 내가 사실 군병원 내과의무병 출신에 응급실도 몇달 지원근무했던 터라 응급조치키트에 각종 비상약 등을 항상 가지고 다니거든. 군병원에서 CPR 교육조교도 했었고, 세이프가드 자격증도 땄었지(지금은 갱신하지 않아 유효하지 않음)..
특히 여행갈 때나 해외생활할 때 유용해. 병원비용이 부담되니깐.. 여자애들한테 점수도 따고.

다시 본내용으로 돌아와서.. 내가 채원이를 처음 볼 때 당시 허름한 반타지오에서 나와서 학원에서 한 블럭 떨어진 원룸에서 살고 있었어. 잽싸게 집에 가서 몸살감기약이랑 따뜻한 물을 보온병에 담아왔지. 
그런데 가져오긴 했는데.... 어떻게 말을 걸어야 할 지 참 난감했어..
솔직히 그때까지만 해도 어떻게 한번 꼬셔볼려고 그런 행동을 한 게 아니라, 아픈 사람이나 불쌍한 사람 있으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성격이라.. 게다가 얼마 만에 만난 한국사람인데.. 게다가 허벌나게 이쁘고.... 이쁜 사람은 아프면 안 되자나.. ㅠㅠ

깨웠어. 살짝 어깨를 흔들어서.
귀여운 강아지마냥 눈 동그랗게 뜨고 나를 올려다보는데.. 하아....
난 너에게 홀리지 않았다는 듯 무관심한 척 가볍지 않은 목소리로 "이거 좀 먹어봐요."라고 말했지.
채원이는 의심도 없이 그냥 덥석 받아먹더라. 그리고 "고맙습니다."라며 웃었어.
그 아이가 웃는데 내 심장이 콩알만큼 쪼그라들었다가 다시 확 펴지면서 알 수 없는 감정의 꽃이 온몸에 피를 따라 만개하는 거 같았어.. 심장이 지혼자 벚꽃놀이하더라고.
속으로 이랬던 거 같애. '웃는거보고싶어웃는거보고싶어웃는거보고싶어웃는거보고싶어웃는거보고싶어'

채원이에게 내 흔적을 조금이라도 남겨야 된다고 생각했어. 내 이름이든, 약의 고마움이든, 보온병의 따뜻함이든, 그게 빚이든 머든간에 다시 만날 수만 있다면..
무슨 말이라도 해야 되는데.. 머릿 속에 수많은 말들과 그 말에 어울리는 몇 안 되는 내 표정들을 열심히 짝지어주며 머리를 굴리면서 굴리지 않은 척 연기하는 사이에...

누군가 그녀를 데려가려는 게 아닌가..
오후수업에 늦었다며 그녀를 채가는 여자애는 그녀의 단짝 애봉이었어.
그렇게 채원이는 급하게 고맙다는 인사만 하고 훌쩍 떠나버렸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계속 같은 자리에서 그녀가 지나가기만을 기다렸었어..

그런데 한달동안 나타나질 않더라.. 초조하고 안달났으며 그때 더 적극적이지 못한 나를 탓했지..
2달 후에는 한국에 돌아갔어야 했고, 남은 기간을 학원에서만 보내기에 너무 아쉬워 얼마 전에 사귀었던 한국친구(남자)와 라스베가스로 여행을 가기로 했어.
친구가 학원에서 이쁜 애들로 수소문해서 2:2 짝을 맞춰가기로 했고, 나는 여행계획을 세웠지.
그리고 멤버구했다며 여행 가기 전에 친해지자는 목적으로 내 원룸으로 초대했어.

그래. 채원이랑 애봉이었어.

미국에서 자취생활이 길어지면 깨닫게 되는 게 몇 가지가 있어.
MSG사용량이 정밀해지고, 양념은 파는 걸 사는 게 이득이라는 걸 알게 되지...

판매용양념으로 버무린 제육볶음과 5그램MSG김치찌개를 자신있게 준비했지.
국적 안 가리고 항상 먹혔던 절대메뉴였어. 빨간음식은 처음 먹어본다던 미국남부시골촌뜨기부터 태어나서 셀 수 없이 김치찌개, 제육볶음을 먹어봤다던 음식점 딸내미한테도..
애봉이가 더 많이 먹은 거 같아 마음이 아팠지만, 그래도 채원이가 맛있어 하는 거 같아 기분이 참 좋았어.
맛있게 다 먹은 다음, 나는 설거지하기 전에 식후땡을 하러 잠깐 베란다에 갔었지.

사실 지금까지 내돈주고 재료사서 밥해주면 설거지하는 여자애들이 없었어. 남자들은 기본적으로 하는데 말이야...
담배를 다 태우고 전혀 기대 안한 마음으로 부엌에 갔는데..........
세상에서 가장 이쁜 뒷모습을 본거야..... 그날 따라 타이트한 청바지에 달라붙은 맨투맨티를 입었는데..
그릇을 닦는 오른손의 반동에 따라 엉덩이가 미묘하게 흔들리고, 허리를 숙일 땐 살짝 삐져나온 핑크빛 팬티가 살짝살짝 보이더라... 군살이라고는 전혀 안 보이고, '나 정말 건강해요'라고 말하는 거 같았어.

그런데 그런 아이가.. 설거지를 하네. 설거지를 해. 부탁도 안 했고 시킨 사람도 없는데 알아서 설거리를 하더라니깐..
정말 안아주고 싶었어. 이쁘다고 막 뽀뽀하고 그냥 내 감정을 표현하고 싶었어. 그런데 그러면 안 되자나.
내가 아는 건 매운 걸 잘 못 먹는 거랑, 고기보단 채소를 좋아한다는 거, 이쁜데 웃을 땐 더 이뻐진다는 거 그리고 이름 뿐인데.. 이것도 밥 먹는 거 몰래 훔쳐보고 대화 엿들어서 안거야..

밥을 먹고 자연스럽게 술자리로 이어졌어. 술이 조금 부족해서 내가 나와서 사왔지.
술을 사오고 당장 마실 거만 내어놓고 나머지는 냉장고에 넣어두고 화장실에 손을 씻으러 들어갔어.

정확히 말하면 화장실 문을 열었어...

채원이랑 눈이 마주쳤어.....

정확히 말하면 눈은 나중에 마주쳤어........

뽀얀 허벅지와 가장 은밀한 부분을 가리기에 한줌도 안 되는 음모들이 선명한 고해상도사진처럼 내 기억에 저장이 되고 나서야 나는 조용히 문을 닫았지.

둘다 말은 안 했지만, 무언의 어떤 약속을 한거지. 둘만의, 굳이 공유할 필요가 없는, 껄끄러운 비밀이 하나 생겨버렸어.
가장 마지막에 봐야될 것을 먼저 본 느낌은.. 머랄까.... 엔딩을 미리 알고 영화를 본 적 있어?
나 누가 영화 스포일하는 거 정말 싫어하거든.......
그런데 그 영화가 명작인거야. 해피엔딩인 걸 알면서도 기분좋게 볼 수 있는 이쁜 여주인공이 나오는 스토리 좋은 로맨틱코미디영화 말이야..
다만 내가 걱정하는 건 한가지였지. 여주의 캐스팅...
근데 내가 먼저 걱정해야 될 게 있었어. 자신의 은밀한 부분을 본 사람이랑 같이 여행같이 가야 되는 여자의 심리상태를 생각 안 했던 거지......

