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교 신부님께 '진화론 vs 창조론'을 듣다
교리 수업 마지막 날.
“마지막 질문 없습니까?”
신부님이 물었다. 청중은 약 스무 명. 내가 질문했다.
“진화론과 창조론의 논쟁을.....”
질문이 끝나기도 전에 신부님은 소매를 걷어 올리며 보드 앞으로 나간다. 마치 그 질문을 기다렸다는 듯이. ‘진화론’이라는 단어만 듣고도 자동반사적으로 움직인다. 이미 그 질문이 무엇인지 알고 있으며, 그에 대한 답변을 이미 준비하고 있었으니 기대하라는 표정이다. 자신감을 보이며 흥분을 감추지 않는다. 원래 좀 들떠 있는 성격의 신부님이었지만, 지금은 마치 순진한 노인들을 앞에 앉혀 놓은, 물 만난 약장수처럼 보인다.
“지금 동물원에 있는 원숭이가 백만 년 후에 인간이 돼 있을까요?”
신부님이 제일 먼저 던진 이 말에 청중 모두가 웃는다. 물론 나는 안 웃었다. 진화 생물학은 지금의 어떤 종도 나중에 인간이 될 수 있을 거라고 말하지 않는다. 저런 질문을 통해 진화론을 웃음거리로 만드는 것은 진화론에 대한 무지에서 기인했거나 청중이 무지하다는 것을 이용한 치사한 말장난이거나 둘 중 하나다. 신부님은 후자였다.
“물론 이 질문은 틀린 질문이긴 합니다만......”
하면서 말꼬리를 흘려버린다. 청중을 웃게(진화론을 비웃게) 만들었으므로 일단 성공적인 출발이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천주교에서 사제는 개인적 의견, 특히 ‘진화론 vs 창조론’처럼 종교적 정체성을 다루는 테마에 있어서만큼은 개인적 의견을 드러낼 수 없다는 게 원칙이다. 천주교의 시스템이 그렇다. 세계에 퍼져 있는 사제들의 생각과 말이 곧 바티칸 교황청의 생각과 말이다. 특히 종교적으로 중요한 주제에 대해서는 이미 바티칸을 중심으로 전 세계의 사제들에게 일률적 레퍼토리가 대본처럼 전해져 있다. 자판기에 동전을 넣고 버튼을 누르면 자동적으로 커피가 나오듯이, 가톨릭 사제에게 ‘진화론’을 물어보면 이미 준비되었던 레퍼토리가 쏟아지는 것을 볼 수 있다.
신부님은(바티칸은) 우선, 지구의 연대에 관해서는 현대 과학적 결론에 동의한다. 신부님은 45억 년이라는 지구 연대와, 최초 생명이 있기까지 10억 년 정도의 공백이 있었다는 사실까지 언급한다. 이는 상당히 고무적인 일인데, 개신교의 교리가 지구 일만 년 설을 주장하는 것과는 근본적으로 차이가 있다. 역시 천주교가 개신교보다 과학 앞에서는 유연하다. 다만 천주교는 그 45억 년의 지구 역사가 하느님의 ‘의도’ 아래서 진행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니까, 진화라는 생물학적 현상은 인정하되 그것 역시 하느님이 정해 놓은 방향으로 진행된다는 말이다. 당연히 이런 생각은 비과학적이다. 과학적으로, 진화 원리나 지구 존재함에 ‘목적성’이란 없다. 가톨릭 교리는 ‘목적론적 사고’
라는 오류를 저지르고 있는 것이다.
어쨌든 ‘진화’라는 현상이 명백한 사실임을 인정하는 가톨릭의 태도는 보기가 좋다. 바티칸 내부에 교황 산하 학술적 과학부가 있다는데, 역시 오랜 역사 동안 이어져 온 종교니 만큼 현실적이며 타협적인 모습을 보이는 것이다. 신부님은 앞으로 1억 년 후에도 인류가 남아 있다면 지금의 모습과는 다른 모습으로 진화되어 있을 거라는 말도 했다. 기대 이상으로(?)과학적이다.
