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남도 천안(天安)에서 태어났다. 1914년 공주영명여학교에 입학하였으며, 1916년 선교사의 소개로 서울 이화학당 보통과 3학년에 교비생으로 편입하였다. 1918년에는 이화여자고등보통학교에 진학하였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학생들과 함께 가두시위에 참가하였고, 일본총독부의 학교휴교령으로 휴교에 들어가자 고향인 천안으로 내려가 만세시위에 참가하였다.
천안·연기(燕岐)·청주(淸州)·진천(鎭川) 등지의 학교와 교회 등을 방문하여 만세운동을 협의하고 음력 3월 1일 아우내[竝川] 장터에서 3,000여 군중에게 태극기를 나누어 주며 시위를 주도하다가 출동한 일본 헌병대에 체포되었다. 이때 아버지 유중권(柳重權)과 어머니 이씨(李氏)는 일본 헌병들이 쏜 총에 맞아 피살되고, 집마저 불탔으며, 자신은 공주 검사국으로 이송되었다. 그곳에서 영명학교(永明學校)의 만세시위를 주도하다가 끌려온 오빠 유관옥(柳寬玉)을 만났다. 그후 경성복심법원에서 3년형을 선고받고, 서대문형무소에서 복역 중 고문에 의한 방광파열로 옥사하였다.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1996년 5월 이화여자고등학교에서 명예졸업장을 추서하였다.