나중에 들었지만, 여행 안 갈려고 했었대. 근데 이 인간이 그 사건을 다시 꺼내지도 않고, 다른 사람한테 떠벌리지도 않고 그래서 내가 술취해서 기억이 안나나보다 생각했었대.

본내용으로 다시 돌아가서..
그렇게 채원이, 애봉이, 친구(남자)와 함께 여행계획을 빌미로 여행 전 두어번 만나면서 채원이에 대해 많은 걸 알게 됐어.
자연미인이라는 점, 4살 연하, 남자친구 없음, 학원 입학한 지 2달째, 그때 약을 준 나를 기억한다는 점, 약먹고 더 아파서 날 원망했다는 점.... 그리고 의대생이라는 것.

그날 채원이 애봉이 보내고 집에서 친구랑 한잔 더 하면서 얘기한 내용이 생각난다..
와.. 의대생 처음봐...
진짜 의대생이야?
의대생이 이쁠 수가 있어?
의대생이 왜 미국에 온거야?


야....
의대생은 어떻게 꼬시냐......

그녀의 피부만큼 새하얀 웨딩드레스
친구들이 뿌려준 꽃가루로 가득한 익숙한 거리
언젠가 결혼을 하게 되면 듣고 싶었던 음악
누가 될 진 몰라 추상화처럼 희미한 이미지로만 생각해왔던 내 옆자리에
채원이가 웃고 있었어.
누구보다 아름다운 미소로 날 올려다봐주는 채원이..

채원이를 만난 후 처음 꾼 꿈은 너무나 선명했었고, 그 꿈은 라스베가스여행 이틀째 날 다같이 스카이다이빙을 하고 들어와 잠시 눈을 붙였을 때 꿨었지. 라스베가스 여행은 다이나믹, 성공적, 로맨틱 했어. (요즘 유행하길래 나도 한번..)
겜블과 호텔탐방, 쇼구경만 하는 일반적인 여행일정을 벗어나 남들이 하지 않는 걸 하기로 했었지.
그 중에 하나가 스카이다이빙이었어.
난 고소공포증이 있어. 높은 데 올라가면 말수가 심하게 줄어들고 오금이 저리지.

친구(남자)를 제외한 채원이랑 애봉이 그리고 나는 땅콩 따위는 절대 주지 않을 거 같은 조그만한 경비행기에 몸을 실었어.
내 친구(남자)도 고소공포증이라 땅 밑에서 우릴 찍어주기로 했었어.
우릴 제외한 관광객들도 있었고,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채원이랑 애봉이는 둘이서 희희낙낙하더라.
난 끈이 끊어지진 않는지, 1년에 보통 몇명씩 죽는지, 낙하산을 빨리 펴줬으면 좋겠다 등등 내 목숨을 책임질 백인형아랑 심각한 대화를 나누고 있었어.

그때 채원이가 날 부르더라. 시끄러운 프로펠러 소리, 바람소리, 땅에서는 들을 수 없는 갖가지 소음들 속에서 채원이의 "오빠!"라는 소리는 왜 그리 선명하게 들리는지...
고개를 돌려 채원이를 보니 백만불짜리 웃음과 함께 엄지손가락을 척!하고 세우는거야.
근데 손가락이 작아서 그 모양이 얼마나 귀여운지 새어나오는 웃음을 막을 수가 없었어.

진정제같은 그녀의 웃음을 생각하며 잠시 마음을 추스리니, 어느덧 비행기에서 뛰어야 하더라...
하필 내가 1번... 끄아어ㅏ어아ㅓㅏㅇ러ㅏㅓㄹ
죽을 수도 있는데 좋아한다고 말이라도 하고 죽을까 고민하던 찰나에,
백인형아가 뛰어버렸어. 나를 매달고... 끄아ㅓㅏㅇ거ㅏ어ㅣ아ㅓㄹ




그리고..

내 눈에 펼쳐진 엄청난 광경에 숨도 못 쉬었어.
콧물이 역류하여 내 뺨을 타고 귀로 넘어가든 말든
눈앞에 펼처진 어마어마한 광경을 1인치도 안 남기고 내눈에 내가슴에 모두 다 담으리라 생각하며 감동과 전율을 온 몸으로
느끼며 안전하게 착지했어.

엉? 근데 내가 분명 먼저 뛰었는데 채원이가 먼저 와 있네?
채원이를 매달고 같이 띈 형아가 낙하산을 늦게 폈나봐. 난 그렇게 생각했지만 니가 무거워서 먼저 떨어진거라고 얘기했지.
암. 그렇지. 잘한다. 놀려야 친해지자나.

그렇게 아침일찍 스카이다이빙을 하고 호텔에 들어와 잠시 낮잠을 청했을 때...


채원이가 내 꿈에 나와버린거야......
운명과 인연, 그리고 그런 만남을 기다려온 나로서 그 아이와의 모든 시간들이 신호라고 생각했어.
주관적인 해석으로 나혼자 운명이라고 생각하고.. 아직 잠에서 깨지 않은 채원이를 바라봤다.
그리고 귓속말로 이렇게 속삭였었어...



나 앞으로 널 많이 좋아할 거 같다...

"나 앞으로 널 많이 좋아할 거 같다..."

".....응....? 방금 머라고 했어?"


반쯤 풀린 눈을 한 채 잠결이 묻은 허스키한 목소리로 그녀가 되물었다.
갑자기 심장소리가 옆방까지 들릴 정도로 쿵쾅거렸다. 내 마음을 들켜서 나는 심장소리인지, 아님 처음으로 느껴본 그녀의 섹시한 모습에 심장이 놀란 것인지는 금방 알 수 있었다.

인공조미료 따윈 단 1mg도 들어가지 않은 천연 그대로의 섹시..
원자폭탄 이전에 그녀가 태어났다면, 원자폭탄의 코드명은 그녀의 이름이었을 것이다..
내 심장은 그녀의 sexy-bomb에 터져버린 듯 했다.


"아냐아냐~ 아무 말도 안 했어. 몇시에 깨워줄까?"

"음.. 오빠 나 몇시까지 자도 돼?"

"음... 다른 애들 일어나면 그때 깨워줄께. 일단 다시 자. 깨워서 미안"

"힛.... 나 그럼 좀만 더 잘께용"


심장마사지를 위한 담배 한 모금이 간절했던 나는 다시 잠든 듯한 채원이를 뒤로 하고 서둘러 방을 나섰다.
어렵게 흡연장소를 찾아 담배를 입에 물고 좀처럼 진정하지 못하는 내 몸을 연신 쓸어내렸다.

