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 이글스가 에스밀 로저스(31)의 대체 외국인 투수로 에릭 서캠프(Eric Surkamp)를 영입한다. 미국 야구계의 한 인사는 “서캠프와 한화 계약 협상이 거의 끝난 것으로 안다”며 “메이저리그 사무국의 행정적 절차가 끝나는 데로 계약 발표가 날 것”이라고 전했다.
2011년 메이저리그에 데뷔한 서캠프는 올 시즌에도 빅리그에서 9경기에 선발로 나선 ‘현역 메이저리거’ 투수다. 올 시즌 외국인 투수들의 부상과 부진에 시달리는 한화 마운드에 서캠프는 과연구세주가 될 수 있을까.
에릭 서캠프는 누구인가
한화의 마지막 구세주, 에릭 서캠프. (사진=gettyimages / 이매진스)빅리그 데뷔 초창기 서캠프의 투구 동작. (사진=gettyimages / 이매진스)
풀네임 에릭 마이클 서캠프는 1987년 미국 신시내티 태생으로 아직 20대 나이의 젊은 투수다. 키 198cm에 몸무게 100kg의 ‘환상적인’ 체격 조건을 갖췄고, 게다가 좌완이다. 노스 캐롤라이나 주립대를 거쳐 2008년 신인 드래프트 6라운드에서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지명을 받고 프로 선수 경력을 시작했다.
서캠프는 입단하자마자 샌프란시스코 팜에서 두각을 드러냈다. 2009년 싱글 A에서 23경기에 등판해 11승 5패 평균자책 3.30에 9이닝당 탈삼진 11.61개를 잡아내는 역투를 펼쳤고, 2010년과 2011년에도 상위 싱글 A와 더블 A에서 차례차례 계단을 밟으며 주가를 높였다. 특히 2011년 더블 A에서는 23경기에 등판해 10승 4패 평균자책 2.02에 9이닝당 탈삼진 10.43개를 기록하며 각종 타이틀에서 1위에 이름을 올렸다. 이에 샌프란시스코 구단은 발목 부상으로 이탈한 조나단 산체스를 대신해 서캠프를 빅리그 마운드로 호출했다.
시작은 창대했다. 서캠프는 빅리그 데뷔전에서 휴스턴을 상대로 6이닝 1실점 호투를 펼쳤다. 두번째 등판에서는 샌디에이고 파드리스를 상대로 5이닝 3실점 첫 승리를 거뒀고, 세번째 등판에서도 같은 팀을상대로 5.2이닝 3실점 승리투수가 됐다. 하지만 이후 세 차례 등판에서는 5이닝을 버티지 못했다. 특히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를 상대로는 0.2이닝 동안 3피안타 4볼넷 6실점으로 완전히 무너졌다. 시즌 최종 성적은 2승 2패에 5.74의 평균자책. 가능성과 한계를 동시에 보여준 데뷔 시즌이었다.
하필이면 이때 '부상 악령'이 서캠프를 덮쳤다. 서캠프는 2012시즌을 굴근 부상으로 부상자 명단에서 맞이했다. 7월에는 팔꿈치 상태가 더욱 악화되며 토미존 수술대에 올랐다. 긴 재활을 마치고 2013년 마운드에 돌아왔지만, 이전만큼 예리한 투구를 보여주진 못했다. 빅리그 복귀전에서 서캠프는 신시내티 상대로 2.2이닝 동안 7점을 내주며 용해됐다.
이후 시카고 화이트삭스와 LA 다저스를 거치며 빅리그 정착을 시도했지만, 좀처럼 마이너리그에서의 좋은 피칭을 빅리그까지 이어가지 못했다. 올해도 오클랜드 소속으로 9경기 선발로 등판했지만 0승 5패 평균자책 6.98에 그쳤다. 탈삼진/볼넷 비율도 거의 1:1에 가까운 나쁜 수치를 기록했다. 결국 오클랜드는 6월말 서캠프를 지명할당했다. 서캠프는 웨이버 클레임으로 텍사스 레인저스에 합류한 뒤, 최근까지 40인 로스터에 이름을 올려둔 상태였다.
다양한 구종과 커맨드가 장점
체격만 보면 지옥에서 올라온 듯한 강속구를 던질 것 같지만, 사실 서캠프는 메이저리그 기준으로 보면 강속구 투수와는 거리가 멀다. 프로 입문 초기부터 평균 구속 시속 141 km대의 포심패스트볼을 던졌고, 이는 토미존 수술에서 돌아온 이후에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차이가 있다면 수술 전 오버핸드에 가까웠던 팔 각도가 지금은 스리쿼터 형태로 다소 내려왔다는 점 정도.