그러나 역시 종교는 종교다. 신앙은 불확실한 정보와 결합되어야 한다. 명백함과 논리적 완성은 신앙과 거리가 멀다. 신앙은 사람들을 애매모호한(흐리멍덩한) 상태로 만들었을 때 제 모습을 갖추며 굳건해진다. 진화라는 생물학적 사실을 인정하는듯하던 신부가 갑자기 ‘미싱링크’ 얘기를 꺼내는 이유가 그것이다. ‘미싱링크’ 는 오늘날 진화론을 거부하는 삼류 논리로서 가장 애용되는 레퍼토리다.
진화가 사실이라면, 진화의 과정이 화석 자료로 증명되어야 한다. 인간이 원숭이에서 진화했다면, 원숭이의 해골이 인간의 해골처럼 변화하는 과정 - 그 단계 단계들을 화석으로 볼 수 있어야 한다. 창조론자들은 화석 증거들에는 진화의 이런 ‘중간 단계’가 빠져 있으며, 그 화석상의 잃어버린 연결고리를 가리켜 ‘missing link(미싱 링크)라 하며 진화론을 공격한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가 인간의 조상이라면, 오스트랄로피테쿠스와 인간 사이에 중간 화석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호모 하빌리스 화석을 중간 화석으로 제시하면, 다시 또 호모 하빌리스와 인간 사이에 중간 화석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크로마뇽인을 화석 증거로 제시하면, 다시 또 크로마뇽인과 인간 사이에 있는 중간 화석도 필요해진다. 이렇게 끝이 없다. 창조론을 믿는 사람들은 끝없는 말장난으로 과학자들을 괴롭힐 것이다.
리처드 도킨스는 <지상최대의 쇼>에서 그 일례를 보여줬는데, 오스트랄로피테쿠스와 현생 인류 사이의 중간 단계 화석은 이미 충분히 발견 되어서 박물관에 가보면 전시되어 있는데도 창조론자들은 그런 박물관에는 전혀 안 가보는지, 혹은 가더라도 진화 관련 자료 앞에서는 일시적 장님이 되는지.... 전혀 진화를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고 한숨을 쉰다.
신앙의 힘이란, 박물관에서 화석 자료들을 앞에 두고서도 눈을 감고 계속 ‘미싱 링크’만 주절거리게 만든다.
결국 신부님의 말(가톨릭의 말)은 이랬다.
“지구의 45억 년 역사는 하느님의 계획대로 진행되었다. 하느님의 계획대로 인간은 인간의 모습으로 진화하였다. 그런데 진화론이 과연 모순 없는 명백한 진리인지는 확실치 않다. 현재 우리 가톨릭의 입장은 진화론 반, 창조론 반, 이렇게 반반씩 인정하자는 것이다.”
나는 무슨 소린지 도무지 모르겠다. 진화론과 창조론은 절대 반반씩 진리를 공유할 수 없다. 솔로몬 앞에 선 어머니가 자기 아이를 절반씩 나눠서 공유할 수 없었듯이, 과학적 진리는 절반의 진리는 인정하지 않는다.
더하기 : ‘진화론 vs 창조론’에 대해 천주교의 대답을 들었는데, 그렇다면 개신교의 목사나 선교사들은 어떤 대답을 할까? 알고 싶지도 않다. 매우 개인적인 나의 입장이자 고질적인, 그러나 고치고 싶지 않은 선입견이디고 한데, 천주교와는 달리 개신교적 태도와는 대화 자체가 전혀 불가하다. 개신교에 깊이 몸담은 사람과 진지하거나 학술적인 대화를 나누는 것은 출구 없는 미로에서 헤매는 것과 같다.
-이런 개탄할 만한 편견은 나의 경험과 독서(개신교 교리를 설파하는 책이나 잡지들, 개신교 골수분자들과의 대화)를 통해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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