'들었을까? 아냐아냐.. 아.. 들었으면 어쩌지.... 아........ 입에서 냄새가 나진 않았을까? 아냐아냐.. 양치했었지 아까..'

혼비백산한 내 정신은 귀로 냄새를 맡았다고 착각하게 되는 수준까지 이르렀고..
담배꽁초가 수북히 쌓였을 때쯤, 심장은 여전히 비명소리를 내었지만 숨은 쉴 수 있을 정도만큼 진정이 되었다.
결국 내 마음을 당분간 숨기기로 결심하고 나서야, 숙소로 돌아갈 용기가 생겼다.

충분한 휴식을 취했던 우리는 그날 오후를 호텔 수영장에서 보내기로 했다.
여유있지 못했던 어학연수생 4명은 여행 내내 침대 2개가 있는 방 하나에서 지내고 있었기에, 수영복을 갈아입는 것도 쉽지 않았다. 여자들은 거울이 있는 화장실에서, 남자들은 그냥.. 갈아입었다. 준비할 게 많겠지. 암.


5분... 10분.... 20분이 지나서야 나오는 채원이와 애봉이.



정말 입이 딱 벌어졌다.......
그 둘은 들어가기 전이랑 똑같은 옷차림이었다 -_-

"야~ 니네 똥만 싸고 나온거야?"라고 물을 용기가 없는 나는 웃음으로 당황함을 감추며 "수영복 안 입었어?^^"라고 물었다.
살짝 얼굴을 붉히며 "안에 입었어요"라고 말하는 채원이와 "오빠 전 물에 안 들어갈 거에요"라고 말하는 애봉이.

"응? 수영장에 가는 데 왜 물에 안 들어가?"라고 묻자, "전 물에 들어가는 거 싫어해요"라고 말하는 아름다운 애봉이. 여기서 애봉이의 '애'는 '愛'이다. 정말 사랑스럽지 않을 수가 없는 아이다.

참고로 내 친구는 고소공포증과 물공포증이 있다. 게다가 애봉이는 물이 싫다고 한다.
웃음을 참으니 코가 계속 벌렁거린다.... 아. 이제는 코까지 흥분한다.



10분 후.



라스베가스 모 호텔의 수영장은 2m부터 1.5m까지의 다양한 수심을 제공하며 투숙객들의 다양한 요구를 만족시켜준다.
국제적인 관광도시인 만큼 라스베가스 내 호텔들은 각양각색의 투숙객들을 만족시키며 한해 수백만 명 이상의 관광객들을 유치한다.
라스베가스 호텔들 중 한 호텔의 수영장에 왠 남자가 넓은 수영장을 독점하며 유유히 수영을 즐긴다...




"오빠, 죄송해요.. 제가 수영을 할 줄 몰라서요. 애봉이랑 그냥 여기서 구경할께요."

물에 들어왔다가 머리까지 잠겨버린 채원이를 물 밖으로 끌어올릴 때 그녀가 했던 말이 자꾸 맴돈다.
쓸데 없이 수영장은 나혼자 들어옴으로써 더 쓸데 없이 넓어 보였다.

저녁에 갈 카지노만 잔뜩 기대하며 혼자 블랙잭 연습 중인 내 친구.
선글라스끼고 셀카삼매경에 빠진 애봉이.
물먹은 162cm 채원이.
수영장에서 저들 셋을 바라보는 나.


아.. 완벽해. 완벽하게 망했어. 수영장에서 여자하고 노는 건 사치였어. 내가 꿈꾸면 안 되는 부자들의 놀이였어...



그렇게...
멍하니 물에 몸을 맡긴 채, 물 위를 둥둥 떠다니며 구름 한점 없는 솔직한 라스베가스 하늘을 바라보며 눈을 감고 있었다.

그때.. 어디선가 찰랑거리는 물소리와 함께 내 얼굴에 약간의 물방울이 튀었다.
몸을 세워 어디선가 날라오는 물방울의 근원지를 찾았다.


그것은 조막만한 채원이 발에서 비롯된, 나에겐 생명수와 같았던 물방울이었다.

유난히 긴 밤이다. 밤이 길어지면 뱀파이어와 글을 쓰는 이들에겐 축복이다.


수영장에 조막만한 발을 담근 채 낑낑거리며 물보라를 일으키는 채원이.
혼자 수영하고 있는 내 모습이 안쓰러워였을까. 그녀는 다가오는 나를 향해 환하게 웃어준다.

"오빠, 혼자 놀면 심심하지 않아요?"
"아냐~ 괜찮아. 나 물 되게 좋아해~"
"오빤 거짓말 못하는 성격이구나? ㅋㅋ"

그랬다. 나는 故 히스레저의 조커처럼 입은 웃으면서 슬픈 눈을 한 것이다.

"오빠, 수영 되게 잘한다. 배웠어요?"
"아.. 이거.. 나 바닷가 근처에서 자랐거든. 어릴 때 엄마가 튜브 비싸다고 안 사주시는 바람에 자연스럽게 터득했어."
"와~ 어머니 멋쟁이시다."
"응..... 우리 엄마 되게 멋진 짠돌이야..............."

그녀를 웃게 해주고 싶어 장난삼아 한 말은 멋진 우리엄마로 돌아왔지.
사실 어릴 때 수영도 못하는 게 자꾸 바닷가에서 노니깐 엄마가 노파심에 강제로 수영을 시키셨거든.
울며 겨자먹기로 배웠던 수영이 15년이 지나서야 빛을 발할 때가 온거지.

"수영 가르쳐줄까?"
"아, 진짜요? 나 진짜 배우고 싶었는데 배울 시간이 없었어. 엉엉...."

우는 시늉을 하며 꺼이꺼이하는 이 아이를 누가 사랑하지 않을까..

"일단 여기는 수심이 깊으니깐 저어~기 얕은 데 가서 하자."
"네. ㅎㅎ"

그렇게 나는 가장 얕은 데서 사심가득한 수영강습을 시작했지.

"어라? 너 아까 거의 머리 다 잠겼는데 지금은 입이 나오네?"
"으...으.. 오빠 나 지금 까치발하는 중이에요."

머리가 잠겼다가 숨 한번 쉬러 까치발을 들면서 물속을 들락날락 하는 모습은 영락없이 두더지잡기 기계의 두더지였어..
채원이가 생사를 넘나들면 까치발 신공을 보여줄 때, 나는 귀여운 그녀의 모습을 잠시 넋놓고 보고 있었지.

"오빠, 저 쥐난 거 같아요............. 으아아으아ㅡ"

갑자기 꼬르르하며 물 속으로 사라져버린 채원이.

다급한 마음에 어렵게 딴 세이프가드 자격증이고 머고 배운 내용과 다르게 그녀의 앞으로 다가가버렸어.
모르는 사람들을 위한 부연설명인데 세이프가드는 절대 물에 빠진 사람의 정면을 향해 구조접근을 하면 안돼. 피구조자의 뒤로 접근해야 구조가 용이하거든. 정면으로 접근 시 피구조자가 구조자의 몸에 매달리게 되면 동반익사의 위험이 굉장히 커지지..