‘평범한’ 속구 구속에도 서캠프가 마이너리그 타자들을 무더기 삼진으로 잡아낸 비결은 다양한 변화구와 커맨드 능력. 서캠프는 포심 패스트볼과 거의 구속이 비슷한 투심 패스트볼을 던지는데, 볼끝의 가라앉는 움직임이 뛰어나 많은 땅볼 아웃을 유도하는 구종이다. 특히 유리한 카운트에서는 결정구로 커브와 체인지업을 즐겨 구사한다. 서캠프의 커브-체인지업은 샌프란시스코 시절 팀 마이너리그 내에서 최고의 구종으로 평가받기도 했다. 토미존 수술에서 돌아온 뒤에는 시속 140km에 달하는 커터를 투구수 절약 용도로 자주 던지고 있다.
마이너리그에서 서캠프는 타자 몸쪽 공을 과감하게 구사할 줄 아는 투수로 평가받았다. 투심과 커터를 좌ㆍ우타자 몸쪽에 붙인 뒤 커브와 체인지업을 결정구로 던지는 패턴으로 서캠프는 마이너 통산 9이닝당 탈삼진 9.7개를 기록했다. 9이닝당 볼넷도 마이너리그에서는 2.5개로 수준급이다. 서캠프는 샌프란시스코 시절 팀 마이너리그 조직에서 최고의 컨트롤을 자랑하는 투수로 평가받은 바 있다.
그러나 이런 장점이 빅리그 무대에서는 좀처럼 빛을 발하지 못했다. 메이저리그 기준에서 서캠프는 타자를 압도하는 유형의 투수라고 보긴 어렵다. 마이너에서는 통하던 서캠프의 피칭 스타일이 빅리그 타자들에게는 좀처럼 통하지 않았다. 스트라이크존을 향해 꽂아넣는 공은 대부분 장타로 연결됐고, 존 외곽으로 유인하는 공은 볼이 되면서 피홈런 비율과 볼넷 비율이 폭증했다. 팬그래프 기준 서캠프가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많이 던진 코스는 뜻밖에도 스트라이크존 한복판(9.2%)과 가운데 낮은 코스(8.8%)였다. 특유의 커맨드 능력을 발휘하지 못한 셈이다.
KBO리그에서의 전망은?
서캠프는 올해 오클랜드에서 9경기 0승 5패를 기록했다. (사진=gettyimages / 이매진스)
비록 빅리그 레벨에서 쓴 맛을 보긴 했지만, 에릭 서캠프는 KBO리그에서 성공을 거둘 수 있는 여러 조건을 갖고 있는 투수다. 한국 나이 29살로 아직 젊은 나이에 좋은 신체조건을 갖췄고, 다양한 구종과 평균 이상의 제구력까지 겸비했다. 대부분의 구종으로 스트라이크를 잡을 수 있는 서캠프의 제구력은, 초구와 불리한 카운트에도 변화구를 자주 요구하는 한화의 볼배합에 잘 어울린다. 무엇보다 커터와 투심 등 변형 패스트볼 구사 능력이 좋다는 점에서 국내 타자들에게는 굉장히 경쟁력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과거 벤자민 주키치(전 LG)처럼 크로스 스탠스로 던지는 독특한 볼 각도도 타자들에게 생소할 수 있다.
시속 140km 초반대 ‘평범한’ 구속도 큰 약점으로 볼 문제는 아니다. 그간 KBO리그에서 성공을 거둔 외국인 좌완투수들 중엔 서캠프처럼 큰 키에 시속 140km 초반대 공을 던지는 제구력 좋은 투수가 많았다. 넥센 히어로즈에서 대성공을 거둔 앤디 밴헤켄도 KBO리그에서 패스트볼 평균시속은 141km 정도였다. 올 시즌 현재 리그 좌완투수들의 평균 패스트볼 구속도 시속 140km로 서캠프의 평균시속(141km)보다 낮은 수준이다.
KBO리그의 낯선 환경과 스트라이크존에 빠르게 적응할 수 있다면, 서캠프는 충분히 많은 이닝을 소화하는 좋은 선발투수로 활약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투수다. 다만 한 가지 변수가 있다면, 한화 코칭스태프의 투수 기용 방식이다.
4일 쉬고 던진 뒤 다시 4일 쉬고 던지는 힘든 등판 일정, 5회 이전이라도 조금만 흔들리면 바로 마운드에서 내리는 퀵 후크, 시즌 중에 투수의 투구폼을 수정하는 다소 위험한 지도 방식이 계속 이어진다면 서캠프가 아니라 '동캠프' '북캠프'가 와도 좋은 피칭을 하기 어렵다. 새 외국인 투수 서캠프의 성공 여부는, 아이러니하게도 서캠프 본인보다는 한화 코칭스태프의 투수 운용에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