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유빈 중국 심장에서 기적의 역전 드라마 쓰다 한국 여자탁구 최초 WTT 그랜드 스매시 4강 진출
신유빈(21, 대한항공)이 한국 여자탁구 역사의 한 페이지를 새롭게 장식했다.
2025 WTT(월드테이블테니스) 중국 스매시에서 세계 정상급 랭커를 연이어 격파하며 한국 여자 선수로는 최초로 그랜드 스매시 단식 준결승 무대를 밟았다.
세계 랭킹 17위인 신유빈은 3일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대회 여자 단식 8강에서 주천희(35위)에 극적인 4-2(14-16 7-11 11-8 11-9 11-9 11-7) 역전승을 따냈다.
이번 대회에서 주천희는 일본의 이토 미마(세계 8위) 중국의 스쉰야오(12위)를 차례로 꺾어 세계 탁구계를 놀라게 했다.
다크호스란 표현조차 부족할 만큼 폭풍 같은 '테이블 반란'을 이어왔다.▲ 연합뉴스
경기 초반 분위기는 철저히 주천희 것이었다.
첫 게임에서 듀스 접전을 이어간 끝에 16-14로 따냈고 이어진 2게임도 11-7로 가져갔다.
스코어 0-2. 신유빈이 벼랑 끝에 내몰렸다.
그러나 위기 앞에서 '삐약이'는 침착했다. 3게임 들어 회전량이 많은 '지저분한' 서브와 반박자 빠른 공격을 앞세워 전세를 뒤집기 시작했다.
8-8 접전 상황에서 3연속 득점으로 3게임을 따내 첫 반격에 성공했다.
흐름은 여기서 완전히 바뀌었다. 4게임서도 초반부터 리드를 잡아 10-5까지 앞서 나갔다.
막판 주천희 맹추격으로 10-9까지 쫓겼지만 마지막 한 점을 추가, 기어이 게임스코어 균형을 회복했다. 베이징 경기장이 술렁였다.
5게임에서도 뒷심을 발휘했다. 9-9 팽팽히 맞선 상황에서 특유의 배짱 플레이로 2점을 더해 게임스코어 역전에 성공했다.
이미 기세는 완전히 신유빈에게 넘어왔다. 6게임 역시 매치 포인트를 선점해 11-7로 마무리했다. 4-2 대역전 드라마를 완성했다.
주천희 마지막 백핸드가 코트를 벗어나는 순간 한국 벤치 환호와 중국 관중 탄식이 교차했다.
신유빈은 담담히 주천희와 악수를 나누고 승리 기쁨을 차분히 만끽했다.▲ 연합뉴스
신유빈의 이번 승리는 단순히 4강 진출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국제탁구연맹(ITTF)은 3일 홈페이지에 "한국 여자 선수가 WTT 그랜드 스매시 단식 준결승에 오른 것은 사상 최초"라며 신유빈 4강행에 역사적 의미를 부여했다.
그랜드 스매시는 세계선수권대회 다음으로 권위 있는 무대로 꼽힌다.
세계 톱 랭커가 대거 출전하는 데다 포인트와 상금 역시 최상위급이다.
남녀 단식 우승자는 2000점, 준우승은 1400점, 4강만 가도 700점의 랭킹 포인트가 주어진다.
상금 또한 13만5000 달러(약 1억9000만 원)를 우승자에게 수여한다.
이날 신유빈은 랭킹 포인트 700점을 확보하면서 세계 랭킹 급상승을 예고했다.
현재 1565점으로 세계 17위인데 이번 대회를 종료하면 최소 일본의 하야타 히나(13위·1985점)를 넘어설 것이 유력하다.
사실 이번 대회는 신유빈에게 더욱 특별하다. 올해 중국전 8연패로 '만리장성 벽'을 실감하던 그가 연이어 중국 강자를 제물로 승전고를 울렸기 때문이다.
앞서 16강전에서 세계 4위 콰이만(중국)을 꺾어 징크스를 깼다.
콰이만은 지난 2월 WTT 싱가포르 스매시 결승에 오르는 등 차세대 강자로 각광받는 신예.
홈팬의 열광적 성원을 등에 업은 상황에서 신유빈은 풀세트 접전 끝에 3-2로 승리했다. 중국 언론에서도 "충격패"란 표현으로 당혹감을 감추지 못할 정도였다.
콰이만전 승리 뒤 신유빈은 "나는 나를 믿지만 무엇보다 내 연습과 훈련을 믿는다"며 앞으로도 '땀의 양'을 무기로 뚜벅뚜벅 커리어를 채워갈 것임을 공언했다.▲ 연합뉴스
이제 신유빈은 세계 2위 왕만위와 결승 티켓을 두고 맞붙는다.
왕만위는 2021년 휴스턴 세계선수권대회에서 2관왕에 오른 이래 쭉 중국 여자탁구 중심에 서 있는 대표 강자다.
이번 대회서도 일본의 하리모토 미와(세계 6위)를 단 29분 만에 4-0으로 완파하고 준결승에 올라 압도적인 기량을 과시했다.
다른 준결승 대진은 세계 1위 쑨잉샤와 3위 천싱퉁(이상 중국)의 맞대결.
사실상 '중국 빅3'와 한국의 신유빈이 남은 상황이다.
신유빈으로선 잃을 게 없는 싸움이다. 부담을 내려놓고 오히려 과감하게 맞설 기회다.
2004년 7월생인 신유빈은 이제 21살로 여전히 성장 곡선 위에 있는 젊은 피다. 소속팀 대한항공 주세혁 감독도 "아직 나이가 어려 훨씬 더 성장할 여지가 있다"며 기대를 숨기지 않는다.
한국 여자탁구는 현정화(56) 현 대한탁구협회 수석부회장 이후 세계무대에서 큰 반향을 일으킨 선수가 드물었다. 그래서 신유빈의 그랜드 스매시 4강행에 담긴 의미가 적지 않다.
한국이 세계 여자탁구 중심으로 복귀할 수 있다는 희망의 신호탄을 쏘아올린 분위기다. 설령 준결승에서 왕만위에게 막히더라도 이미 한국 탁구 역사를 새로 썼다. 적어도 세계 정상의 꿈을 '다시' 꿀 수 있게 만들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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