결국.. 본의 아니게 그녀가 내 허리를 허벅지로 감싸고 내가 그 허벅지를 손으로 받치게 되는 자세가 되어버렸어..
내것 인듯 내것 아닌 내것 같은 그놈이 조금씩 팽창되더라.
맥시멈까지 팽창되었음을 알리는 빨간 신호가 들어왔어.
그녀와 내 얼굴에 말이야.........

"흠흠.. 너무 커서 수영배우기 힘들 거 같애."
"네????????"
"아니아니, 깊어서깊어서. 수영장이 깊어서. 수영장이."

(미안.. 나 안 커........ 살짝 각색했다. 큰 사람이 되고 싶은 욕망을 자꾸 글에 배출하네...)

"오빠, 나 그냥 매달려 있음 안 되요?"
"응? 나 매달아 놓는다고?"
"아니~~~이~~ 내가 매달려 있는다고요."

눈과 귀, 코로만 느꼈던 채원이를 몸으로 느끼게 되니깐 정신이 아득하더라.
도저히 마주 본 상태로 물놀이를 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기에 채원이를 어부바하고 물놀이를 했어.

숨소리가 섞여 살짝 떨린 목소리는 어떤 소리보다 자극적이었고, 등에서 느껴지는 따뜻한 그녀의 온기는 그 어떤 은총보다 은혜로웠지. 그 수영장은 우리 둘만의 것이었고, 그날 오후도 우리 둘만의 것이 되었어.

채원이가 그러더라. 사실 물을 너무 좋아한다고. 항상 집에서도 욕조에 물을 받아서 목욕하는 걸 즐긴다고 하더라.
나도 그랬었다고 말했어. 채원이가 왜 과거형으로 말하냐고 묻길래, 엄마가 수도세 많이 나온다고 샤워시간을 단축시켜버렸다고 말했었지. 와... 어머니 짱이시다. 라고 말하는 채원이를 보며 모성애를 자극하기 위해 지었던 불쌍한 표정을 냉큼 풀었지.


둘만의 시간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어. 애봉이가 투덜거리기 시작했거든. 심심하다고 방으로 올라가자고.
올라가야 되나.. 짜증과 허무함으로 가득한 내 표정을 숨기며 물 밖으로 나가려던 찰나,
채원이가 애봉이한테 물을 뿌리기 시작하는거야 ㅋㅋ

"아~ 하지 말라고~~~ 나 옷 없단 말이야~~~~~"

의미심장한 표정을 한 채원이는 애봉이의 외침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연신 물장구를 치며 애봉이를 난감하게 만들었어.
결국 애봉이는 투덜투덜거리며 방으로 먼저 올라가더라.

채원이가 장난기 머금은 미소로 씨익~ 웃으며 "오빠, 나 잘했지? ㅋㅋㅋㅋ" 이러는데......
정말 뽀뽀해주고 싶더라... 하...
그래서 뽀뽀하고 싶은 마음만큼 나도 그녀에게 물장구를 치며 물을 먹이기 시작했지.
참고로 나는 수영장가서 친구들한테 물을 이렇게 먹여. 물장구 따위로 가볍게 시작을 했다가 가까이 가서 손으로 물을 떠서 입을 벌리게 하고 물을 먹인다. 난 솔직하고 정직한 놈이라 정말 물 먹인다.

어푸어푸 #$#%@#%@#

저항하는 채원이와 몸싸움을 하며 뒤엉키다 보니 또.. 채원이가 나한테 매달려 있고 옷차림도 많이 느슨해졌어.

살짝 드러난 그녀의 비키니
셔츠가 말려올라가 드러난 짤록한 허리와 앙증맞은 배꼽
작지 않은 내 손에 적당한 가슴

갑자기 응킁한 생각이 들었어. 생각해보니.. 아까부터 응큼했던 거 같다....
다짜고짜 수심이 깊은 곳으로 성큼성큼 들어갔지.

"악.. 오빠~ 오빠~~ 오빠아ㅏㅇ앙 ㅠㅠ"

수심이 깊어질수록 점점 나를 꼭 붙잡는 그녀를 느끼며, 아니, 그녀의 몸을 느끼며.. 숨이 안 쉬어졌어. 켁켁..
내 목을 쪼르더라고... 일부러 그런건지 아님 겁이 나서 그런건지. 진짜 죽는 줄 알았다.
생사를 함께 하는 군인들처럼 일종의 전우애가 생길 뻔한 물놀이었어.


신나게 놀았던 나와 채원이, 블랙잭 연구를 다 마친 내 친구는 투덜거리면 올라갔던 애봉이를 달래기 위해,
호텔 내 클럽을 가기로 했어.

알고 보니, 여자애 둘이서 이미 라스베가스 호텔클럽이 블링블링하다는 걸 듣고 클럽에 입고 갈 복장을 준비해 왔더라고.
내 친구와 나는 클럽 갈 생각이 전혀 없었지. 쪼리, 츄리닝, 청바지, 티셔츠, 모자 정도만 준비해 간거야.

머 그래도 애봉이를 달래기 위해 클럽가기로 했어.
이번엔 수영장 갈 때보다 준비시간이 더 길었지. 하필 또 여자애들이 화장실에서 옷을 갈아입고 화장을 하고 있었기에...
나랑 내 친구는 친히 로비까지 가서 화장실을 썼어.


얼마나 지났을까.
화장실 문을 열고 애들이 나오더라.

분명 둘이 나왔는데, 한명 밖에 안 보이더라.

마냥 귀엽고 큰 눈은,
아이라이너로 그녀만의 개성가득한 라인과 마스카라로 기죽어있떤 속눈썹을 잔뜩 힘주어 하나의 보석같았고,

코수술 한 거 아니냐고 의심받았던 높은 코는,
파운데이션과 컨실러를 이용한 적당한 명암조절로 더 선명하고 입체적인 하나의 조각같았고,

두툼하고 달콤하게 생긴 입술은,
붉은 색 립스틱? 틴트?로 가득 매워 누구나 한입하고 싶은 하나의 과일같았어.

적당한 볼륨과 여성스러운 라인을 살리기 위한 핏 좋은 진에 어깨가 드러난 섹시한 탑, 그리고 링 귀걸이에 아담한 키를 보완한 7cm 힐을 신었었어.



정말 눈부셨어... 라스베가스의 밤을 환하게 밝혀 줄 빛 같았다...

라스베가스의 밤은 낮보다 환하다.


라스베가스는 겜블과 화려한 쇼 그리고 클럽이 유명하다.
클럽에 가본 적도 없는 내가 클럽에 어울릴 만한 복장이 있을 리가 만무하지...
내 친구 또한 그러했다.

내 인생의 첫 클럽이 라스베가스 호텔클럽이라니.... ㄷㄷ
이건 온라인게임에서 시작할 때 주는 기본방어구와 단검만 가지고 만렙 사냥터에 입장하는 것과 다를 게 없었다.
순전히 옆에 있는 만렙힐러의 버프와 힐만 믿고 가는 것이었다.

"오빠... (덜덜)"
"응?(아무렇지 않은 듯 여유로움을 가득 담아)"
"클럽 가봤어?(먼가 기대에 찬 눈빛으로)"
"다..ㄷ ㅏㅇ연하지^^;;(필자는 거짓말을 하면 얼굴이 굳는다)"
"거. 짓. 말."

그래. 거짓말이고 뻥이고 구라다.
하지만 거짓말을 해서라도 걱정에 찬 그 눈빛으로 물어보는 채원이를 안심시키고 싶었다. 청바지에 티셔츠를 입고 온 주제에...


메인거리에서 조금 떨어진 우리호텔에는 없는 클럽.
5성급 호텔까지 걸어가면서 받는 뭇 남성들의 따가운 시선과 시기어린 질투는 좋으면서도 좋지 않았다.

저 멀리 비춰지는 5성급 호텔의 압도적인 위용과 환하게 반짝이는 불빛들은..
밤하늘 저 멀리 환하게 빛나는 이쁜 별들도 지구 가까이 다가오면 재앙이 되듯이.. 나에게는 하나의 재앙이었다.

그녀들의 입맛에 골라진, 아니 애봉이의 독단으로 골라진 5성급 호텔에서 클럽을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수트와 드레스로 한껏 꾸민 젊은 남녀들이 줄을 서 있는 장관이 자연스레 우리에게 손짓했다. 여기가 클럽이라고.
나에게는 만렙던전 그 이하도 그 이상도 아니었다.

한참 들떠있는 애봉이와 걱정스런 눈빛이 호기심가득한 눈빛으로 변한 채원이, 아무 생각없어 보이는 내 친구(이 녀석은 클럽 이후에 갈 카지노에 정신이 팔린 듯..)와 함께 입장만을 기다린 지 꽤 지나서야 우린 클럽입구를 볼 수 있었다.

"Hey~ Pretty. Show your ID, plz."

신분증 제시를 요구하는 거대한 외국인 형아 앞에서 애봉이는 자신있게 여권을 내밀며, 한껏 상기된 표정으로 거대한 외국인 형아에게 말을 걸었지.

"Do I look pretty? yougner than ma photo?"

난 보았다. 거대한 외국인 형아의 눈동자가 심하게 흔들리는 것을..
이 자식 보소.. 우리 애봉이가 어때서 -_- 오늘 완전 이쁘게 하고 나왔건만.
내가 그동안 애봉이를 본의 아니게 깍아내린 건 내 시점이 채원이한테 맞춰져 있어서 그랬을 뿐,
한껏 꾸민 애봉이는 꽤 봐줄만 했었다.

그렇게 애봉이와 채원이의 신분증 검사가 끝나고, 거대한 외국인 형아는 우리한테 신분증 제시를 요구하지 않았다.
다만 손짓으로 반대편을 가리키며,

"No suit, no entrance."

아... 어릴 때 키가 작아 타지 못했던 범퍼카가 생각나더라...
하긴.. 만렙던전에 이 꼴로 들어갔다간 스치는 바람에도 흑백화면을 보겠지....

뒤에서 낄낄거리는 외국남자들의 조롱섞인 웃음소리와 평소에 들리지도 않던 그들의 빠른 영어가 하나하나 머릿 속에 꽂힐 만큼 난감함과 괴로움의 집중도가 고조되었을 찰나,

"오빠, 우리 클럽 다음에 가자." 라며 내 손목을 잡고 클럽을 들어가기 위해 서 있던 줄에서 빠지는 채원이...
"그럼, 우리 이제 카지노 가는거야?" 라며 눈동자가 반짝이는 친구와 입이 오리만큼 나와버린 애봉이를 뒤로 한 채,
내 손목을 잡고 당당히 앞서 걸어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보며 지금까지 겪어보지 못했던 또 다른 심장박동을 느껴야만 했다.

그녀의 매력을 하나하나 알 때마다 좋아하지 않을 수가 없었고, 한편으로는 내 자신이 점점 초라해지더라..
내가 과연 그녀를 좋아할 자격이 있는 놈일까, 나는 어떤 매력이 있을까, 그녀는 나를 좋아해줄까..


그렇게 호텔로비를 나와 그녀가 나를 이끌고 간 곳은 호텔 앞 분수였다.
그 호텔의 분수는 워낙 세계적으로 유명해서 라스베가스를 방문하는 관광객들의 필수코스이며, 연인들의 사랑을 독차지 하는 곳이기도 했다. 음악과 함께 시작한 웅장하고 아름다운 분수쇼에 잠시 시선을 빼앗겨 주위를 둘러보니 애봉이와 친구는 온데간데 없고 채원이가 어린아이같은 표정으로 분수쇼를 보고 있더라..

그녀의 눈동자에 비친 작지만 더 아름다운 나만의 분수쇼를 바라보는 순간, 채원이가 혼잣말인지 아닌지 모를 듯한 말을 했다.

"사랑하는 사람이랑 보면 기분이 어떨까?"

여전히 채원이의 시선은 분수쇼를 향하고 있었고, 나는 고개를 돌려 분수쇼를 바라보며.. 나에게 대답했다.




'지금처럼 행복할 거 같다.'

강렬했던 라스베가스의 후유증은 아주 오래갔다.

스카이다이빙, 수영장에서 물놀이, 분수쇼 그리고 카지노.
그 날은 라스베가스여행의 하이라이트였다. 내 인생에서 몇 안 되는 감정의 화산이 대폭발이 일어난 날이기도 하고..

여행의 동반자는 4명이었지만, 느끼는 감정과 기억하는 순간은 모두 달랐다.
내 기억은 이러하였고,
애봉이가 기억하는 건 길거리에서 유혹하는 백인형아들의 휘파람소리였을테고,
내 친구가 기억하는 건.. 내친구에게도 이름 하나 지어줘야겠다. 내친구 전공이 부동산학과이다. 앞으로 동산이라고 불러야겠다... 동산이가 기억하는 건 1000$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채원이는...
예전에 물어본 적이 있다. 그때 라스베가스여행 어땠었냐고.. 채원이의 대답은.....

내 기억에서 그날은 내가 주인공이었지만, 동산이의 기억에서는 그녀석이 주인공이었다.
열심히 블랙잭을 연구하던 동산이가 내린 결론은 이거였다. 혼자 못하겠다. 이건 팀플레이야.
그랬다. 블랙잭은 한명의 딜러(뱅커)와 다수의 플레이어가 하는 게임이다. 플레이어가 뱅커를 죽이면 남은 플레이어는 자신의 패와 상관없이 자신의 배팅액만큼 칩을 얻게 된다. 그 외 카운팅, 물타기 등 다양한 전략이 존재하는 카드테이블게임인데 확실한 건 팀플레이가 유리하다는 거다.

결국 그녀석이 선택한 게임은 룰렛이었다. 라스베가스에 도착한 늦은 밤 투숙호텔 내 카지노에서 슬롯으로 가볍게 30$을 잃었던 그 녀석의 촉을 나는 믿을 수 밖에 없었다. 가끔 한국친구들끼리 돈내기 고스톱이나 섯다를 하면 용돈벌이를 할만큼 나름 훌륭한 게임실력을 할머니로부터 물려받은 나도 라스베가스 카지노의 압도적인 분위기에 동산이의 한마디는 꽤 믿음이 갔다.

동산이는 테이블게임 유경험자였고, 나를 포함한 나머지는 무지했다.
동산이로부터 간단히 룰렛의 룰을 설명듣고, 일단 나와 동산이부터 100$을 1$ 칩 100개로 바꾸고 In-player로 룰렛을 시작했다.
잠깐 룰렛에 대해서 설명하자면, 카지노마다 룰렛의 배당금이 조금씩 다르다. 어떤 곳은 0(제로)와 00(더블제로)가 있는 가 하면, 어떤 곳은 0(제로)만 있는 곳이 있다. 어떤 카지노는 딜러가 본인의 팁을 미리 빼고 배당을 해주는 곳이 있다. 내 기억에는 주로 동남아 쪽이 그랬다. 그런 면을 비교해보았을 때, 라스베가스 카지노는 플레이어들에게 아주 친절하고 팁도 미리 빼지 않는 아주 젠틀한 카지노다.

룰렛에 앉은 지 한참이 지났을까..
동산이가 하루종일 카지노만 고민했던 시간에 대한 보상치고는 과분한 액수의 칩이 그녀석 앞에 쌓여있었고,
그 녀석은 애봉이와 채원이에게 100$ 칩을 하나씩 주며 여자애들도 룰렛에 참가하기 시작했다.
그 전까지 애봉이와 동산이, 나와 채원이가 한팀이 되어 칩을 넓게 깔고 럭키넘버에 칩을 집중하는 식의 안정적인 배팅을 하고 있었다. 난 채원이의 생일을 럭키넘버로 하였고, 동산이는 그녀석의 고추길이를... 럭키넘버로 했었다.

다행히도 로우가 자주 터져주는 덕분에 동산이는 단시간에 꽤 많은 칩을 보유한 것이었다.
동산이가 1000$ 쯤 모았을 때 나도 400$ 정도 있었고, 뒤늦게 룰렛에 들어온 여자애들은 각각 50$ 씩을 손에 쥐게 되었다.

동산이는 빌려줬던 100$도 쿨하게 가지라고 했고, 애봉이는 "오빠 고마워~ 잘쓸게용 ㅎㅎ" 했지만, 채원이는 굳이 50$만 챙기고 100$을 동산이에게 돌려주더라. 덕분에 애봉이도 울며 겨자먹기로 100$을 마지못해 토해냈고, 멋있는 동산이는 그날 기분좋게 한턱 쐈지. 4명의 라스베가스 여행 총비용의 반이상을 회수할 수 있었던 기분좋은 날이었지.



그렇게 라스베가스 여행이 끝나고 돌아왔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4명은 자주 뭉쳤었다.
동산이는 특유의 천연덕스러움과 편안함으로 한국친구들이 많았었고, 나는 적당한 똘끼와 말빨로 외국친구들이 많았었어.
의외로 내성적이고 소극적이던 애봉이와 채원이는 우릴 따라다니며 낯선 이 도시에서 꽤 편안함을 느꼈던 거 같았어.

여행이 끝나고 2주일 정도 지났을 무렵, 아직 라스베가스의 여운이 남은 그때쯤..
애봉이가 다른 도시로 옮겨야 될 때가 왔지. 영어를 아주 잘했던 애봉이는 이 도시에서 3개월, 그리고 다른 도시에서의 3개월을 계획하고 왔었더라. 이미 다른 도시에서의 학원과 숙박을 한국에서 결제하고 온 터라 달리 방법이 없었지.

그리고 동산이는 애봉이가 다른 도시로 이동한 지 정확히 1주일 후에 한국으로 돌아갔어. 영어랑 자기는 맞지 않다는 것을 깨닫는 소중한 시간이었다고 하며 한국에 가서도 꾸준히 연락하자는 말을 남기고 갔었지.


그 둘 덕분에 나와 채원이는 더 가까워질 수 있었어. 정확히 말하자면, 나랑 채원이 뿐이었어. 나는 이미 어학연수 과정이 종료된 시점이었고, 채원이는 유일하게 알고 지냈던 친구가 나뿐이었지. 나는 어학연수 과정이 끝나고 2달 정도여행갈 목적으로 학원이 종료된 시점에서 2달 후에 한국에 돌아가야 했지.

나는 시간이 없었어. 아니.. 시간이 많이 남아 있었어도 서두르지 않으면 안 됐어. 어느샌가 내 온몸 구석구석 숨겨놓고 쌓아왔던 그녀에 대한 감정이 언제 어떤 상황에서 갑자기 나올까봐 걱정이 됐었어.


그러다 결국 터져버렸지.....

단둘이 내 원룸에서 같이 저녁을 해먹고 영화 한편을 봤었어.
[태양의 노래(원제: Midnight sun, 2006)]라는 일본영화인데, 잔잔하며 감동적이고 슬프지만 마지막엔 웃을 수 있는 그런 이야기였지. 그리고 내 mp3 리스트에 꽤 오래 머물렀던 만큼 OST가 좋았어.

영화가 다 끝나고 엔딩크레딧이 올라가면서 알 수 없는 감정에 사로잡혀 있던 나를 겨우 진정시키고 채원이를 쳐다봤다...
그런데 그 큰 눈망울과 긴 속눈썹이 눈물로 범벅이 되어 있었고, 더 이상 머금고 없을 정도로 가득했던 눈물들은 뽀얀 뺨을 타고
주르륵 흐르더라..

나도 모르게, 설마 알았더라도.. 나는 그녀의 눈에서 떨어지는 눈물들을 손등으로 닦아주다가 엄지손가락으로 화끈거리는 그녀의 눈 주변의 라인을 따라 눈물들을 정리해줬지.. 사귀기 전에는 절대 스킨쉽을 하지 않는다는 소신과 신념이 있었고, 단 한번도 어기지 않았던 나인데... 왜 그랬는지.. 지금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아직도 내가 이해가 안 되는 건 그 다음이었어.


내 입술은 눈물로 시야가 흐릿해진 그녀의 눈을 향했고, 채원이는 파르르 떨던 속눈썹을 이내 내리며 눈을 감았지.
입술과 다른 느낌, 닫힌 눈꺼풀 아래에서 흔들리는 그녀의 눈동자가 느껴졌고.. 찰나보다 짧지만 찬란했던 그 순간이 그날의 전부를 대변했다....


그리고..
평소 내가 좋아하던 류시화 시인의 '속눈썹'을 빌려와 그녀에게 말했어.

"너의 긴 속눈썹이 되고 싶어. 그 눈으로 너와 함께 세상을 바라보고 싶어..
 네가 눈물 흘릴 때 가장 먼저 젖고 그리움으로 한숨 지을 때 그 그리움으로 떨고 싶어.
 언제나 너와 함께 아침을 열고 밤을 닫고 싶어.. 삶에 지쳤을....."





갑작스런 그녀의 포옹에 내 고백은 강제진압되었어...


그녀의 포옹으로 속으로 쾌재를 불렀던 나에게 던진 그녀의 말은 좀 많이 충격이었다...

"오빠, 너무 고마워. 오빤 진짜 좋은 사람인 거 같아.
 오빠는 내가 왜 미국에 왔는지 궁금하지 않았어? 의대생은 굳이 어학연수 갈 필요 없는데도 말이야.."
"아.. 나도 사실 그게 궁금하긴 했는데, 공부하다가 쉬고 싶어서 온 거 아니야?"
"쉬고 싶어서 온 거 맞아.. 그런데 공부하다가 스트레스 받아서 그런 게 아니고... 사실..."

말 끝을 흘리는 채원이를 보니, 왠지 불안해지더라... 그리고..

"나 좋아하는 사람이 있어요. 있었다고 해야하나..
 같은 학교 동기오빠인데, 키도 크고 멋있고 남자답고 드럼도 잘 쳐요. 그래서 먼저 좋아해서 고백해서 2년 정도 사겼는데..
 그 오빠가 가장 친한 동기언니랑 바람폈어요..."
".............."

무슨 말을 해야 될 지 몰랐어... 그냥 안아줬어......
내 손길이 그녀의 상처받은 마음에 닿길 간절히 바라면서 그녀의 등을 토닥여줬어...
한참동안을 아까 본 눈물과는 다른 슬픔에 떨고 있는 채원이를 안아주며 그녀를 달랬어..

조금 진정이 되었을까...

"오빠, 나도 오빠 좋아해. 오빠가 생각하는 것보다 많이.. ^^"

굳이 웃으며 말해주는 채원이가 고마웠어. 나는 말보다 상대방의 표정과 행동으로 진심을 확인하는 스타일이거든...

"그런데 사귀는 건 힘들 거 같애... 너무 힘들어서 당분간 연애는 안 하고 싶어..
 오빠랑 함께 했던 시간동안 그 사람이 너무 많이 생각났어.. 전혀 다른 사람인데도......"

내가 언제 말문이 막힌 적이 있었던가.... 해결해주지 못한 사람들의 하소연이 있었던가....
머릿 속에 그동안 주변인들의 감동과 만족을 일으켜냈던 수많은 위로의 멘트들이 스쳐지나갔지만..

결국 내 입에서 나왔던 말은 "많이.. 힘들었겠다. 내가 널 더 힘들게 하지 않았을까 걱정이 되네.." 였다.
아직 그사람을 잊지 못했음을 그녀가 말하지 않았어도 알 수 있었다..
그녀가 굳이 말하지 않아도 다른 모든 것들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으니깐..

"집에 가자. 데려다줄께."
"응.."

그남자 생각에 잠겨버린 그녀를 더 이상 마주할 자신이 없었어..
그렇게 채원이를 집에 데려다 주고 손을 흔들며 나를 바라보는 채원이와 그런 채원이를 바라보는 나..

평소와 다른 미소, 표정, 분위기를 서로 알았을까... 평소처럼 "잘자고 내일보자"라는 말이 쉽게 안 나오더라..

"오빠~ 잘 가요."
"엉~ 너도 잘자~"

그렇게 나를 보내며 마지막을 했던 그녀의 말과 얼굴은 너무나 복잡해보였지....
흡사 놀이공원에 엄마따라 간 아이가 "잠시 어디갔다올께"라는 엄마의 말에 굉장히 불안해하는 것과 비슷해 보였어....


복잡미묘한 감정의 실타래만 잔뜩 가지고 집에 돌아오면서 맥주를 사왔지..
그날 밤은 머릿 속의 생각들이 내 귀에 들릴 정도로 참으로 조용했어......
혹시나 하는 마음에 핸드폰도 들쳐보고, 그녀가 했던 말을 계속 곱씹으며 빈틈을 찾아보려고 했지..

그러다 지쳐 맥주를 마시면서 밤하늘에 뜬 달만 하염없이 쳐다봤다..
사온 맥주를 다 마시고, 더 이상 필 담배도 없어지자... 마음이 정리되더라..

후회와 미련이 안 남을 때까지 그냥 좋아하기로..
부담주지 않고, 그냥 좋아하는 마음 간직한 채로 남자친구는 못 되더라도 그녀의 마음 속에 있는 나쁜 녀석이라도 없애줘야지..



마침 아침을 알리기에는 조금 이른 새소리가 들렸고..
조금씩 동이 트고, 누구보다 빨리 아침햇살을 만끽했지. 새벽내내 답답했던 마음을 씻어주는 햇빛샤워였어.
아주 개운하고 경쾌했어.


그녀가 일어날 시간이 되었을 때쯤, 익숙하게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다.

"잘잤어? 학원 가야지~ 채원아~"
"오빠..."

그녀는 아침잠이 많은 편이야. 의대를 입학하기 위해 중학교 때부터 밤늦게까지 공부를 했었고, 의대입학 후에도 쉴새없는 수업에 항상 잠이 부족했지. 미국에 어학연수를 오게 되면서 부족했던 잠을 실컷 자는 게 그녀의 첫번째 의무이며, 권리였지.

전화기 건너 그녀의 목소리는 간밤에 한숨도 못 자고 울었는지 굉장히 건조했고, 힘이 없어보였어.
학원수업을 땡땡이치길 권했지만, 그녀는 절대 학원을 빼먹지 않는 모범적인 학생이었기에, 화장기없는 수수한 얼굴로 학원을 가는 걸로 합의를 봤지. 그녀가 절대 꺾지 않는 고집이 몇 있었지. 자신만의 공부방식과 샤워버릇?

채원이의 학원수업이 끝날 때쯤, 학원 앞에 가서 그녀를 기다렸어.
기분좋은 표정으로 평소처럼 밥먹으러 가자고 말했지. 오히려 좋아했던 마음을 숨겼던 전보다 훨씬 편하고 자연스러웠어.
그녀가 받아주든 아니든.. 그동안 숨겨왔던 내 표정을 더 이상 감출 필요가 없었으니깐...

그런 내 모습을 보고 채원이도 조금씩 어색함을 걷어내더라.
다시 예전의 좋은 친구 사이로 돌아가는 건 반나절도 안 걸렸어.
오히려 채원이도 나를 좋아하는 거 같은 느낌을 받았지...

며칠이 지났을까... 그날도 둘이 자주 가는 단골스시집에서 가볍게 저녁을 먹고 내 원룸에서 영화 한편을 보기로 했지.
약간의 스킨쉽이 있었던 날 이후로 별 다른 스킨쉽은 없었어. 다만, 같이 길을 걷고 있을 때 우리 사이의 공간이 조금 더 좁아지긴 했지만... 그렇게 내 원룸으로 가고 있었고, 딱히 말은 없어도 편할 만큼 우린 친밀해져 있었어...

드문드문 있는 가로등 불빛을 보며 기분좋은 밤공기를 느끼고 있는데..
채원이가 갑자기 팔짱을 끼더라.

그 순간, 방심하다 카운터펀치를 맞은 권투선수처럼 내 마음은 그로기 상태가 되버렸지...
고개를 돌려 그녀를 내려다보니, 고개를 푹 숙이고 있더라... 진짜 미치겠더라. 너무너무 귀여워서 정신을 잃을 것만 같았어.
개인적으로 애교있는 여자를 굉장히 싫어해 내가.. 하지만 귀여운 여자를 완전 좋아하지. 내가 생각하는 귀여움과 애교 차이는 이렇다. 애교는 인위적인 것이고, 귀여움은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모든 사람이 애교는 없지만, 귀여움은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 도도하고 시크하며 차가운 사람도 마음을 연 상대 앞에서는 귀여운 행동이 자연스럽게 나오더라...

아무튼..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그녀의 정수리를 손가락으로 꾹꾹 눌렀어. 너무 귀여웠거든......

"채원아.. 오늘부터 우리 사귀는 거야? ㅋㅋ"

내 물음에 그녀는 고개를 여전히 숙인 채 고개만 연신 끄덕끄덕거렸지. 하아... 이때도 미쳐버리는 줄......
쑥스러워 하는 그녀의 모습을 보니 오히려 내가 여유가 생기더라..



내 팔에 매달린 채 질질 끌려가다시피 한 그녀는 내 원룸에 갈 때까지 날 못 쳐다보더라...
아직 보지 못한 그녀의 가슴이 머릿 속으로 그려질 정도로 나한테 매달려 있었어. 결국 나는 집까지 세 다리로 걸어갔지....



갑작스런 감정의 노동을 한 결과일까.. 채원이는 영화를 보다가 나한테 살짝 기댄 채 잠이 들어버렸어.
잠든 그녀를 보면서 그녀와 함께 보낼 앞으로의 수많은 순간들을 생각해보았지.
오늘은 우리가 가장 많이 챙기는 기념이 될 것이며, 앞으로도 수없이 회상되겠지....
몇년, 몇십년이 지나더라도 절대 잊을 수 없는 기억을 만들어야 겠다고 생각이 들더라..

잠시 기댄 그녀를 조금 편하게 눕혀주고 원룸을 나왔어.
내 머릿 속은 바쁘게 돌아갔고, 내 발걸음은 그보다 더 바빴지.

미국이란 나라는 무슨 가게든지 일찍 문을 닫아. 24시간 편의점? 정말 대도시의 유흥가가 아니면 생각도 할 수 없지.
꽤 큰 도시임에도 불구하고 문이 열린 꽃집이 없는거야..... 그렇게 한참을 헤매다가 이벤트용 작은 양초 100개를 사고 그녀가 좋아하는 단골 음식가게에 갔지. 가게사장님은 한국이민자이셨어. 평소에 우리를 보면서 귀엽다고 잘 어울린다며 항상 나한테 잘해보라고 응원을 해주셨던 분이지.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아저씨한테 꽃을 사야 되는데 어디로 가면 되냐고 물었어. 아저씨 눈빛이 반짝반짝이시더니, 지금 이 시간에는 열린 곳이 없다고 살짝 외곽에 있는 코리아타운으로 가야된다고 했지.

아... 결국 꽃은 못 사겠구나 생각했는데 아저씨가.. 꽃을 사올테니깐 나보고 먼저 원룸가서 이벤트 준비하고 있으라고 하시더라... 나보다 더 신이 나서 자동차에 시동을 거시는 아저씨를 보면서 '신은 이렇게 생겼을까...'라는 고마움이 생기더라..

아저씨를 믿고 재빨리 원룸에 돌아가서 그녀가 깨지 않게 양초와 음식을 준비한 다음 편지를 썼어.
지금 보면 횡설수설 그 자체지만.. 그래서 더 진심같았다고 하는 그녀의 말처럼.... 마음 속에 있는 진심만 담아 편지를 썼지..

그렇게 그녀가 누워있는 침대 주변을 제외한 내 원룸은 양초로 가득했고, 그녀의 머리 맡에는 편지를 놔둔 채 원룸에서 나왔어.
그리고 꽃을 받으러 가면서 그녀를 깨우기 위해 전화를 걸었지. 그녀에게 충분히 편지를 읽고 감동을 줄 시간을 주고 아저씨가 사다주신 꽃을 들고 정식으로 고백을 할 참이었어.


그런데 이상하게 전화를 아무리 해도 받질 않더라고.....
난 속으로 걱정이 너무 많이 됐지. 혹시 양초 때문에 화재사고가 난건가.. 아님 산소부족으로 질식... 아....
내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위험한 상황만이 자꾸 떠올랐고, 황급히 꽃을 받아 뛰어갔어. 살짝 눈물도 났던 거 같애.....


황급히 집에 들어가서 확인해보니... 채원이는 여전히 깊은 잠에 빠져있었고, 평소에 깨워도 잘 일어나지 못하는 그녀 모습이 생각나더라. 걱정했던 마음을 쓸어내리며 든 생각은.. 어떻게 채원이를 깨우는 가였어....

전화벨이 울려도 일어나지 않는 그녀를 깨울 방법은 흔들어 깨우는 거 밖에 없더라.. 양초는 조금씩 타서 흘러내리고 있었고, 더 이상 지체할 시간이 없었지.




현관문을 열어놓고, 신발과 꽃다발은 한손에 든 채로 그녀의 어깨를 살짝 흔들고 냅다 밖으로 도망나왔지.






댓글 8

상병 갓동크

2015.02.18 13:06:07

왜 쓰다 말았냐? 재밌는데

훈련병 마르케티

2015.02.18 13:08:44

가서 베팅이나 해라 ㅡ ㅡ

이등병 사달변태

2015.02.18 16:41:02

결국 먹었냐 궁금하잖아

이등병 원할머니첫자

2015.02.18 21:39:44

하  이시키는 머가맨날 이렇게길어   

상병 묵어보자

2015.02.18 21:54:22

다 읽었는데..  2편 빨리올리주세요
글솜씨가 보통이 아닌듯...

상병 걷다가쿵해쪄

2015.02.18 23:57:34

아니그래서 핸냐고 못핸냐고 ㅡㅡ

이등병 샬삼

2015.02.19 04:49:57

존나기네 괜히눌러가지고 시발

대위 단소살인마

멋있게 늙어 가자.

2015.02.19 11:08:45

보기 싫으면 보지마 이 ㅄ들아 !! 니들 보라고 올린거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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